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승엽은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선수보다 야구장을 일찍 찾아 훈련을 시작한다. | ||
요즘 국내 야구팬들은 스트레스 받을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한때 극도로 부진했던 이승엽이 6월 말부터 뚜렷하게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승엽은 천재가 아니다
이승엽이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끝없는 노력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부진을 치유하기 위해 야구장에 오후 1시까지 일찍 나가 끝없는 추가 훈련을 했다. 일본프로야구는 오후 6시에 경기가 시작된다. 타임테이블의 특성상 선수가 오후 1시까지 출근한다는 건 일반 직장인이 아침 6시에 매일 나가는 일이나 마찬가지다. 그만큼 이승엽은 절박했다. 요미우리와 4년 계약은 내년까지다. 하지만 2군을 전전했던 지난해에 이어 올시즌까지 형편없는 성적에 그친다면 계약 마지막 해인 내년엔 더욱 팀 내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우선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이승엽은 한국프로야구에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냈고, 일본에서도 한때 요미우리 4번까지 꿰차는 등 탁월한 경력을 자랑하지만 그가 근본적으로 ‘천재형 스타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선천적 능력 보다는 후천적 노력에 의해 오늘의 자리에 올랐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다.
과거 삼성에서 이승엽을 지도했던 백인천 SBS스포츠 해설위원은 “천재성으로 놓고 보면 이승엽 보다 오히려 양준혁이 훨씬 나았다. 양준혁은 타고났다. 본인이 중장거리 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어려서부터 홈런 타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양준혁은 이승엽 보다 더 많이 치는 홈런 타자가 됐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거꾸로 해석하면 이승엽의 기량은 상당 부분 노력의 결과라는 얘기가 된다.
양준혁도 이승엽의 끊없는 정열에 늘 놀라곤 했다. “남들은 쉬엄쉬엄 할 때에 승엽이는 늘 스스로 채찍질을 했다. 그걸 보면서 대단하다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다. 이승엽이 99년 54홈런으로 한국 신기록을 세운 뒤 그 후 2~3년에 걸쳐 꾸준히 타격폼을 업그레이드하려는 노력을 했다. 양준혁은 “54홈런을 친 타격폼을 포기하고 새로운 걸 시도하는 승엽이를 보면서 많은 걸 느꼈다”고 회상한다.
핑그르르 돌던 상체를 잡다
백인천 해설위원, 김용희 해설위원 등이 한결같이 지적하는 부분이다. “집요하게 몸쪽으로 공략해오는 일본 투수들을 상대하다보면 자신만의 스트라이크존을 잃게 된다. 나중엔 조바심이 생기다보니 하체가 충분히 고정되지 못한다. 그래서 스윙때 상체가 먼저 나가면서 타구에 힘을 싣지 못한다.”
그래서 나쁠 때 나오는 이승엽의 버릇중 하나가 바로 ‘발레 스윙’이다. 헛스윙한 뒤 제풀에 힘을 못 이겨 한쪽 발을 들고 핑그르르 도는 모습이 가끔 보인다. 이게 나오면 이승엽의 타격감이 바닥이라고 보면 된다. 올시즌에도 이런 모습이 잦았다. 하체 무게 중심을 잡기 위해 이승엽은 색다른 훈련 방법까지 동원하기도 한다. 때론 언덕길에서 내리막쪽을 향해 선 뒤 스윙 훈련을 한 적도 있다. 철저하게 무게중심을 뒤에 남겨놓으려는 노력이다.
용병임을 뼈저리게 느끼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용병은 철저하게 경계 대상이다. 불같은 성격으로 유명한 호시노 센이치 전 한신 감독의 경우엔 용병에게 투 스트라이크 이후 안타를 허용하는 투수에게 대놓고 욕을 한다. 용병에게 만큼은 맞지 말라는 뜻이다. 이승엽은 용병인데다 일본 최고인기팀 요미우리의 핵심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늘 집중견제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차라리 볼넷으로 내보낼지언정 이승엽에겐 안타를 내줄 수 없다는 게 센트럴리그 다른 팀들의 공통된 자세다.
2006년부터 요미우리 유니폼을 입게 된 이승엽은 첫 2년과 달리 지난해와 올해에는 자신이 용병임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이승엽은 늘 용병이 아니라 요미우리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동료들과 어울리려 노력했고, 스스로 팀의 중심이 되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하지만 왼손 엄지 부상 때문에 시즌 대부분을 2군에서 보낸 지난해부터 이승엽은 결국 용병은 용병일 뿐이라는 걸 많이 느낀 것 같다.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배려도 약해졌고, 분명 팀내 프런트의 시선도 싸늘해졌을 것이다. 어찌보면 이 같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이승엽을 더욱 강한 존재로 만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장진구 야구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