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틸리케 감독은 유럽 강호들과의 두 차례 평가전을 통해 보완점과 희망을 동시에 발견했다고 평가했다. 스페인전에서 고민하는 모습. 연합뉴스
축구대표팀을 이끌었던 전 감독 A 씨는 유럽에서 치른 두 차례의 평가전에서 대표팀이 보인 전력 차이에 대해 오히려 기자에게 질문을 던지며 답을 구했다. 대표팀은 스페인전에서 6실점했다. 말 그대로 참패였다. 움직임은 둔했고 유럽파는 존재감을 느낄 수 없을 지경이었다. A매치 16경기 연속 무패, 10경기 연속 무실점 기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슈틸리케 감독이 스페인전에서 보인 대표팀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체코전에선 그 대안을 제시했다. 즉 체코전은 스페인전에서 선발로 뛰지 못했던 선수들을 내보내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첫 골을 넣은 윤빛가람과 결승골의 주인공 석현준에 이어 골키퍼 정성룡은 스페인전의 주전들이 아니었다. 이 선수들이 체코전을 끌고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빛나는 활약을 펼쳤다. 과감하게 선수 교체를 해서 승부수를 띄운 감독의 용병술과 추진력이 돋보였다.”
대표팀을 따라 유럽 원정 취재를 다녀온 B 기자는 스페인전 전반에 3실점하는 순간 2014 브라질월드컵 알제리전이 떠올랐다고 말한다.
“홍명보 감독이 알제리전에서 전반에만 3실점했을 때의 표정을 잊지 못한다. 슈틸리케 감독도 스페인전에서 전반 3실점 하고 후반에 추가 실점이 계속되자 2년 전 홍명보 감독을 보는 듯했다. 선수들이 우왕좌왕하고 드리블하다 공을 뺏겨 실점하는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멘탈 붕괴가 된 듯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스페인전이 평가전이 아니라 국제대회였다면 끔찍한 참사로 기억됐을 것이다.”
스페인전 대패로 어수선했던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은 건 감독이나 코치들이 아닌 베테랑 선수였다. 체코전에서 곽태휘(5번)가 그 역할을 수행했다. 연합뉴스
B 기자는 슈틸리케 감독의 전술에 대한 문제점이 부각된 경기였지만 이후 체코전에서 보인 대체 선수 선발과 곽태휘, 정성룡 등 베테랑 선수들에게 책임을 부여한 부분이 눈에 띄었다고 설명한다.
“세대교체가 진행 중인 대표팀의 가장 큰 문제가 카리스마형 리더의 부재였다. 기성용이 주장을 맡고 있지만 이전 김남일 박지성이 보인 아우라와는 차이가 있다. 그런 상황에서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전을 통해 확실한 카리스마형 리더나 베테랑 선수들의 노련함을 절실하게 느꼈을 것이다. 선수들이 흔들릴 때 그라운드 안에서 선수들을 확실하게 이끌어갈 만한 진정한 리더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체코전에는 이런 부분을 포함한 선수 교체가 있었다.”
슈틸리케 감독은 스페인전의 베스트 11과 비교해 무려 7명이나 새로운 이름을 선발 명단에 올렸다. 2012년 9월 11일 이후 3년 9개월 만에 A매치에 나서는 윤빛가람이 가장 눈에 띄었다. 윤빛가람은 전반 프리킥 상황에서 다비스 실바를 연상케 하는 감각적인 오른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키며 분위기를 이끌었다. 윤빛가람은 또한 전반 40분 석현준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다. 스페인전을 벤치에서 시작한 윤빛가람과 석현준이 체코전의 2골을 합작하며 승리를 이끈 셈이다.
스페인전에서 후반 교체 출전했던 곽태휘가 체코전에서 선발 출전한 것도 B 기자의 설명과 맥을 같이 한다. 슈틸리케 감독이 스페인전에 드러난 대표팀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다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다음은 해설위원 C 씨의 의견이다. “홍명보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이후 대표팀의 주축 선수들은 대부분 ‘홍명보의 아이들’이었다. 쉽게 말해 주로 유럽에서 활약하는 ‘홍명보의 아이들’이 대표팀의 얼굴이고 실력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들의 경기 내용을 면밀히 살펴보면 위기 상황에서 그걸 헤쳐 나가는 플레이나 솔선수범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박지성, 이영표가 뛰던 대표팀 상황과는 가장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한마디로 투쟁심이 실종됐다고 할 수 있겠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임 감독이 어떤 부분에서 실패를 했는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하게 선수 변화를 하고, 유럽파 선수들에게 끌려가는 경기 운영을 하지 않고 있다.”
