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더위와 함께 팬들의 눈을 시원하게 만들 걸그룹들이 연이어 출사표를 던지고 있다. 단순히 여름이 빨리 찾아와서가 아니다. 8월 리우올림픽이 열리는 것도 이유다. 전세계인의 축제인 올림픽이 시작되면 모든 이슈가 빨려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일찌감치 신곡 활동을 마친 후 올림픽 시즌에 맞춘 프로모션이나 이벤트를 준비하려는 복안이다.
또한 여름 시장 승자의 노래는 올림픽이 열리는 기간 동안 응원송으로 활용되며 주목도를 높일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예기획사들은 가요계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수싸움을 벌이고 있다.
걸그룹 대전은 이미 지난 5월 시작됐다. 트와이스와 러블리즈가 같은 날 쇼케이스를 열고 활동을 시작한 결과 ‘샤샤샤~’라는 유행어를 낳은 ‘치어 업’을 앞세운 트와이스가 완승을 거뒀다. 지난해 씨스타와 여름 시장을 양분했던 AOA 역시 컴백했으나 뜻하지 않은 구설에 휘말리며 트와이스의 기세가 더욱 상승했다.
지난달 ‘치어 업’으로 여름 음반 시장을 선점한 트와이스. 사진출처=공식 페이스북
6월은 EXID가 열었다. ‘역주행 신드롬’을 일으킨 ‘위 아래’의 작곡가 신사동호랭이와 범이낭이, 멤버 LE가 공동 작업한 ‘L.I.E’가 EXID의 신곡. ‘위 아래’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지만 이후 발표한 ‘핫 핑크’와 ‘아 예’ 등이 모두 비슷했다는 평가를 받은 EXID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L.I.E’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6월 첫째 주말 방송된 지상파 3사 음악프로그램은 EXID를 필두로 CLC, 피에스타 등 컴백을 선언한 걸그룹들이 장악했다. Mnet <프로듀스 101>에 출연해 눈길을 모은 권은빈이 합류한 CLC는 발랄한 느낌을 가진 ‘아니야’로, 연륜이 느껴지는 실력파 걸그룹 피에스타 역시 여름 분위기를 한껏 북돋는 신스팝 기반 댄스곡인 ‘애플파이’로 무대를 꾸몄다. 이 외에도 오마이걸, 에이프릴 등 신인 걸그룹들이 자웅을 겨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찾아와 남성팬들을 마음을 설레게 만들었던 걸그룹 씨스타가 올해도 돌아온다. 소속사 스타쉽엔터테인먼트는 “씨스타가 6월 중 컴백할 예정이며 프로듀서 블랙아이드필승이 쓴 곡을 타이틀로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씨스타는 그동안 ‘터치 마이 바디’ ‘아이 스웨어’ ‘러빙 유’를 거쳐 지난해 ‘쉐이크 잇’까지 여름 맞춤형 리듬과 안무의 곡을 앞세워 ‘여름의 여왕’이라 불렸다. 올해는 ‘치어 업’을 만든 블랙아이드필승과 손잡아 가요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원조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원더걸스 역시 컴백을 위한 담금질에 한창이다. 지난해 8월 3년 만에 컴백하며 기존 댄스그룹이 아닌 걸밴드로 변신했던 원더걸스는 새 앨범 역시 걸밴드로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갑작스러운 팀컬러 변화를 우려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지난해 원더걸스가 발표한 ‘아이 필 유’는 성공을 거뒀다”며 “워낙 내공이 강한 팀이고 JYP엔터테인먼트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언제든 ‘한 방’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레드벨벳, 소나무, 달샤벳 등도 ‘참전’할 예정이라 올해 여름 대전은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할 전망이다.
게다가 올해는 걸그룹들의 싸움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대규모 팬덤을 보유하고 있는 보이그룹들도 신곡으로 활동을 재개한다. 가장 눈에 띄는 그룹은 단연 엑소다. 이미 ‘톱 오브 톱’이라 불리는 엑소는 지난 8일 쇼케이스로 정규 3집 앨범으로 공식 행보를 시작했다. 이번 앨범의 더블 타이틀곡은 ‘몬스터(Monster)’와 ‘럭키 원(Lucky One)’. 9일 자정 두 곡을 포함해 수록곡 음원을 모두 공개하며 가요계를 평정에 나섰다.
이달 중 컴백 예정인 씨스타는 트와이스의 ‘치어 업’을 만든 블랙아이드필승과 손잡아 가요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사진출처=공식 페이스북
이에 앞서 유키스는 7일 약 1년 5개월 만에 11번째 미니앨범 <STALKER>를 발표했다. 여기에 현재 활동 중인 신인 아이돌 그룹 크나큰, 몬스타엑스 등까지 합치면 올 여름 가요계는 ‘춘추전국시대’라 할 만하다.
이들의 대결은 단순한 순위 경쟁이라 볼 수 없다. 각 소속사들의 명운을 건 ‘자존심 싸움’이기 때문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엑소와 레드벨벳 외에도 솔로 활동에 나선 샤이니의 종현, 에프엑스의 루나 등이 소속사의 자존심을 세우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신인 트와이스가 터를 닦고 ‘큰언니’ 원더걸스에게 바통을 이어주는 모양새다.
비스트와 포미닛을 보유한 큐브엔터테인먼트, 시크릿과 언터처블 등이 속한 TS엔터테인먼트는 각각 CLC와 소나무를 전면에 내세운다. YG엔터테인먼트 역시 2NE1 이후 7년 만에 신인 걸그룹을 준비 중이라 유력 연예기획사들이 본격적인 세대교체 단계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여름이 그 시험대가 되는 이유는 ‘가장 수요가 많은 시기’이기 때문이다. 휴가 시즌을 겨냥한 각종 특집 음악, 예능 프로그램 외에도 바캉스 시즌을 맞아 곳곳에서 많은 행사가 열린다. 무더운 날씨, 사기가 떨어지는 하절기에는 군부대 위문 행사도 다른 시즌에 비해 잦은 편이다. 이때 다양한 라이브 무대를 통해 실전 경험을 쌓고 동시에 대중에 많이 노출돼야 그 인지도를 바탕으로 다음 행보를 준비할 수 있다.
또한 이 시기는 음원 소비량도 급증한다. 휴가를 떠나며 바캉스에 어울리는 노래를 찾아 듣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또 다른 연예기획사 대표는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안무를 동반한 댄스곡이야말로 ‘국민송’으로 등극할 요소를 고루 갖췄다고 볼 수 있다”며 “이런 노래를 마음껏 선보이고 찾는 소비자가 많은 여름이야말로 걸그룹들이 정상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라고 분석했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