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기자와 ‘취중토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누나, 동생으로 말을 놓기로 했던 봉중근이었다. 하지만 오랜 만에 마주한 봉중근한테 쉽게 말을 놓기란 어려운 일. 이미 네티즌들로부터 ‘의사’ ‘열사’라는 호칭을 들으며 스타플레이어로 자리매김한 선수가 아닌가.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깍듯하게 존대어를 쓰자, 봉중근이 더 불편해 했다. “그냥 편하게 말해요 누나^^.”
―베이징올림픽부터 이번 WBC 대회까지 벌써 대통령을 두 차례나 만났다. 청와대에서 마련한 점심은 뭔가 좀 다를 것 같은데. 맛있게 먹고 왔나.
▲몸이 붕 떠 있는 느낌이라 음식이 맛있었는지, 별로였는지 잘 모르겠어요. 대통령도 자주(?) 뵈니까 반갑더라구요(웃음). 선수단에 시계를 선물로 주셨는데 집안 가보로 보관해서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에요.
―대표팀만 세 번째다. 올림픽을 포함해서 WBC 1, 2회 대회를 모두 참가했는데 1회 대회 때와 다른 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선수들 연령층이 한층 어려진 점이겠죠. 대부분 젊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됐으니까요. 세대교체가 되면서 분위기가 한층 더 활발해졌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엔 걱정이 많았어요. 나이가 어린 데다 경험이 부족해서 큰 대회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싶었죠. WBC 대회는 올림픽과는 또 다르거든요. WBC는 각 나라의 대표급 선수들이 모이는 거잖아요.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도쿄라운드 때 일본과의 1차전에서 콜드패했다. 선수단 분위기가 뒤숭숭했을 텐데 어떻게 수습이 됐나.
▲일본 관중들이 엄청났어요. 일본대표팀이 ‘라스트 사무라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을 모두 불러 들였잖아요. 그래서인지 도쿄돔을 가득 메운 일본 관중들 때문에 기가 팍 죽었더랬어요. 솔직히 소심해지는 면도 있었구요. 그런 상황에서 콜드패를 당하니까 정말 할 말이 없는 거 있죠? 우리가 실력면에서 뒤처지는 건 알았는데 그렇게 차이가 날 줄 몰랐거든요. 그래서 일본과의 2차전 선발을 자처했던 겁니다. (류)현진이가 선발로 낙점됐었지만 제가 먼저 양상문 코치와 김인식 감독님을 찾아가 강력하게 요청했어요. 제가 총대를 메고 싶다고. 다행히 두 분이 절 믿어주셨고 1 대 0으로 긴장감 넘치는 승부를 펼칠 수 있었죠.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지, 사실 못하면 ‘피박’을 쓰는 모험이었다. 졌으면 완전 ‘역적’으로 몰릴 수도 있었다.
▲형들이 ‘이건 모 아니면 도’라면서 걱정을 많이 해줬어요. 안 되면 나만 죽일 놈 되는 거라면서. 하지만 전 히어로가 될 자신이 있었거든요. 만약 안 된다면 그냥 감수하고 싶었구요. 대만전에서 3이닝을 던지며 컨디션이 좋다고 판단했던 것도 도움이 됐어요. 무엇보다 절 믿어주신 감독님께 감사드려야죠.
▲ 대표팀 유니폼을 벗은 봉중근. 그의 올해 소원은 LG의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라고 밝혔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1회 대회 때 보니까 (박)찬호 형, (구)대성이 형, (서)재응이 형이 어린 선수들을 잘 이끌었어요. 형들을 보면서 배운 게 많았거든요. 제 나이가 중간보단 좀 위였어요. 어린 선수들에게 1회 대회 때의 경험을 들려주면서 낮은 자세로 임했죠. 선발, 중간, 마무리든 상관없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선수들이 각자의 욕심을 버리고 한마음으로 뭉쳤던 게 큰 힘이 됐어요.
―펫코파크에서 벌어진 일본과의 승자승 대결에서 4 대 1로 완승을 거둔 후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일명 태극기 세리머니가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는데 미리 준비한 행동이었나.
▲3년 전 한국팀이 4강 진출을 확정지었을 때 (서)재응 형이 마운드에 태극기 꽂는 모습을 보고 가슴으로 운 기억이 있어요. 이번에도 국민들의 응원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어서 나름 계획을 갖고 있었고 4강 진출이 결정되자마자 관중석으로 달려가 태극기를 받아서 마운드에 꽂은 겁니다.
―일본전에서의 선방과 태극기 세리머니 등으로 인해 ‘봉중근 의사’ ‘열사’란 호칭이 붙었다. 미국에서도 이런 네티즌들의 반응을 알고 있었는지 궁금하다.
▲처음엔 한국에서 친누나가 문자를 보냈더라구요. 구단에서 제 티셔츠를 팔았는데 얼마 안가 절판됐다구요. ‘의사’ ‘열사’란 타이틀도 기분 좋았어요. 하지만 한두 게임 잘하다가 막판에 못하면 뭐라고 하지 않을까 싶어서 완전 부담이 됐죠. 안중근 의사를 패러디한 포스터도 인터넷을 통해 봤어요. 너무 재밌고 감사해서 사진으로 찍어놓기까지 했어요.
