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로 뿌옇게 변한 서울시내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지난 4월 24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6 서울 하프마라톤대회’에선 진풍경이 연출됐다. 약 7000명의 참가자 중 상당수가 마스크를 쓰고 달린 것. 이는 미세먼지 농도가 ‘매우 나쁨’을 기록해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됐기 때문이다. 마라톤이 열린 이날 서울 중구와 마포구 일대는 미세먼지(PM-10) 농도가 한때 200㎍/㎥를 넘기도 했다.
미세먼지 예보 등급의 법정 기준에 따르면 151㎍/㎥ 이상일 경우 ‘매우 나쁨’으로 표시된다. 시간평균농도가 150㎍/㎥ 이상 2시간 지속될 때는 주의보가 발령된다. 이때는 폐질환이나 심혈관질환이 있는 시민과 노약자, 어린이 등은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
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등 시민단체가 마라톤이 열리기 전날 성명서를 통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최악의 대기오염 속에서 마라톤을 하는 것은 자살행위”라며 행사 취소를 요구한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날 서울을 비롯한 전국 20곳 가까운 곳에서 마라톤 대회가 열렸지만 미세먼지 때문에 취소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대기 중에 미세먼지가 가득했지만 대규모 야외 행사는 그대로 진행됐던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 심각성을 느낀 서울시의회 남재경 의원(새누리당)은 5월 31일 ‘미세먼지 예보 및 경보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미세먼지 주의보나 경보가 발령되면 시에서 주최하는 야외 행사를 취소‧중단하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또 서울시가 민간 옥외 행사 중단을 권고하는 조항도 있다.
남 의원은 “보통 주말에 행사가 있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는데 미세먼지가 심각한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행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언론에서는 최악의 미세먼지라고 말하는데 서울시는 왜 이런 행사를 하게끔 방치하느냐는 민원이 많이 들어와 시에서 취할 수 있는 조치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기 시작했다”며 개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조례안에는 어린이와 노인, 호흡기질환자 등 민감군을 제외한 일반인의 경우 실외 활동 자제를 권고하는 수준으로 강제적 제한은 없다. 이 때문에 미세먼지 주의보가 발령돼도 마라톤, 골프 대회 등 야외 행사는 별다른 조치 없이 진행되곤 했다. 남 의원은 미세먼지 위험성을 행사 주최 측에 사전 고지할 경우 행사 중단에 따른 혼란을 막을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정작 서울시는 개정안에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민간 행사까지 시에서 관여할 수 있느냐 하는 부분에서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며 “대규모 행사 같은 경우 예산이나 홍보 등 세부계획이 사전에 미리 잡혀있는 상황인데 일방적으로 전면 취소를 통보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부득이한 경우 마스크를 지급한다거나 실외 행사를 실내 행사로 진행하는 방향으로 사후조치 매뉴얼을 만드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덧붙였다.
예보정확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개정안 통과의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김동언 서울환경운동연합 정책팀장은 “미세먼지가 고농도일 때 그 위험성을 생각하면 필요한 정책임에는 맞다. 하지만 사전에 알려야 하는데 예보정확도가 62%에 불과한 상황에서 실제 적용하면 혼란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꼬집었다. 예보정확도 향상 등 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얘기다.
남 의원 역시 “미세먼지 조례안을 검토·준비하다 놓친 것이 많다. 현재 서울 25곳의 측정 장소 중 일부는 공원처럼 공기 좋은 장소에 설치돼 있어 유동인구가 많은 도로변은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미세먼지 예보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적정한 곳에 설치할 수 있도록 세부 조항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상훈 인턴기자 ksang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