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 중구 송월동. 화려함을 자랑하는 차이나타운과 동화마을 바로 맞은편엔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송월시장이 있다. 하늘을 가리는 천막은 찢겨 성한 곳이 없고 평상에 내놓은 물건들에는 뽀얀 먼지들이 내려앉아 있다. 시장 건물 곳곳에 붙어 있는 D·E급 재난위험시설 지정 안내 표지판은 이 시장이 견뎌온 지난한 세월을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인천시 중구 송월시장은 현재 소수의 상인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인천 송월시장 “시대의 변화 인정하는 수밖에”
영화 <숨바꼭질>과 <차이나타운>의 황량한 동네의 배경이 되기도 한 송월시장에는 대다수의 상인들이 떠나고 현재 12개의 상점만이 남은 상태. 65년간 이곳을 지켰다는 ‘평해상회’의 주인 김필이 씨(여·87)는 송월시장에 대해 묻자 나물 다듬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처음에 나무막대기 가느다란 거 하나 세워놓고 좌판 값 3만~5만 원씩 내가며 시작했어. 이 가게는 50년 전에 세웠지. 이 시장은 예전에 돼지랑 말 팔던 데야. 근처에서 장사하던 사람들은 많이들 저세상 갔어. 이 가게에 내 행주질이 닿지 않는 곳이 없는데, 떠날 생각하면 눈물이 나. 난 여기 떠나면 죽을 거 같아.”
1937년 가축을 사고파는 장터로 생겨난 송월시장은 만석동 방향으로 넘어가는 육교가 생기고 철로 주변에 담이 쳐지며 급격히 쇠락했다. 주변에 대형마트들이 들어서자 송월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줄어들었다. 사람이 떠난 시장에 남은 건 철거뿐이었다. 폐쇄된 곳 일부는 시에서 매입하여 동화마을 관광객들을 위한 임시공영주차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김 씨처럼 몇몇 상인이 시장에 남아 있는 이유는 시와 합의를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남은 상인들도 언젠가 이곳을 떠나야 함을 알고 있다. 김 씨는 “젊은 사람들이 하려는 거 끝까지 우기면 뭐 하겠어. 떠나야지. 우선 새로운 곳도 마련해야 하는데”라며 말문을 닫았다. 다른 상인은 “낙후되고 붕괴위험이 있으니까 시에서 사들이려고는 하는데…”라며 향후 입장에 대한 언급은 삼갔다.
재난위험시설로 지정된 송월시장 외관.
인천 중구청 관계자는 “송월시장은 본래 2011년 8월경에 추진되었던 ‘송월아파트 재개발 사업’ 구역의 일부분”이라면서 “지역이 너무 낙후된 데다 수익성이 좋지 않아 사업이 정체되고 있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구청의 다른 관계자는 “송월시장 정비사업은 남은 상인 분들에게 땅을 매입하여 주차장, 쉼터 등으로 조성하는 걸 뜻한다”면서 “정비사업은 이전부터 시의 투자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상인들과의 협상이 계속 결렬되고 있다”고 보탰다.
여러 이유로 떠나기를 원치 않는 송월시장 상인들과 달리 인근 주민들은 빨리 재개발되기를 원하는 분위기였다. 송월시장 인근의 슈퍼마켓 주인은 “주민들은 다 쾌적하게 개발되기를 원하지만,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느냐”고 답답해했다. 한 공인중개사무소 직원도 “요즘 동화마을 때문에 송월동이 뜨고 있는데 관광객들이 흉물스러운 상태로 방치되어 있는 시장을 보면 어떻겠느냐”며 “재개발이 되어야 상권도 형성되고 지역이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마포 동진시장 “젊은 아이디어가 만든 기적”
송월시장처럼 쇠퇴의 길을 걸었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미래를 그리는 경우도 있다. 바로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동진시장’이다. 1960~1970년대 재래시장의 모습이 아직도 남아 있는 동진시장은 1980년대 주변에 슈퍼마켓과 대형마트들이 들어서며 빠르게 쇠락했다. 과거 동진시장에서 간판제작 관련 일을 했다는 김 아무개 씨(69)는 “38년 전에 이 시장에 처음 왔는데 이미 그때도 장사가 잘 안됐다”며 “상하수도 시설도 안 되어 상인들이 직접 설치했을 정도로 낙후되어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동진시장에는 젊은층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출처=문화포털 홈페이지
시장 옆 동교동 길에 작은 카페들이 입소문을 타며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할 때도 동진시장은 방치된 채로 있었다. 그러나 2013년 수공예생산자조합인 ‘모자란협동조합’이 이 공간을 수공예 생산자들의 판매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정비하며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개성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플리마켓, 전시회, 공연 등의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젊은 층은 열광했다. 현재 인스타그램에 ‘#동진시장’이란 해시태그로 검색된 결과만 1만 875건에 달한다.
기자가 동진시장을 방문한 날, 한참을 진지한 표정으로 시장 안쪽을 카메라 앵글에 담고 있는 한 여성이 눈에 띄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사진작가 박은경 씨(여·29)였다. 그는 “한국의 작은 골목들에 관심이 많아 홍대입구부터 둘러보다가 분위기가 독특한 이곳을 발견하고 들어왔다”며 “한국에 이런 장소가 또 있다면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6년 전 동진시장 내에 문을 연 복합문화공간 ‘플레이스 막’의 큐레이터는 “예전에는 주말에만 장터를 열었는데 큰 관심을 얻다보니 지금은 목요일부터 주말까지 장터가 열리는 것 같다”며 “요즘은 매월 마지막 토요일에 수공예품 외에 농·수산물도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동진시장이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 인근이라는 점도 이만큼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원인이지 않을까 싶다”고 덧붙였다.
동진시장의 변신에도 아쉬운 측면은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동진시장의 활성화가 빈 공간의 재활용이라는 측면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나머지 원래 상인들과의 상생은 크게 고려되지 못한 점. 매출 상승에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불편한 점이 많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남은 상인들은 변화한 동진시장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였다. 앞서의 김 씨는 “시장이 활성화되는 부분은 훌륭하다 생각하지만 조합 사람들과 소통이 없다보니 그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 건지 정확히 모르겠다”며 “예전에는 시장을 9시면 폐쇄했는데 요즘에는 24시간 개방하다보니 밤마다 취객들이 시장 안에서 행패를 부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박혜리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