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 새 공급망관리 프로그램 eSCM을 개발하면서 남품업체들로부터 사용료를 받기 시작했다. 기존 서비스인 ‘EDI’은 모든 협력업체에 ‘무료’로 제공했다. 사진은 농협중앙회 본사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SCM은 각 유통업체가 물품 생산부터 납품까지 공급의 모든 과정을 관리하는 것을 뜻하는 경제용어다. 예를 들면 농협하나로마트가 축산업자로부터 쇠고기를 납품받을 때 어떤 부위를 어느 시기에 얼만큼 주문할 것인지 결정하고, 각 물류센터에 입고하는 과정까지 관여하는 업무 처리 양식이다.
eSCM은 SCM을 구현한 온라인 서비스다. 공급자와 수급자는 eSCM을 통해 특정 상품의 재고를 확인하고, 발주를 넣거나 배송을 요청할 수 있다. 농협 측은 “업무 효율성 증가와 납품·협력업체들의 편의를 위해 eSCM을 개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부 협력업체는 신규 도입된 eSCM 서비스에 강한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eSCM을 이용하려면 사용량에 비례해 요금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eSCM의 월 기본료는 2만 원, 전자세금계산서를 발행하거나 배송·반품 등의 업무를 처리할 때도 수천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자연스레 농협하나로마트와 거래량이 많은 업체일수록 사용료가 높아지는 구조다. 한 협력업체는 월 기준 100만 원가량을 농협에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농협 측은 eSCM 연간 예상 매출을 45억여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농협은 eSCM 개발 전 유사한 서비스인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를 모든 협력업체에 ‘무료’로 제공했다. EDI는 eSCM과 기본 구성이 같다. EDI를 통해 상품주문서를 작성하고, 영수증을 발급받는 등 회계·배송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 1월부터 농협은 EDI 서비스를 종료하고 eSCM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이에 대해 농협 관계자는 “가입을 강제한 적은 결코 없다”며 “다른 대형 유통사들은 전자문서로만 발주를 받기 때문에 각자 개발한 eSCM을 이용하지 않으면 협력업체가 납품할 수 없다. 농협하나로마트는 아직도 전화나 구두 발주가 과반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농협 관계자는 한 대형 유통업체를 예로 들면서 “C 사는 eSCM을 통해 연간 100억 원이 넘는 매출을 올리고 있다”며 “C 사에 비해 우리 사용료는 70~80% 수준에 불과하다. 농협 또한 상품 공급자로 각 대형마트에 연간 1억여 원의 eSCM 이용료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C 사 관계자는 “우리는 월 기본료 2만 원에 데이터 사용에 따라 과금하고 있지만 중소업체의 경우 기본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며 “협력업체가 워낙 많아 매출액만으로 단순 비교하기는 힘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 각 유통사들은 2000년대 후반부터 EDI에서 eSCM으로 상품공급 시스템을 전환했다. 이 과정에서 데이터 이용료를 협력업체에 과금했다. 그러나 농협은 지역 하나로마트 법인까지 포함해 연 평균 100억 원을 EDI 시스템 운영비 및 관리비로 지출했다. 농협 측은 “그간 상생의 원칙상 이용료를 받지 않았는데 농협은행과 전산망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결제 보안 문제 등이 노출됐다”며 “새로운 시스템을 개발할 필요성이 생겼고, 개발비는 전액 우리가 부담하지만 관리비 및 유지비는 시스템 사용 업체가 내야 한다는 원칙 하에 협력업체에 대한 설득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eSCM 등록 가입자(법인 포함)는 약 7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사실상 eSCM 관리·인건비, 유지·보수비, 통신비 등을 지급하고 있다. 가입자 가운데는 대기업도 있지만 영세·중소기업도 있다. 경기악화로 한 푼이 아쉬운 상황이라 예정에 없던 월 수십만 원의 지출은 이들에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 하나로마트 납품업체 관계자는 “eSCM의 경우 내부 비용 부담을 일부 외부로 전가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협력업체들은 시스템이 변경되기 전 KT 측 주최로 열린 사업설명회에서 비용 인상에 대해 미리 고지는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사업설명회에서 이미 협력업체들이 비용 인상에 대한 불만을 수 차례 제기했으나 주최 측에서 ‘아직 정해진 바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고 전한다. 다른 협력업체 관계자는 “월 몇 만 원가량 지출되던 비용이 지금은 월 수십만 원가량으로 10배나 뛰었다”며 “대형마트에도 같은 항목으로 비용이 지출되기는 하지만 농협에 지불하는 비용보다 적은 것은 물론 시스템의 질이나 납품물량에 비해 농협하나로마트가 훨씬 과하다”고 전했다.
하나로마트 납품업자 가운데 자체 SCM 전산망을 갖춘 대기업은 농협과 B2B(기업 간 거래)를 통한 상품 공급이 가능하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 부담으로 전산망 구축이 어려운 영세·중소기업은 대형 유통사가 만든 eSCM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비용을 누가 부담할 것인지에 대한 문제로 보이는데 협력업체에 중복된 비용 부담을 요구하는 문제가 아니라면 공급 계약상 여러 사정을 따져 판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농협 측은 “eSCM을 도입하면서 이 같은 민원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며 “앞으로도 협력업체와 협의 자리를 계속 만들겠다”고 밝혔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