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은 물론 심부름, 집안일까지 다 해결해주는 ‘배달천국시대’. 하지만 배달알바생들은 ‘구의역 김군’처럼 사회로부터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보호조차 받지 못한다.
한 아무개 씨(25)는 대학교에 입학해서부터 틈틈이 용돈벌이로 배달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씨는 “학교에 가는 주중엔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 주말엔 오전 11시부터 밤 12시까지 배달 알바를 한다”며 “배달 일을 하면 다들 한 번씩은 사고를 겪는다고 볼 정도로 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접촉 사고에서 오토바이에서 넘어지는 경우까지 사고가 허다하다”고 말했다. 한 씨가 배달 업계의 변화를 직감한 것은 군 제대 이후였다. “군대 가기 전에는 중국집 같은 배달 음식점에서 알바로 일하면서 해당 음식점의 음식만 배달했다. 돈은 월급으로 받았고 배달 중에 사고가 나면 치료비를 받았다”면서 “제대 이후에는 음식점보다는 배달 대행업체의 채용 공고가 많이 떠서 자연스럽게 지원하게 됐다. 여기에서는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 음식점의 음식을 배달하고 있다. 알바생이 아니고 프리랜서로 계약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씨를 포함한 배달 근로자들의 노동 여건이 바뀐 배경에는 급변하는 배달 시장이 있었다. 지난 2010년 이후 배달통, 배달의 민족 등 스마트폰 앱 기반 배달주문 중개서비스가 급부상하며 기존 배달 구조가 바뀌었다. 배달주문 중개서비스는 간단히 말해 오프라인의 소비자와 음식점을 온라인에서 중개하는 O2O(Online to Offline) 서비스다. 예전에는 배달 음식점에서 직접 고객에게 음식을 배달했지만 이제는 배달 앱을 기반으로 한 주문 중개업체가 생겨난 것이다.
서울시에서 발표한 ‘2015년 서울지역 배달 아르바이트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미 지난 2014년에 배달 앱 시장규모는 1조 원대를 넘었고 2015년에 2조 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분석했다. 월 500만 명 이상이 배달 앱을 이용하고 있었고 배달의 민족, 요기요, 배달통 등이 배달 앱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배달의 민족의 경우 지난 2015년 기준 앱 다운로드 수가 1900만 건을 돌파했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소재에서 닭요리 전문점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는 “주문 대행업체와 계약을 한 이후 매출이 많이 증가했다”며 “예전에 매출을 올리기 위해 전단지 광고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광고가 필요 없이 모바일로 주변 지역 사람들이 주문을 해 매출이 많이 올랐다”고 말했다.
빠른 주문과 배달을 위해 업무의 세분화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기본적으로 주문만을 특화로 하는 주문 중개서비스와 배달만을 특화로 한 배달 대행서비스 등이 존재한다. 주문 중개서비스 업체를 통해 주문하면 그 정보가 음식점에 전달되고 다시 배달 대행업체가 이를 바탕으로 배달을 하는 방식이다. 주문 대행업체를 통해 배달 음식점에 하나의 주문이 들어오면 각기 다른 배달 대행업체들이 앱을 통해 같은 정보를 받게 된다. 그러다 보니 배달 대행서비스의 경쟁이 치열하다. 하나의 주문을 두고 여러 배달 대행업체가 서로 배달을 하려 하기 때문이다.
관련 앱을 설치한 모든 배달 근로자들 사이에서 ‘전투콜 배차’가 발생한다. ‘전투콜 배차’는 먼저 응답한 배달 근로자가 배달을 시작하는 방식에서 유래한다. 배달 건수로 실적을 올리는 배달 근로자들의 경쟁을 이용해 빠른 배달을 유도하는 것이다. 이들은 보통 배달 건당 수수료로 임금을 받으며 건당 수수료는 3000원 내외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배달근로자가 배달 중 사고를 당해도 배달 대행업체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것이다. 배달 대행서비스 업체는 배달 근로자를 고용하는 것이 아니고 배달 근로자와 개인사업자로 계약하기 때문에 배달근로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다.
A 씨(20)는 고등학생이었던 2013년 11월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와 충돌해 척수를 다쳤다. A 씨는 “주말에는 50건, 평일에는 20건 정도 배달 일을 했다”며 “그전에도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 해당업체에서 일한 지 한 달 반 정도 됐을 시기에 사고를 당했다.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 속상하고 막막했다”고 말했다.
A 씨는 흉추 골절과 흉수 손상 등으로 하반신이 마비돼 휠체어에 의존하고 있다. A 씨는 산업재해 보상을 요구했고 근로복지공단은 A 씨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요양비와 진료비를 지급하기로 했다. 또 근로복지공단은 산재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이 배달 대행업체에 보상액의 50%를 징수하겠다고 통보했다. 업체 대표는 A 씨가 근로자가 아니었다며 반발했고 결국 불복 소송을 냈다.
뜻밖에도 배달 대행업체에서 A 씨에게 산업재해 보상을 해줄 필요가 없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가 업체 배달 근로자들이 업체와 종속적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 재판부는 배달 근로자들의 출퇴근 시간이 없었던 것, 배달 요청을 거절해도 아무 제재가 없었던 것 등을 미뤄봤을 때 A 씨가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보지 않은 것이다.
또 다른 배달 근로자의 배달 도중 교통사고에선 상반된 판결이 있었다. 지난 2013년 서울고등법원의 판단 따르면 배달 근로자가 업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었지만 배달 업무 자체가 배달 대행업체의 앱을 통해 지휘 및 감독됐다는 점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지난 2003년에는 퀵서비스 관련 대법원 판결도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퀵서비스 배달을 했던 정 아무개 씨가 근로소득세를 납부하지 않았고 대기 시간에 개인용무를 볼 수 있었던 점에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볼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사정은 소규모 사업장에서 비용을 절감하기 위한 것이고 외근 업무의 특징에 기인한 것”이라며 정 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기도 했다.
현재 A 씨는 항소를 진행 중이다. A 씨 측의 변호를 맡은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의 김수영 변호사는 “A 씨를 포함한 배달 근로자들의 근로자성은 인정받아야 한다. 정해진 출퇴근 시간을 준수하지 않더라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업무시간을 배달 근로자의 상황에 따라 조절하는 상황 등은 배달 근로자의 자율성의 문제가 아니다. 업체에서 비용절감을 위해 배달 근로자에게 부담을 전가하기 위한 방식에 불과하거나 배달을 하는 외근 업무의 특성일 뿐이다”며 “이번 판결이 앞으로 배달 근로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선례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