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술적으로 말하자면 종전에 10만 원짜리 선물을 100명에게 한 사람이 이제는 5만 원짜리로 200명에게 할 수 있다. 선물은 꼭 많거나, 비싸야 맛이 아니므로 양을 줄여서 싼 값에 더 많은 사람과 나눈다면 오히려 선물의 본래 취지와 부합한다.
서민경제 위축론은 김영란법에 내포된 다른 많은 논점들을 흐리게 하거나 묻히게 하는 역작용을 낳고 있다. 1회 100만 원 이상, 연간 300만 원 이상의 금품을 받는 공무원들을 대가성과 관련 없이 형사처벌하는 것이 이 법의 핵심인데 이것이 적당한 수준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의 민원전달행위를 청탁의 예외조항으로 한 것도 논외다. 선출직 공직자들이 지역민의 민원을 해결해 주는 것을 의정활동의 일부라고 간주한 것은 그런 민원청탁이 뇌물의 연결고리가 되고 있는 현실이나 개연성을 너무 간과한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가 민간인 중에서 유독 정부지원과 무관한 언론인만을 특정해 적용 대상에 포함한 것이다. 언론에게 주어진 의무는 공직에 대한 감시자의 역할이므로 공직자 이상으로 청렴해야 함은 두말이 필요 없다.
언론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크지 않다는 것은 청렴하지 않다는 뜻도 포함돼 있다. 그리고 언론환경이 혼탁해지면서 사이비 기자들의 횡포도 사회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그렇다고 수많은 민간영역 중에서 언론인만 떼어내 처벌대상으로 삼는 것이 입법논리에 맞느냐는 논의는 없다.
당초 정부의 김영란법 입법 취지는 공직부패 방지다. 공직은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심판자다. 공직자가 부패하면 국가가 무너진다. 청렴의 의무는 국민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이지만 공직의 청렴 의무가 다른 모든 영역보다 앞서는 이유다.
현행 법 가운데서도 형법이나 폭력행위등처벌에 관한 법,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 등은 부패행위에 대해 김영란법보다 더 강력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럼에도 김영란법이 제정된 것은 공직의 부패가 지속적, 구조적, 반복적이라는 판단에서였을 것이다.
아무리 언론이 부패했기로서니 공직부패와 같을까. 언론의 공공성을 말하지만 민간 중에서도 병의원, 금융, 방위산업체, 정부지원을 받는 시민단체의 공공성은 언론만큼이 아닌가. 그런 영역에서의 부패행위는 훨씬 더 공직부패를 닮아 있지 않나.
모든 민간 영역을 김영란법으로 규율한다면 형법 등 다른 법들의 존재 이유가 없어질 것이므로 언론인 하나만 넣었을 것이다. 정부안에도 없던 것을 국회가 자의적으로 포함시켰다. 19대 국회의 대표적인 졸속입법이다. 언론부분의 평등성 위반, 과잉금지 위반 여부에 대한 헌재의 심의가 진행 중이다. 국회는 헌재의 심의 결과를 기다릴 것이 없이 이 법을 개정해야 한다.
임종건 언론인·전 서울경제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