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롯데,원리더’를 천명한 신동빈 회장은 지난 2013년부터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를 배제해 왔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사정기관 안팎에선 이번 수사가 롯데그룹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명박 정권 실세로 알려진 A 씨가 ‘정운호 브로커’ 이 아무개 씨로부터 별장에서 접대를 받고 제2롯데월드 인허가에 힘을 써줬다는 첩보가 있다”며 “A 씨와 이 씨는 서울 대일고 동문 사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10일 수십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는 롯데그룹에 대해 전격적으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신동빈 회장의 형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은 이번 수사가 내심 동생에게까지 확대되길 바라는 눈치다. 신동주 회장은 최근 ‘롯데의 경영정상화를 요구하는 모임’이란 홈페이지를 통해 “신동빈이 주도한 제2롯데월드 건설 관련 의혹이 일고 있다는 취지의 보도가 이뤄지고 있다”며 “롯데홀딩스 현 경영진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롯데홀딩스는 신동빈 회장이 대표이사이며, 호텔롯데 등 롯데 주요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는 지주회사다.
그러나 이번 수사가 롯데 핵심 수뇌부를 건드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사건 추이를 지켜봐야겠지만 그룹 차원의 비리는 아닌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제2롯데월드와 관련한 풍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는 “신영자 이사장 선에서 수사가 정리될 것으로 안다”며 “경영권 측면에서 신동빈 회장에게 타격이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미 검찰은 ‘정운호 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신 이사장과 관련한 내사를 진행했다. 브로커 한 아무개 씨가 신 이사장과 친분이 깊다는 단서를 토대로 면세점 입점 로비 의혹 등에 주목한 것이다. 이는 롯데가 수사 착수보다 앞서 신 이사장의 ‘일탈’을 인지했을 가능성과 연결된다. 롯데는 검찰 등 사정기관 정보를 수집하는 ‘대관팀’을 따로 가동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롯데는 신 이사장이 연루된 의혹에 대해 “금품 수수는 개인적인 일”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사실이 아니다”와 같은 적극적인 해명은 없었다. 또 롯데 측은 신 이사장의 계열사 등기 임원 사퇴 가능성을 열어 놨다. 롯데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의 구체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신 이사장 본인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 이사장은 호텔롯데, 롯데쇼핑, 대홍기획 등의 등기 임원에 올라 있다. 한국 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는 상장을 앞두고 있고, 롯데쇼핑과 대홍기획은 그룹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 계열사로 꼽힌다. 신동빈 회장은 형인 신동주 회장과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그룹의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해소하겠다”고 공언했다.
롯데는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사진)이 연루된 의혹에 대해 “금품 수수는 개인적인 일”이라며 거리를 두고 있다.
‘원롯데·원리더’를 천명한 신동빈 회장은 2013년부터 오너 일가의 경영 참여를 배제해 왔다. 이 과정에서 신 이사장은 자신이 최대주주인 시네마통상이 갖고 있던 롯데시네마 매점 운영권을 신동빈 회장에게 빼앗겼다. 그럼에도 신 이사장은 면세점 사업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경영권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경영권 분쟁 당시 이를 묵인했던 신 회장은 상황이 달라진 만큼 신 이사장에게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커졌다. 아버지와 형에 이어 이복누나까지 임원에서 퇴진하면 ‘원톱체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 분명하다. 호텔롯데 상장 연기라는 암초에 부딪혔지만 이번 수사가 신 회장에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재계 일각에선 호텔롯데 상장 연기로 주당 공모가(8만 5000~11만 원)가 1만 원가량 낮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오기도 하지만 섣부른 예측이란 반론도 적지 않다. 호텔롯데 공모의 흥행 여부는 결국 잠실 월드타워 면세점 재승인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시장이 추산한 기업가치 13조 원 중 12조 원은 면세점 사업에 편중돼 있다. 다시 말해 서울시내 면세점 특허권을 다시 따내면 공모가는 시장 예상보다 오히려 높아질 수도 있다.
