▲ 일 도쿄돔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 한국과 일본의 1차전에서 김태균이 일본 선발 마쓰자카로부터 2점포를 쏘아 올렸다. 연합뉴스 | ||
#사나이 중의 사나이
이번 대회 최고의 스타는 누가 뭐래도 김태균이다. 오른쪽 팔꿈치 부분을 상체에 바짝 붙인 상태에서 모든 체중을 실어 휘두르는 그의 파워 스윙은 일본과 미국 스카우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김태균은 외모부터 강한 남성상을 물씬 풍긴다. 다소 큰(?) 사이즈의 머리 크기도 유명한데다, 시원시원한 마스크는 야구 선수 중에도 손꼽히는 호인 스타일이다. 그러나 김태균 남성미의 정점은 왼쪽 팔뚝에 있다. 김태균은 보통 사람들 허벅지만 한 굵직한 왼쪽 팔뚝의 절반을 덮는 화려한 문신을 가지고 있다. 여러 문양과 그림을 조합한 이 문신을 드러내고 앉아 있으면 웬만한 ‘형님’들도 고개를 숙이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이뿐만이 아니다. 평소 자기 몸 관리에 완벽하리만치 철저한 김태균은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 이대호와 역사에 길이 남을 ‘대작’을 벌인 적이 있다. 김태균이 스스로 밝힌 이날의 사건은 둘이 마주 앉아 양주 8병을 깨끗이 비운 채 마무리됐다는 전설로 전해지고 있다.
#일편단심 민들레들
한국야구대표팀에는 젊은 나이에 일찌감치 결혼을 한 선수들이 많다. 결혼 전이라도 어린 시절부터 사귀어 온 오래된 연인에게 ‘일편단심’ 올인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대호는 모자 안쪽에 항상 ‘DH♥HJ’라는 문구를 써놓는다. 오래된 연인 신혜정 씨(26)의 이니셜이다. 반드시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신 씨에게 청혼을 하겠다고 다짐했던 이대호였다.
겉으로 무뚝뚝해 보이는 고영민도 자타가 인정하는 ‘스윗보이’다. 고영민의 목에는 ‘HYE YEON’(혜연)이라는 이름의 영문 철자가 매달린 목걸이가 걸려있다. 1년6개월 전부터 이 목걸이를 뺀 적이 없다. 자나 깨나 동갑내기 여자친구 서혜연 씨를 기억하기 위해서다. 3년 가까이 사랑을 키워온 두 사람은 올 시즌이 끝난 뒤 결혼하기로 약속했다. 한국에 있는 서 씨도 ‘YOUNG MIN’으로 만들어진 목걸이를 달고 응원하고 있다고. 이대호 고영민보다 한 수 위의 ‘고수’가 있다. 정근우는 아예 왼팔에 아내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겨 넣었다. 아내 홍은숙 씨와 태어난 지 1년 된 아들 재훈 군의 이름을 새겨넣고 항상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떠올리고 있다.
▲ 정현욱이 역투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
선발 투수들의 경우 자신이 선발등판하는 날에는 경기장에 느지막하게 나타난다. 경기장에 와서도 구단 버스 안에서 잠을 청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시간을 보낸다. 경기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는 최대한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을 조절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디나 예외는 있다. 한화 에이스이자 일본 타도의 선봉에 섰던 류현진이 그 주인공이다. 류현진은 넉넉한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느긋하다. 대부분 투수들의 성격이 대단히 예민하고 날카로운 데 반해 류현진은 마치 ‘동네 아줌마’처럼 둥글둥글한 매력이 돋보인다.
류현진이 선발로 등판하는 날은 진풍경이 펼쳐진다. 온 동네 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는 류현진의 ‘마실’이 시작되는 것이다. 타자들의 프리배팅장 뒤에 가서 “어~ 대호형 스윙 좋아! 태균이형 약한데!”라고 참견을 한다. 불펜 피칭을 하고 있는 투수들 옆에서는 “변화구 장난 아니네. 메이저리그 가야겠네”라고 중얼거린다.
“선발 등판하는데 어디 앉아서 좀 쉬어라”라는 코치들의 조언도 한 귀로 흘리고 만다. “저는 이렇게 놀러 다녀야 긴장도 풀리고 몸도 풀려요”라고 껄껄 웃고 마는 류현진. 영락없이 ‘마실 나가는 동네 아줌마’다.
#너무 알뜰한 당신
운동선수들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는 단연 ‘자동차’다. 한창 자동차에 관심이 많을 젊은 나이에 목돈을 쥐게 되는 이들이 내로라하는 외제차에 유혹을 느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또 몸이 재산이나 다름없는 이들이 좀 더 안전한 자동차를 타는 것은 충분한 명분도 있다. 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선수들 간의 은근한 자존심 경쟁도 외제차 구입을 부추긴다”고 한다.
입단 3년차를 맞은 김현수는 올해 1억 2600만 원의 연봉을 받는다. 88년생으로 한국 나이 스물두 살이 된 김현수는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로 병역 면제 혜택도 받았다. 앞으로 길게는 20년 가까이 선수생활을 할 수가 있다. 로또 못지 않은 인생 대박이 보장돼 있다. 그러나 아직도 아버지에게 매달 용돈을 받아 쓰는 김현수는 국산차인 산타페를 탄다. “제 나이에 그 정도면 최고죠. 외제차는 서른 살이 되면 살 거예요”라고 자랑스레 외친다. WBC에서 3번타자로 맹활약을 펼친 김현수. 한국팀의 선전으로 막대한 상금까지 가욋돈으로 챙길 것 같다. 과연 김현수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7~8년을 국산차로 참아낼 수 있을까.
#인간 승리의 주인공
WBC를 앞둔 지난 2월 하와이. 야구대표팀의 전지훈련이 펼쳐진 하와이 센트럴 오아후 리저널파크에는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한, 자기 스스로도 어색함을 호소하는 선수가 있었다. 올해 나이 서른셋. 뒤늦게 태극마크를 단 유니폼을 입어본 정현욱이 주인공이다. 그가 소속팀 삼성의 전지훈련지인 오키나와를 떠나 올 때, 선동열 삼성 감독은 정현욱을 조용히 불러 “아마도 네가 최종엔트리에서 탈락할 것이다. 그럼 실망하지 말고 빨리 오키나와로 돌아와서 시즌 준비하면 된다”라고 토닥였을 정도다.
그 정도로 정현욱은 대표팀의 ‘마이너’였다. 하와이에서도 항상 황두성과 붙어 다니면서 “우리 중 누가 엔트리에서 탈락할까”를 궁금해 했던 그였다. 병역 브로커의 유혹에 빠져 8개월 간 구치소 신세를 져야 했던 과거. 세상이 자신에게 등을 돌려버린 듯했던 어두운 과거에 비하면 잠시라도 대표팀에 몸을 담는 것 자체가 행복하다는 정현욱이었다.
그는 경북 경산에 위치한 삼성 숙소에서 알아주는 대식가다. 그러나 항상 먹는 만큼 일을 하는 ‘정노예’ 정현욱이었다. 삼성에서도 팀이 자신을 필요로 할 때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운드로 뛰어나간 그였다. 이번 WBC에서 정현욱은 화려하게 다시 태어났다. ‘정노예’는 ‘국민노예’가 돼 시속 150km가 넘는 돌직구를 일본 타자들의 가슴 한가운데로 쐈다. 비로소 자신의 진가를 전 세계에 알린 정현욱의 야구 인생은 서른세 살이 된 이제부터 시작이다.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