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포천시 신북면 계류리에 위치한 석재단지는 지난해부터 이 문제로 골머리를 앓아왔다. 이곳에는 석재만을 취급하는 공장 7곳을 포함해 모두 11개 업체가 입주해 있다. 단지 내 기숙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상주 직원들은 100여 명에 이른다. 이곳 단지에 포천민자발전(대우건설)이 변전설비 건설 공사에 착수한 것은 그보다 이전이지만 단지 내 업체 사람들은 “지난해 중순까지 변전소를 설치하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이 변전설비가 오는 8월부터 정상 가동에 들어간다는 것을 알아낸 업체 사람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피해 보상 등을 요구하기 위한 집단행동에 나섰다. 위원회의 대표는 변전설비와 맞닿아 있는 석재공장 ‘기상산업’이 맡았다. 기상산업은 작업 부지와 변전설비 간 거리가 57m에 불과하며, 직원들이 상주하는 기숙사 역시 변전설비로부터 130m가량 떨어져 있을 뿐이어서 다른 업체에 비해 더욱 큰 피해가 우려되고 있는 실정이다.
포천민자발전의 변전설비와 맞닿아있는 A 산업 부지. 기상산업의 부지와 변전설비 간 거리는 약 57m다. 사진제공=기상산업
가장 큰 문제는 전자파의 위해성이다. 기상산업 천세원 대표는 “총 30명 가운데 당장 전자파 위해성을 겁낸 직원들 9명이 사표를 냈다”며 “변전설비가 정상 가동을 시작하는 8월이 되면 아예 전 직원들이 그만둘 기세”라고 불만을 토했다. 이에 대해 대우건설 측은 “해당 변전설비는 승압변전소가 아니라 발전소에서 생산된 전기를 한데 모아 송전선로로 나눠 보내는 스위치 야드(Switch Yard)로 위해성을 논의할 만큼의 전자파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345㎸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변전설비의 송전선은 기상산업 직원들이 작업하는 부지를 그대로 지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비대위 측은 변전설비와 관련해 한전과 산업통상자원부 측에 피해 보상과 대책 마련을 지속적으로 촉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한전 측은 “아직 (변전소를) 기부채납 받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관할이 아니다”라며 묵살했고,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변전소는 애초 건설시 변압 설비로부터 충분한 이격 거리가 확보돼 있기 때문에 변전소 주변지역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답변의 근거로 삼는 것은 2015년 6월부터 시행된 ‘송·변전설비 주변지역의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다. 해당 법률에 따르면 송전선로 주변지역에 대해서는 재산적 보상, 주택매수, 지역 지원 사업 등이 지원된다. 재산적 보상은 송전선로 건설로 인한 주변 토지의 가치하락 등 재산상의 영향을 보상하고, 주택매수는 주택 소유자가 사업자에게 신규 송전선로 인근 주택의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게 돼 있다. 또 주변 지역 지원 사업은 송·변전설비 주변 지역 주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지역경제 발전을 위한 지원 사업을 매년 실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송전선로 주변지역의 재산적 보상은 765㎸의 경우 33m 내, 345㎸의 경우는 13m 내에 적용된다. 주택매수는 각각 180m, 60m 내에서 적용되며, 지역 지원 사업은 1000m와 700m가 적용 범위다. 그러나 변전소 주변 지역에 대해서는 재산적 보상과 주택매수를 제외하고 765㎸의 경우 850m, 345㎸의 경우 600m 내에 대한 지역 지원 사업만이 지원될 뿐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이에 대해서 “변전소 부지는 한전이 소유하며, 변압기로부터 울타리까지 평균 130~200m의 이격 거리가 확보돼 울타리 바깥은 피해가 거의 없으므로 재산적 보상 및 주택매수를 실시하지 않는다”라고 답변해 온 바 있다.
그러나 실제로 기상산업과 포천민자발전의 변전설비 간 이격 거리는 60m도 채 되지 않기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의 모호한 답변이 문제가 됐다. 비대위 측은 “산자부에 ‘이격 거리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변전설비의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나’라고 질의하자 ‘130~200m의 이격 거리는 통상적으로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 이를 토대로 거리가 멀거나 가까운 것에 따라 보상 여부 자체를 결정할 수는 없다’는 식으로 답변했다”고 말했다. 이격 거리가 충분하다는 이유만으로 변전설비 건설에 따른 보상 여부가 정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보상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근거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상산업 부지와 인접해 있는 변전설비. 가림막은 펜스 뿐이다. (사진=기상산업 제공)
애초에 해당 법률이 제정된 것은 송·변전설비 건설에 따른 전자파 등 인체 위해 요소로 인한 주민의 건강권 침해 우려 및 주변 토지의 가치 하락 등을 보상하기 위함이었다. 한국환경정책 평가연구원에 따르면 345㎸의 변전소의 경우 전자파의 직접영향권 평가범위는 300~500m이고, 전자파 영향 조사 범위는 변전소를 중심으로 1km 이내를 간접영향권으로 설정할 수 있다. 변전소는 인입되는 가공송전선로의 경과지에 따라 자기장 노출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러한 영향 범위 설정이 반드시 고려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장해 왔다.
그러나 산업통상자원부 측은 “애초에 전자파의 위해성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우려만으로 현행 법률을 초월해 보상을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라고 말했다. 대우건설 역시 “전자파 발생에 따른 보상은 변전소 인근 지역마을에 대해 법률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는 전부 실시한 상태”라며 “다만 법적으로 석재단지는 송·변전설비와 마찬가지의 산업단지로 보기 때문에 같은 산업체끼리는 보상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송·변전설비 주변지역 보상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은 밀양 송전탑 사태가 전국적인 쟁점으로 부상하면서의 일이다. 이 때문에 송전선로 주변 지역에 대한 지원 범위는 비교적 상세하게 규정됐지만 변전소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애매모호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석재단지 비대위 측 한 관계자는 “관계기관들은 문제가 시끄러워지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우리 중에 누가 죽어야지만 관심을 두겠나”라며 향후 산자부, 한전 등 관계 기관을 상대로 민사 소송까지 불사할 의사를 밝혔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