이와 관련, 롯데 면세점사업부 관계자는 “면세점사업은 유커(游客) 유치에서 판가름나는데 롯데 월드타워점의 경우 롯데월드 등과 연계한 관광코스로 면세점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매출을 기록해왔다”며 “강남 관광 활성화란 명분, 면세점 운영 노하우 등을 고려했을 때 (롯데가)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면세점 업계 관계자는 롯데 측의 특허 재승인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이 같은 상황에서 롯데 측의 유일한 불안 요소는 신 이사장의 호텔롯데 이사직 등기다. 신동빈 회장이 신 이사장을 ‘제거’해야 할 명분은 갖춰졌다. 남은 건 선택이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매출은 없는데 급여는 쏙쏙’ 신영자 자녀들의 수상한 회사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은 슬하에 1남 3녀를 두고 있다. 이들은 각각 신 이사장이 만든 법인의 임원으로 등기됐다. 재계 일각에선 신 이사장이 각 회사를 네 자녀에게 증여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의 차녀 장선윤 씨(사진)는 신 이사장의 자녀 가운데 언론 노출이 가장 잦았던 인물이다. 롯데쇼핑 상무 재직 당시 명품관 애비뉴엘 오픈에 관여했던 그는 롯데호텔 해외사업 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장녀 장혜선 씨는 재계에서도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독신이란 것 외에는 세간에 알려진 행적이 거의 없다. 신격호 회장의 병간호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 혜선 씨는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언론에 한 차례 노출된 바 있다. 또 1995년부터 2010년까지 비엔에프통상의 이사직을 맡았지만 실제 경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비엔에프통상은 면세사업과 관련한 컨설팅 및 명품 브랜드 유통 등을 주된 수익 모델로 삼고 있다. 장남 재영 씨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으며, 2014~2015년 매출 총계는 744억여 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당기순이익은 무려 437억여 원에 달했다. 차녀 장선윤 씨는 2002~2010년까지 비엔에프통상의 이사를 지냈다. 3녀 장정안 씨는 같은 기간 감사를 지냈다. 사실상 ‘가족회사’인 셈인데 비엔에프통상의 실질적인 오너는 신 이사장으로 알려졌다. 비엔에프통상 역시 검찰 수사 선상에 올랐다. 차녀 선윤 씨는 신 이사장의 자녀 가운데 언론 노출이 가장 잦았던 인물이다. 롯데쇼핑 상무 재직 당시 명품관 애비뉴엘 오픈에 관여했던 그는 롯데호텔 해외사업 담당 상무로 자리를 옮겼다. 2010년에는 베이커리업체 ‘블리스’를 설립했지만 ‘재벌 빵집’ 논란이 일자 2012년 블리스 지분을 전량 매각했다. 현재 해외 면세사업 등에 관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편은 아우디코리아 상무를 지낸 양성욱 씨다. 3녀 정안 씨는 2004년 미국 변호사 라이선스를 갖고 있는 이승환 씨와 결혼했다. 그룹 내 마지막 공식 직함은 롯데쇼핑 차장이다. 2000년대 중반까지 롯데백화점 구매 업무에 관여했던 정안 씨는 해외에 체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2012년에는 두 언니와 함께 국내 화장품업체인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 임원으로 등기됐다.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은 현재 부동산 임대업을 주된 사업 영역으로 삼고 있으나 지난해 매출은 8억여 원에 불과하다. 또 두 언니는 각각 2010년 등기임원에서 물러났지만 정안 씨는 지난해 3월 사내이사에 취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은 200억 원에 이르는 단기차입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자본잠식 상태로 부채를 상환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신 이사장의 ‘가족회사’였던 시네마통상처럼 법인 청산이 유력한 상황이다. 시네마통상은 주 거래처인 롯데시네마와의 거래가 끊기자 사실상 폐업했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