스페인전에선 전술 전략 투지 자신감 등을 엿볼 수 없었던 반면 체코전에선 그 모든 부분이 되살아났다. 스페인전에서 파울을 당해 넘어진 ‘캡틴’ 기성용. 연합뉴스
축구 에이전트 D 씨도 대표팀 선수들을 통해 “곽태휘가 체코전을 앞두고 선수들을 소집해서 정신력 부분에 대해 강조했다는 얘기를 들었다”면서 고참 선수 역할의 중요성을 피력했다.
“스페인전 대패로 어수선했던 선수단 분위기를 다잡는 건 감독이나 코치들이 아닌 베테랑 선수였다. 그중 곽태휘가 그 역할을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체코전을 앞두고 선수들을 모은 후 정신 자세를 새롭게 가다듬은 걸로 알고 있다.”
만 35세의 곽태휘는 체코전의 주장이었다. 그는 경기를 뛰면서 쉴 새 없이 후배들에게 다양한 얘기를 건넸다. 스페인전에서 무너진 수비진은 곽태휘가 중심을 잡으면서 견고한 성을 구축했다. 유럽 원정을 앞두고 발목 부상으로 고생했던 곽태휘는 체코전에서 내색하지 않고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한국 남자축구 대표팀은 오는 9월 1일 중국과의 홈경기를 시작으로 2017년 9월 5일 우즈베키스탄전까지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을 치른다. 한국은 이란, 우즈베키스탄, 중국, 카타르, 시리아 등과 함께 A조에 편성됐다. 조 1, 2위가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이런 가운데 전 대표팀 감독 A 씨가 강조한 내용을 그대로 옮겨본다.
‘신구의 조화. 대표팀 경기가 펼쳐질 때마다 강조되는 부분이다. 투지와 투쟁심. 어린 선수들이 깊이 새겨들어야 할 덕목이다. 태극마크의 간절함. 대표팀에 뽑히는 선수들이 가슴에 담고 있어야 할 정신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위기의 손흥민 해법은? “리그보다 주전 뛸 수 있는 팀이 중요” 한때 슈틸리케호의 에이스였던 손흥민이 좀처럼 부진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 더욱이 석현준의 전투적인 공격력이 급부상하면서 손흥민과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손흥민은 스페인전에서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한 채 교체 아웃됐고, 체코전 역시 윤빛가람과 석현준의 활약에 가려 그의 이름을 떠올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손흥민이 좀처럼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요신문DB 축구 해설위원 C 씨는 손흥민 문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곁들였다. “손흥민은 현재 석현준과 가장 흥미로운 비교 대상이다. 석현준은 유럽의 다양한 팀을 돌아다니다 어렵게 주전 자리를 차지했고, 소속팀에서의 경기력이 대표팀에서도 발휘되고 있다. 손흥민은 독일 분데스리가를 떠나 프리미어리그로 이적하면서부터 시련을 반복하고 있다. 분데스리가에선 손흥민이 득점하기 좋은 퀄리티 있는 패스의 도움 받았다. 그러나 지금 토트넘에선 전혀 그런 상황이 연출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가가와 신지를 떠올려 보자. 가가와 신지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지만 맨유에선 이전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이다. 결국 다시 독일 도르트문트로 돌아갔고, 지금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개인적으로 손흥민이 가가와 신지의 사례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리그가 중요한 게 아니다. 내가 주전으로 뛸 수 있는 팀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해설위원 C 씨는 손흥민이 스페인전에서 교체된 후 수건을 던진 행위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대표팀 벤치에는 경기에 뛰지 못하는 고참 선수들이 앉아 있었다. 자신의 경기력에 화가 나 수건을 패대기쳤다지만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은 손흥민의 행동을 어떻게 바라봤을까 싶다. 굉장히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손흥민이 나중에 자신의 철없는 행동에 대해 사과했지만 축구선수는 축구로 인정받아야 한다.” 박지성이 은퇴하면서 손흥민은 박지성의 뒤를 잇는 스타플레이어로 떠올랐다. 그러나 잇단 여자 연예인들과의 열애설에다 소속팀에서마저 위기를 겪다 보니 일부 팬들은 손흥민이 초심을 잃은 게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현재 대표팀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수로 꼽히는 손흥민의 위기는 대표팀의 전력면에서도 큰 손해이다. 축구 에이전트 D 씨는 손흥민이 프리미어리그를 벗어나 다른 리그로 이적하는 걸 대안으로 제시했다. “손흥민은 한창 성장해야 할 선수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팀으로 자리를 옮겨 새로운 도전을 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손흥민 외에도 한창 뛰어야 할 선수들이 뛰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이청용, 지동원도 마찬가지다. ‘아스널의 박주영’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