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지난달 27일에 일어났다. 전라남도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위치한 한 화학공장에서 작업을 하던 황 아무개 씨(39)를 포함한 4명이 독성가스 포스겐에 노출된 것. 이들은 한국바스프 직원으로 피해자는 원청업체 직원 2명, 하청업체 직원 2명이다. 한국바스프는 독일계 종합화학회사인 BASF SE의 자회사로 한국바스프 여수공장은 지난 1991년 들어왔다.
이날 황 씨는 공장 내 체임버(플랜트 보호건물)에서 동료들과 함께 외부에서 공기를 공급하는 마스크를 쓰고 기계장치 덮개인 맹판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다가 새어 나온 포스겐 가스에 노출됐다. 포스겐 가스가 노출된 이유와 당시 상황에 대해서는 여수경찰서와 노동부에서 현재 조사 중이다. 피해자 4명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하청업체 직원 황 씨는 심각한 중태에 빠졌다. 다행히 다른 3명은 검사 결과 이상 증세가 발견되지 않았다.
포스겐은 흡입할 경우 수시간 내에 폐수종을 일으켜 사망할 수 있는 맹독가스다. 노출 초기에는 자극이 크지 않지만 일정 시간 후에 증상이 심하게 나타날 수 있다. 노출 후 30분에서 48시간까지 증상이 없다가도 포스겐이 폐포를 손상시키면서 폐수종과 호흡곤란이 와 사망할 수 있다. 포스겐은 또한 독일군이 1차 세계대전 때 사용한 독가스로 2년 만에 120만 명이 노출돼 10만 명이 사망했는데 이 중 80%가 포스겐으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겐은 폴리우레탄을 만드는 원료로 공장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워낙 위험한 물질이라 시민단체들은 수십년 전부터 포스겐 사용을 반대해 왔다. 한국바스프가 지난 2001년 공장 증설하면서 포스겐 사용량을 늘릴 계획을 세우자 여수환경운동연합이 독일 본사까지 찾아가서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포스겐 사용량은 계획대로 늘어났다.
한국바스프가 지난 2001년 공장을 증설하면서 독가스 사용량을 늘릴 계획을 세우자, 여수환경운동연합이 반대시위를 벌이던 모습. 사진제공=여수환경운동연합
가스 노출로 인한 사고 역시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월 여수산단 내 LG화학 공장에서 혼합가스가 노출됐다. 다행히 흡입한 양과 시간이 짧아 피해자 5명은 사망하지 않고 부상으로 끝났다. 뿐만 아니다. 지난 2014년 1월에도 여수산단 내 한 공장에서 기름이 유출돼 1명이 부상당하고 340여 명이 진료를 받았다. 같은 해 7월 가스가 누출돼 1명이 사망했고 9월에는 염산으로 인해 1명이 사망한 사건도 있었다.
중태에 빠졌던 황 씨는 결국 지난 6월 9일 사망했다. 일부 시민단체들은 황 씨의 사망이 한국바스프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한다. 조환익 여수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사건이 일어난 시간은 오후 7시 40분께인데 황 씨가 병원에 간 시간은 오후 11시 50분께다. 한국바스프가 가스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다면 바로 병원에 보내야 했다”며 “아직 사고경위를 조사 중이라 누구의 과실인지는 모르지만 회사에 책임이 없을 수 없다. 그럼에도 보통 이런 형태의 안전사고는 피해자가 사망하면 피해자의 잘못으로 넘겨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한국바스프 측은 잘못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한국바스프 관계자는 “우리 역시 일어나서는 안 될 사고라고 생각해 어느 부분에서 잘못이 있었는지 면밀히 조사 중”이라며 “책임질 부분은 책임을 질 것이고 재발방지 대책도 고민할 것이다. 단순히 자의적인 결정이 아니라 지역사회와 협력해 토론하는 시간도 가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여수환경운동연합이 문제 삼은 늑장대응에 대해서는 “현재 조사 중이라 내부에서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여수산단에 위치한 한국바스프 공장 전경.
이 사건의 또 다른 문제는 하청업체 직원이 위험에 노출됐다는 점이다. 이번에 사망한 황 씨는 하청업체의 직원이었다. 최근 발생한 구의역 사고와 마찬가지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일은 주로 하청업체 직원들이 담당한다는 게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실제로 여수산단에서 발생한 사고 대부분은 하청업체 직원들이 피해자였다. 조환익 사무국장은 “매년 최소 2~3회 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한다”고 전했다. 지난 2013년 3월에는 여수산단에 위치한 대림산업 폴리에틸렌 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하청업체 직원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당시 공장에서 근무하다 부상을 입었던 신성남 씨는 현재 민주노총 여수시지부 지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신 씨는 “여수산단이 생긴 이래 현재까지 120명 이상의 근로자가 사고로 사망했다. 그러나 정확한 기록이 없어 실제로는 더 많을 수 있다”며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는 게 없다. 회사는 안전관리 대책을 세운다고 하지만 늘 그때뿐”이라고 전했다.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우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도와주고 싶은데 이번 피해자들은 민주노총 노조 소속이 아니다. 하청업체 직원이 노조에 가입하면 해고 위험이 있기에 쉽게 가입 못했을 것”이라며 “자칫 잘못했다간 우리가 이익집단으로 비칠 수 있어서 행동하는 게 조심스러운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보통 이와 같은 산재사고가 발생하면 노동부나 경찰이 조사를 맡는다. 그러나 신 씨는 관련 전문가들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재발방지 대책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의 한국바스프 관계자는 “일리가 있는 주장이지만 우선은 관련 기관의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 이건 어차피 해야 하는 부분”이라며 “어떤 방법으로 재발을 막을지는 고민을 해야 하는 부분인데 말씀처럼 전문가를 통한 조사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