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후보로 확정됨에 따라 늘씬한 모델 출신이자 이민자 출신인 아내 멜라니아(오른쪽)에 대한 관심도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지난 2월 미국 대선 공화당 9차 TV토론회 당시 모습. 연합뉴스
최근 <뉴요커>는 ‘미국인 모델’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 “미국 대중들은 멜라니아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령 매번 초고가의 의상을 입고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패션에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빌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로 유명세를 치렀던 모니카 르윈스키의 이름을 딴 립스틱이 불티나게 팔렸던 점이나,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의 안경이 인기를 끌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러면서 <뉴요커>는 “그 어디에서도 ‘멜라니아 효과’는 찾아볼 수 없다”고 보도했다. 멜라니아가 모직 코트를 입었는지, 털코트를 입었는지 아무도 관심이 없으며, 그나마 가장 기억에 남는 패션이라고는 2000년 영국판 <GQ> 표지 모델로 등장했을 때 알몸에 걸쳤던 다이아몬드 팔찌가 유일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멜라니아는 여태껏 대중의 관심 밖에 있었다. 하지만 어쩌면 이는 의도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멜라니아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자제하는 한편 트럼프의 유세 현장에도 거의 동행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멜라니아는 “나는 아들과 함께 집에 있는 게 더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멜라니아를 대신해 트럼프의 선거운동에서 ‘안주인 역할’을 한 것은 장녀인 이반카였다. 트럼프와 함께 미 전역을 돌면서 선거 유세를 돕거나 정치적 조언을 한 것도 이반카였으며, 지난 6월 대선후보 공식선언을 할 때도 무대 위에서 트럼프를 에스코트한 후 짧게 소감을 밝힌 것 역시 이반카였다. 당시 멜라니아는 자리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에 미국인들은 이반카를 가리켜 ‘선거유세용 배우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지난해 9월 공화당 경선 후보들의 첫 번째 TV 토론회에서도 트럼프는 아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이는 다른 후보들의 경우 모두 자기소개를 하면서 저마다 아내에 대해 짧게 언급했던 것과는 분명 대조되는 행동이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슬로베니아 출신인 멜라니아가 강한 영어 악센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급적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이라고 추측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후보의 아내는 조용히 뒷전에 물러나 있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는 공화당의 전통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뉴욕타임스>는 자칫 트럼프의 얼룩진 사생활이 부각될 것을 염려한 트럼프 측의 계산된 행동일지 모른다고 말했다. 멜라니아는 트럼프의 세 번째 부인이며, 과거 트럼프는 두 번의 결혼 생활 동안 불륜, 속임수 등의 스캔들에 휘말린 바 있었다.
알몸에 다이아몬드 팔찌만 걸친 채 2000년 1월 영국판 ‘GQ’ 표지를 장식한 멜라니아 트럼프.
주위 평판도 썩 나쁘지 않다. 그녀의 전담 헤어 스타일리스트는 그녀를 가리켜 “알려진 것과 달리 절대 성격이 나쁘지 않다”고 말했는가 하면,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전 부인인 웬디 덩은 “멜라니아는 현모양처이자 사랑스런 사람이다”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또한 베테랑 가십 칼럼니스트인 리즈 스미스는 “멜라니아는 정말 매우 좋은 사람이다. 트럼프는 그에게 딱 맞는 완벽한 여자를 얻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뉴요커>는 슬로베니아의 가십 칼럼니스트인 보얀 포차르와 정치인 출신의 출판업자인 이고르 오메르차가 공동 집필한 <멜라니아 트럼프: 인사이드 스토리>를 인용해 멜라니아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지금은 슬로베니아지만 과거에는 공산국가였던 유고슬라비아연방 출신인 그녀는 어릴 때부터 모델이 되는 것이 꿈인 평범한 소녀였다. 인생 최대의 전환점은 1992년에 찾아왔다. 당시 슬로베니아의 여성지인 <야나>가 세계적인 모델을 발굴하기 위해 실시한 ‘올해의 얼굴’ 대회에 참가했던 그녀는 이 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했다. 이미 16세 때부터 각종 광고모델로 활동하고 있었던 그녀는 이를 바탕으로 마침내 1996년에는 미국땅을 밟는 데 성공했다. 톱모델 수준까지는 오르지 못했지만 꾸준히 광고 촬영, 잡지 화보 촬영, <스프츠일러스트레이티드> 수영복 모델 등의 활동을 이어나갔다.
멜라니아가 트럼프를 만난 것은 1998년 모델 에이전시 사장이 주최한 파티에서였다. 먼저 호감을 보인 것은 트럼프 쪽이었다. 당시 트럼프는 두 번째 부인인 말라 메이플스와 이혼하기 직전인 상태였다. 그리고 트럼프가 이혼한 후 둘은 공식적인 연인 관계로 발전했으며, 2000년 트럼프가 개혁당 후보로 경선에 참여했을 당시 잠시 결별했던 것을 제외하고는 죽 연인 사이를 이어나갔다.
2005년 성대하게 치러진 둘의 결혼식은 당시 세간의 화제를 불러 모았다. 멜라니아가 입었던 웨딩드레스는 크리스티앙 디오르의 꾸뛰르 컬렉션이었으며, 드레스 장식을 완성하는 데만 무려 500시간 이상이 소요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가격은 약 10만 달러(약 1억 원)가 넘었다. 결혼식에는 450명의 엄선된 하객들만 참석할 수 있었으며, 이 가운데는 케이티 쿠릭, 하이디 클룸, 샤킬 오닐, 안나 윈투어, 소수의 공화당 정치인들, 그리고 심지어 클린턴 부부 등 유명인사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트럼프와 멜라니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배런(10)은 아버지를 쏙 빼닮은 까닭에 ‘미니 도널드’라고 불린다.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늘 양복과 넥타이를 갖춰 입는가 하면, 틈나는 대로 골프를 즐긴다. 무엇보다도 아버지처럼 사람을 부리는 데에는 타고난 능력을 갖추었다. 멜라니아는 “나는 아들을 가리켜 ‘미니 도널드’라고 부른다. 아들은 직접 유모도 해고하고, 가정부도 해고한다. 물론 재빨리 다시 고용했지만 말이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도 했다.
