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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4월 9일 현재, 한국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는 모두 중계권 협상이 타결되지 않은 상태다. 박찬호(필라델피아), 추신수(클리블랜드)가 뛰는 메이저리그는 물론이며 자칫 잘못하면 프로야구도 어느 순간 생중계가 끊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참에 국내외 프로야구와 관련된 중계권의 규모는 대체 어느 정도이며, 어떤 문제가 현안으로 부각되고 있는지를 살펴본다.
# WBC로 문제 수면 위
지난 1월 중순,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과 관련해 암울한 소식이 들려왔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3사가 경영난을 이유로 WBC 생중계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WBC의 한국 내 독점 중계권을 가진 회사는 ‘피겨 퀸’ 김연아가 소속된 IB스포츠. IB스포츠와 지상파 방송사의 대표격인 KBS의 실무진이 수차례 협상을 했지만 금액 차이 때문에 결렬됐다.
3월 초 WBC가 열리기 직전까지 중계권 협상은 타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야구팬들이 들고 일어났다. 대략 8 대 2의 여론 차이를 보이면서 IB스포츠가 너무 장사를 해먹으려 한다는 비난이,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비난보다 많았다. 워낙 상황이 심각해지자 IB스포츠는 300만 달러에서 250만 달러까지 협상액을 낮췄다가 WBC 개막 직전에 백기를 들었다.
양측이 정확한 금액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KBS 측에선 “지상파 방송사의 당초 요구액과 비슷한 수준으로 타결됐다”고 말했다. 따라서 130만 달러 정도를 방송 3사가 나눠냈다고 보면 된다. 결과적으로는 담합의 형태를 보인 방송사가 최종 승자가 됐다. 이번 WBC는 한국이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5차례 일본과의 맞대결도 흥행에는 큰 도움이 됐다. 특히 SBS와 MBC는 우울한 국내 경제 소식 대신 신나는 WBC 뉴스로 꽤 흑자를 봤다는 후문이다. KBS의 경우엔 광고가 없는 1채널에서도 중계를 했기 때문에 큰 이득은 없었다고 한다.
# 선중계-후협상 ‘꼼수’
비슷한 사례가 지금 또 진행되고 있다. 한국프로야구는 4월4일 개막했지만 4월 9일 현재까지 중계권 협상이 완료되지 않았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지난해부터 프로야구를 중계하는 케이블 4사와의 계약을 (주)에이클라라는 에이전시에 일임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협상은 대행사가 하는 것이고, KBO는 (주)에이클라로부터 보장된 금액만 받아내면 그뿐이다. 그런데 최근 Xports 이외의 케이블 채널 3사를 대표해 SBS스포츠가 반기를 들고 나섰다. 한마디로 경기 침체를 고려해 지난해보다 중계권을 깎자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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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호(왼쪽), 추신수(오른쪽) | ||
양측 금액 차이가 큰 데다 근본적으로 한쪽은 높이려하고, 다른 쪽은 절반 수준으로 깎으려하니 협상이 진전될 리가 없었다.프로야구 개막 시점까지 타결되지 못했고, 대신 선중계-후협상의 원칙에 합의한 덕분에 팬들은 실시간으로 중계를 볼 수 있었다.
# ‘징검다리’ 찾는 까닭
일반 팬들은 “왜 대행사가 끼어서 판만 어지럽게 만드는가”라고 질문할 수도 있다. 프로야구 경우도, 케이블 채널들과 KBO가 직접 협상하면 쉽게 끝날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KBO가 대행사를 고용하는 건 일종의 ‘정치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스포츠 콘텐츠를 다루는 케이블 채널들은 이른바 ‘보도 기능’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언론사다. 이와 관련해 KBO 측에선 “케이블 방송사들이 협상을 하려는 게 아니라 언론사란 이유로 이것저것 손쉽게 넘어가려하는 부분들이 과거부터 있었다. 그래서 차라리 대행사에게 맡기는 게 속편한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에선 최근 “협상 문제가 지지부진한데 KBO 수뇌부는 왜 적극적으로 중재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는가”란 목소리가 나왔다. 바로 이 부분에서 양측의 입장이 명확하게 갈리는 게 보여진다. 케이블 채널은 KBO와 얘기하려고 하고, KBO는 되도록 접촉 없이 대행사에 맡겨두려는 입장이다.
근본적으로 프로야구가 과연 어느 정도 가치를 지닌 콘텐츠인가를 규명하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이긴 하다. 파는 쪽에선 “국내 최고의 스포츠 콘텐츠“라고 높게 평가하며, 사는 쪽에선 “어쨌든 적자를 보고 중계할 만큼의 콘텐츠라고 자신할 수 없다”면서 저평가하기 때문이다.
또한 케이블 채널들이 적자의 근거로 내세우는 수치들이 모두 자체 문건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신뢰성 문제가 제기될 수도 있다는 게 KBO 측의 설명이다. SBS스포츠의 경우엔 올해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의 전경기를 중계하기 때문에 한국프로야구를 중계하지 않아도 수익과 콘텐츠면에서 별 문제가 없다.
그런데 이들의 주장은 또 다르다. “우린 안 해도 된다. 하지만 그래도 최고 스포츠인 프로야구를 다뤄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도 있어서 하려는 것이다. 만약 올해 우리가 중계를 안 한다 치자. 문제는 나중이다. 몇 년 뒤 다시 한국프로야구를 중계하려 하면 KBO와 대행사가 불이익을 주려 할 것이다. 바로 그런 게 문제다.”
결국 단순한 돈 문제가 아니라 나름 미묘한 사안들이 복합돼 있는 게 바로 작금의 중계권 논쟁인 셈이다. 그나마 메이저리그는 사안이 간단한 편이다. IB스포츠가 7년간 7000만 달러 수준에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재계약에 성공했다. 하지만 재판매를 하려해도 팔 곳이 없다.
너무 비싸기 때문이다. 지난 4년간 메이저리그를 중계했던 케이블 Xports는 최근 “수익 구조 악화로 손을 뗀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찬호가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연승을 달리거나 추신수가 홈런타자로 자리매김하지 않는 한 올해 한국에선 메이저리그 생중계를 보기 어렵게 됐다.
장진구 스포츠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