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지난해 가을 KBS 2TV 드라마 <발칙하게 고고> 중 한 토막이다. 물론 드라마에서는 다소 과장되긴 했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다. 실제로 일부 고교생들의 동아리 활동이 단순한 취미 생활이 아닌 ‘필요에 의한 활동’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목고 학생들이 미국 유학을 위해 라크로스 등 이색 스포츠 동아리 활동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진은 ‘2009 아시아·환태평양 라크로스 선수권대회’ 개막전 여자부 한·일전 모습. 연합뉴스
지난달 29일 하남종합운동장 주경기장에서는 국내 내로라하는 특수목적고등학교 학생들이 참가하는 ‘한국라크로스 고교토너먼트’ 대회가 열렸다. 라크로스는 잠자리채 모양의 라켓을 사용하는 하키와 유사한 스포츠 종목이다.
다수가 해외 유학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오히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열리는 2학기보다 1학기가 더 바쁜 시간이다. 자사고·외고 학생들은 이 기간에 교내에서 치르는 중간·기말고사 시험은 물론 미국의 수능 격인 SAT, 대학 학점을 조기에 획득하는 AP(Advanced Placement) 시험 등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바쁜 와중에도 이들은 라크로스 대회에 참가해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타학교의 경기가 치러지는 쉬는 시간에는 노트북을 펼쳐놓고 과제를 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일부는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잠시 눈을 붙이기도 했다.
이처럼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학생들이 라크로스에 매달리는 이유는 바로 ‘진학’에 있다. 해외, 특히 미국 유수의 대학들은 입시에서 학과 성적뿐만 아니라 스포츠, 음악, 봉사활동 등 학생의 다양한 활동 내역까지 꼼꼼히 따지는 것으로 익히 알려져 있다. 바로 이것이 해외 유학을 꿈꾸는 학생들이 라크로스에 시간을 투자하는 이유다.
경기도의 한 외고에서 라크로스를 했고 졸업 후 미국 명문 공립대에 진학한 최 아무개 씨(23)는 “라크로스 경력이 대학 진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대학교에서도 교내 라크로스 클럽에서 학교 대표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
이어 “많은 학생들이 오로지 진학을 위해 라크로스를 시작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이 입시 관련 서류에 라크로스 활동 경력을 빼놓지 않고 있기는 하다”라고 말했다.
실제 라크로스 동아리나 클럽 팀을 운영하고 있는 대부분의 고등학교는 다수의 학생들을 해외 대학에 진학시키기로 유명한 곳이다. 지난달 열린 대회에 참가한 8개 학교는 외국인학교 1개교, 자사고 3개교, 외고 4개교 등으로 구성됐다.
또한 이들 학교는 라크로스 선수를 해외 유학을 지망하는 ‘국제반’ 학생들로만 채우고 있었다. 아무래도 라크로스라는 종목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유학에 대한 열망’이 적지 않게 작용한 것이다.
드라마 <발칙하게 고고>의 소재였던 치어리딩도 이 같은 양상이 드러난다. 국내에서 치어리딩이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던 시절 국가대표 선수가 미국 대학으로 진학한 일이 주목 받은 바 있다. 이후 유사한 유학 성공 사례가 소개되면서 치어리딩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대한치어리딩협회 관계자는 “현재는 저변이 확대되며 치어리딩에 관심을 갖는 학생이 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특목고 팀이 특히 활발히 활동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해외 대학에서 어떤 기준으로 학생들을 선발하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일부 대학이 치어리딩 활동을 했던 학생들의 리더십과 협동심 등을 좋게 평가해 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미식축구와 유사한 플래그풋볼에도 국내 특목고 학생들이 열을 올리고 있다. 대한미식축구 플래그풋볼연맹 홈페이지에 명시된 등록팀 9개 중 특목고에서 운영하는 팀이 5개에 달한다. 이외에도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자녀가 졸업한 것으로 유명한 한 대안학교는 대회에서 매번 우승을 차지하는 전통의 강호로 통한다.
라크로스와 치어리딩, 플래그풋볼의 공통점은 생소한 종목이기에 학생들의 호기심과 흥미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팀워크가 강조되는 종목의 특성 덕에 협동심을 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미국 대학이 긍정적으로 바라본다는 분석이 있다.
반면 세 종목 모두 짧은 국내 역사에 저변이 확대되지 않아 등록팀이나 선수가 적다. 대회가 소규모로 열려 성적을 내기도 쉽고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축구나 야구와 같은 인기종목에 비해 어렵지 않다.
김남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스포츠레저학부장은 라크로스를 즐기는 학생이 특목고에 집중되는 현상에 대해 “협회 등 라크로스 관련 단체는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그들의 지상목표인 한편, 과외활동이 필수적인 특목고 학생들은 실력향상이 어려워 진입 장벽이 높은 기존 인기 스포츠 외에 다른 종목을 찾으려는 양쪽의 니즈가 서로 만나며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며 “진학도 중요하지만 100% 그 이유만을 가지고 긴 시간 운동을 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청소년기에 건강을 관리하며 스포츠에 대한 흥미를 지속적으로 갖고 즐길 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김상래 인턴기자 scourge25@naver.com
‘라크로스’ 장비 최소 30만원…‘플래그풋볼’ 태클·몸싸움 없어 라크로스는 축구장 크기의 경기장에서 골키퍼 포함 10명의 선수가 경기를 펼친다. 그 기원은 캐나다 인디언이 즐기던 놀이를 프랑스인이 개량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잠자리채와 같이 생긴 스틱으로 고무공을 주고받으며 상대의 골대에 골을 넣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된다. 미식축구와 같이 강한 태클로 상대를 방해하기도 하기 때문에 신체 각 부위에 헬멧을 포함한 보호구를 착용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라크로스를 본격적으로 즐기려면 장비 구입에 최소 30만 원 정도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국내 외고에서 라크로스를 시작해 미국 유학중에도 즐기고 있는 최 아무개 씨(23)는 “특히 특목고 학생들이 주로 라크로스를 즐기는 이유가 진학과 관련된 것도 있지만 비용 문제가 빠질 수 없다. 대중적인 스포츠인 축구에 비해 즐기는 데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특목고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게다가 아직 협회가 안정적으로 운영되지 못할뿐더러 대중적 인기의 부족으로 스폰서도 좀처럼 구해지지 않는다. 국가대표로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도 선수 본인이 모든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다. 플래그풋볼은 미식축구와 규칙이 대동소이하지만 몸싸움이나 태클이 엄격히 금지돼 있다. 몸싸움 대신 허리춤에 달린 플래그를 뽑으면 상대팀 공격을 중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 미식축구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과격하지 않은 종목의 특성상 초등학생이나 여학생도 쉽게 즐길 수 있어 참여 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태클이나 몸싸움이 없기에 미식축구에서 착용하는 보호 장구도 필요가 없다. 플래그가 달린 허리띠만 착용하면 경기를 즐길 수 있다. 전용 허리띠가 없다고 하더라도 손수건을 뒷주머니 등에 넣고 플레이가 가능하다. 플래그풋볼은 라크로스에 비해 접근성이 높아 특목고 학생에 선수가 집중되는 현상이 덜 두드러진다. 라크로스와 플래그풋볼은 국내에서와는 달리 미국에서는 많은 인구가 즐기는 인기 종목이다. 라크로스는 전국 대학 클럽간의 전국리그, 프로 리그 등이 운영되고 있다. 플래그풋볼의 경우 유소년 시절 재능을 보이는 학생은 성인이 되며 미식축구로 전향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식축구는 미국 내 4대 프로스포츠 중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최고 인기 종목으로 평가된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