2005년 성대하게 치러친 둘의 결혼식. 당시 하객 중엔 이번 대선에서 맞대결을 펼칠 클린턴 부부도 있었다.
그렇다면 혹시 영부인으로서 멜라니아는 어떨까. 트럼프가 공화당 대선 후보가 된 마당에 멜라니아가 영부인이 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이 아니게 됐다고 말하는 미국 언론들은 앞다퉈 ‘영부인으로서의 멜라니아’에 대해 이런저런 예상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은 멜라니아가 전통적인 영부인과는 분명 다를 것이라고 점치고 있다. 우선 모델 출신이라는 점도 드문 데다 누드 화보로 논란이 됐던 점이 매우 이례적이라는 것이다(과거 모델 출신의 영부인으로는 팻 닉슨과 베티 포드가 있었다. 단, 누드 화보는 촬영한 바 없었다).
패셔니스타인 멜라니아가 ‘제2의 재클린 케네디’가 될 수 있다고 점치는 사람도 있다. 재클린 케네디의 전기작가인 패멀라 키오그는 “멜라니아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JFK의 상징적인 아내였던 재클린처럼 멜라니아도 아름답고 지적이며 차분하다. 그리고 여기에 세련된 패션 감각까지 겸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이례적인 점은 바로 멜라니아가 이민자 출신이라는 점이다.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멜라니아는 미 역사상 외국인 출신으로는 두 번째로 영부인 자리에 앉게 된다. 첫 번째로는 1825년 취임한 6대 대통령 존 퀸시 애덤스의 아내인 영국 태생의 루이자 애덤스가 있었다. 하지만 사실 애덤스는 정확하게 100% 이민자 출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 부친이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밖에 트럼프가 백악관 주인이 될 경우, 멜라니아는 미 역사상 최초로 공산국가 출신의 영부인이 된다.
영부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멜라니아 본인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와 관련, “만일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떤 영부인이 될 생각인가?”라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멜라니아는 “지금은 21세기다. 나는 나다. 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영부인이 될 것이다. 여성들을 도울 것이고, 어린이들을 위해 일할 것이다. 그들이 우리의 미래다”라고 답한 바 있다.
경선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자주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던 멜라니아는 이처럼 자주적이고 독립적인 여성의 모습을 종종 어필했다. 이는 트럼프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여성 유권자들을 의식한 행동으로 풀이되고 있다. 남편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에 대해서도 “그런 의도가 아니다. 남편은 말투를 바꿔야 한다”라고 따끔하게 충고를 했는가 하면, “남편은 훌륭한 협상가다”라고 추켜세우기도 했다. 또한 “우리 부부는 매우 독립적이다. 남편은 남편이고, 나는 나다. 나는 남편을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어른이지 않은가”라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내내 조용히 뒤에 물러나있던 멜라니아에 대해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국 언론들이 과연 앞으로 멜라니아에 대해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사뭇 궁금해진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이민자를 보는 트럼프의 시각 “그들은 살인자 강간범…우리 가족은 빼고~” “이민자들은 살인자들이자 강간범들이다. 그런 자들이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이처럼 이민자들에 대해 가차없이 막말을 퍼붓고 있는 트럼프이건만 우습게도 트럼프 본인은 이민자와 결혼했다. 그의 아내인 멜라니아는 슬로베니아 출신이다. 그리고 트럼프 본인도 독일 출신의 아버지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이민자 후손이다. 어디 그뿐인가. 첫 번째 부인인 이바나 역시 체코슬로바키아 태생이었다. 그야말로 모순도 이런 모순일 수가 없다. 이런 지적에 대해 트럼프는 당당하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가족들은 모두 ‘합법적인’ 이민자들이다.” 이 점에 대해 멜라니아 역시 <하퍼스바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미국으로 왔고, 또 일도 꽤 잘했다”라고 말하면서 “불법 체류는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은 규칙을 따라야 한다. 법도 따라야 한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또한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거듭 “나는 법을 준수한다. 나는 올바른 방법으로 미국으로 왔다. 몰래 숨어들어오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멕시코 이민자들을 겨냥한 남편의 막말에 대해서는 “멕시코 사람들에게 모욕감을 준 발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편은 ‘불법 이민자’를 말한 것이다”라고 두둔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모순적인 발언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전문직 취업비자(H-1B)에 대해서도 “H-1B 비자가 마구잡이로 남발되고 있다”고 쓴소리를 했지만 사실 멜라니아도 과거 H-1B 비자를 발급받아 미국에서 거주했었다. 모델로 활동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왔던 멜라니아는 당시 고학력 전문직 종사자들에게만 발급되는 H-1B 비자를 발급받았다. 사실 과학자, 컴퓨터프로그래머 등에게 발급되는 H-1B 비자는 대학 졸업증명서가 필수이지만 별난 미국의 현행 이민법상 모델들은 예외로 간주되고 있다. 대부분의 나이 어린 모델들은 절반 가까이가 고등학교도 미처 졸업하지 못했지만 대부분 H-1B 비자를 발급받고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