―이번에 함께한 투수들 중 김광현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많을 것 같다. 나이 어린 선수가 큰 상처를 받았을 것 같기도 하고.
▲광현이의 컨디션이 안 좋았어요. 제구나 스피드에 자신감은 있었는데 시기가 좋지 않았던 거죠. 광현이한테 많은 얘기를 해주기보단 혼자서 극복할 수 있게끔 배려해주고 싶었어요. 선배들도 같은 생각이었구요. 광현이가 굉장히 힘들었을 겁니다. 웃고 있어도 우리가 보기엔 진짜 웃는 얼굴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나 4년 뒤에 우리 대표팀을 이끌 중심 축이 될 선수예요. 일본팀에 복수할 핵심 투수니까요. 김광현이기 때문에 잘 극복해서 프로야구 시즌에 좋은 모습 보여줄 거라고 믿어요. 하루 빨리 웃음을 되찾을 수 있었음 좋겠어요.
―일본과의 결승전 선발로 나갈 때, 솔직히 어떤 심정이었나. 세 번째 대결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 같은데.
▲정말 할 수만 있다면 안 나가고 싶었어요. 왠지 이번만은 안 될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고나 할까? 담까지 걸려서 침을 맞아가며 몸을 회복시키려 했는데 잘 안 되더라구요. 양상문 코치가 ‘이왕 히어로된 거 끝까지 히어로가 돼 보라’며 용기를 주셨지만 마음은 천근만근이었습니다.
―결승전이 연장으로 넘어갔다. 10회 2사 때 이치로와 상대한 임창용의 투구와 관련해 말들이 많은데 같은 투수 입장에서 임창용의 공을 어떻게 생각하나.
▲(한참 생각을 하다가) 조금 서두른 게 아닌가 싶어요. 창용이 형이 나쁜 볼을 갖고 있는 투수가 아니거든요. 직구 스피드에 이치로가 밀린 상황이었어요. 0.1초의 판단 미스로 진 것 같아요. 특히 이치로라는 선수한테 안타를 맞고 졌다는 게 너무 억울한 거죠. 차라리 다른 선수가 안타를 쳤다면 몰라도 이치로한테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거든요. 결국 이치로 때문에 일본이 우승한 거나 마찬가지가 된 거죠.
―이번 대회 기간 동안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을 많이 만났을 텐데 주로 어떤 사람들을 만났나.
▲허샤이저랑 뉴욕 메츠 단장 등을 만났어요. 그분들이 하나같이 이렇게 물어보시더라구요. ‘네 몸이 왜 이렇게 갑자기 좋아졌냐?’구. 그래서 한국 훈련이 힘들다, 메이저리그와는 다른 프로그램으로 운동을 굉장히 많이 하는데 그런 훈련법이 나한테 맞는 것 같다고 설명해줬어요. 헤어지면서 그 사람들에게 ‘I’ll be back!’이라고 외쳤는데 그 분들이 그때까지 그 자리에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지금 가장 걱정되는 건.
▲몸 상태죠. 보통 6, 7월에 나올 볼 스피드가 이번에 나왔어요. 그만큼 오버했다는 뜻이에요. 제 몸은 따라주지 않는데도 머리 속으로 ‘괜찮다’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했거든요. 소속팀에 합류해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려구요. 햄스트링도 안 좋고 해서. 일단 페이스는 좋기 때문에 관리만 잘하면 괜찮을 것 같지만 대표팀 갔다 와서 망가진 선수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걱정이 돼요.
―지난해까지만 해도 팀에서 선발로 뛰었는데 올시즌 김재박 감독이 보직을 마무리로 맡긴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 건가(김재박 감독은 3월 27일, 봉중근은 이전처럼 선발 투수로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금 같아선 선발이든 마무리든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볼 스피드에 자신감이 생겨서 솔직히 마무리도 욕심이 나요. 마무리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거라면 자신감이에요. 잠실에 2만~3만 명의 관중들이 들어 차도 전혀 떨리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김)광현이를 부러워했던 게 코나미컵 등 국제대회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감이었어요. 그걸 이번에 선물로 받았어요. 투수한테는 너무나 큰 선물이죠.
봉중근은 이제 WBC는 ‘과거’일 뿐이고, 지금 자신 앞에는 소속팀 LG트윈스에서의 활약이 숙제로 남아 있다고 말했다. 국제대회를 통해 얻은 많은 경험과 느낌표들을 LG 마운드에서 쏟아내야 한다는 부담도 갖고 있었다. 그러면서 올 가을에 LG가 계속 야구를 할 수 있도록 보탬이 되고 싶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대표팀 유니폼을 벗은 봉중근의 올 한 해 소원은 LG의 4강 플레이오프 진출이었다. ‘봉중근 의사’에서 다시 ‘봉타나’로 변신하는 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