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역 11번 출구 앞은 붐비는 인파로 한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었다.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라고 적힌 푸른 조끼와 썬캡을 착용한 이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이 비장한 표정으로 A3 용지 크기의 푸른색 포스터를 들고 있었다. 형형색색의 한복을 곱게 갖춰 입고 댕기까지 땋은 소녀들 손에도 태극기와 푸른색 포스터가 들려있었다. 포스터의 문구가 눈에 띄었다. “흡연은 폐암을 음주는 간암을 동성애는 에이즈를” 엄마와 함께 온 듯 보이는 어린아이가 자기 키만한 피켓을 들고 있었다. “동성애는 죄악입니다”
“박원순OUT 동성애OUT” “차별금지법OUT 이슬람OUT” 경찰 추산 1만 2000여 명이 참가한 ‘2016 서울광장 동성애 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는 서울광장 맞은편 덕수궁 대한문광장에서 진행됐다. 1부 교회연합기도회에서는 예배와 기도회가, 2부 국민대회에서는 공연이 이어졌다. 서울광장 퀴어축제반대 국민대회 준비위원회는 정부에 △차별금지법 추진 중단 △탈동성애 인권보호법 제정 △공공장소에서의 동성애 축제 개최 불허 등을 요구했다. “서울시청 광장이 성적일탈을 일삼는 동성애자들의 축제장소로 고착화되는 것을 막는다”며 반대서명을 받기도 했다.
경찰과 축제를 반대하는 시위자들이 행사가 열리는 시청광장을 둘러싸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팎의 온도차는 극명했다. 비장감이 감도는 행사장 밖과는 달리 광장의 분위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공중에는 무지개색 깃발이, 잔디밭 위에는 한 남성이 착용한 무지개색 드레스 자락이 휘날렸다. 토끼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한 게이커플이 손을 잡고 깡충깡충 뛰어 다녔다. 애견을 데려와 산책하듯 거닐며 축제를 즐기는 커플도 다수 있었다. 참가자들 대부분은 서로 아는 얼굴인 듯 저마다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축제 도중 소나기가 쏟아졌다가 날씨가 개자 한 참가자가 외쳤다. “어머, 비 그치는 것 좀 봐. 날씨까지 좋다.”
이날 행사장에서는 100여 개의 부스가 운영됐다. 부스 운영자들은 성소수자들을 지지하는 단체부터 기업, 정당, 국가의 대사관까지 다양했다. 그 중 단연 돋보였던 것은 프리허그를 진행했던 ‘성소수자 부모모임’ 부스다.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동성애자, 양성애자, 트랜스젠더의 부모, 가족, 지지자의 모임이다. 해당 부스에서 진행한 프리허그 행사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누리꾼들 사이에서 회자됐다. 조심스레 다가간 학생이 중년 여성의 품에 안긴 뒤 눈물을 흘리자 여성이 귓가에 속삭인다. “엄마는 널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 한단다”
행사장 한켠에 마련된 4개의 교회부스에는 회색 로만칼라를 입은 푸른 눈의 목사가 있었다. 교회부스 관계자는 “여기 있는 교회 부스는 모두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입장이니 둘러보시라”며 “생각보다 동성애를 지지하는 교인도 많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떠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은 없다고 믿는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근본적인 포용”이고 주장했다.
다른 부스에서는 무지개색 빙수를 팔거나 음료, 간식을 판매했다. ‘따끈따끈 게이커리’ 부스에서는 ‘혐오에 맞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큐트, 섹시, 말빨’ 등으로 이름 붙인 프레첼을 팔았다. 아기자기한 섹스토이를 판매하는 부스도 있었다. “귀엽게 생겼다” 부스를 구경하던 한 여성이 말하자 다른 여성이 말했다. “사줄까요?” 해당 부스 주변에는 유독 여성 커플이 많았다.
정의당 성소수자위원회와 노동당 성정치위원회, 녹색당 부스에서는 혐오표현 및 혐오범죄 처벌법, 성전환자 성별변경 특별법 제정 등을 골자로 한 ‘파트너십법’과 ‘차별금지법’을 홍보했다. 시민단체인 군인권센터 부스도 눈에 띄었다. “기부금은 게이입영자를 위한 인권캠프에 사용된다”는 팻말이 붙어있었다.
이날 축제의 백미는 퀴어 퍼레이드였다. 오후 4시 30분이 되자 축제 참가자들은 메인무대 옆으로 열린 입구를 따라 바리케이드 밖으로 나섰다. 퍼레이드 차량 진열에 동참하기 위해서였다. “오빠들 언니들 빨리나가. 나도 빨리 (무대 아래로)내려가서 퍼레이드 즐기고 싶어.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입구가 막히는 중이니까 안전하게 나가세요.” “사람 엄청 많이 왔네. 황홀해.” 여장을 한 축제 사회자는 참가자들의 안전을 걱정하며 연신 익살스러운 안내멘트를 던졌다.
퍼레이드에 참가하기 위해 입구로 나선 참가자들은 유세트럭 위에서 마이크를 들고 전광판을 켠 채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이들과 마주했다. 한쪽에서 “동성애는 죄악이니 주님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외치자 반대편에서는 그를 비웃듯 깔깔거렸다. 손을 높이 올려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드는 이도 있었다. 양쪽 진영에서 다소 과격한 표현이 오갔으나 다행히 직접적인 충돌은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퍼레이드에서는 축제 반대 시위자가 행진 대오에서 함께 걷는 헤프닝도 벌어졌다. 보도 쪽에는 폴리스라인이, 도로 쪽은 경찰이 지키는 상황에서 한 장년 남성이 반대 피켓을 든 채 홀로 도로를 걸으며 퍼레이드 행렬을 따라왔다. 이에 참가자 가운데 한 명이 “어차피 그럴 거면 안으로 들어와 같이하라”고 외쳤다. 그러자 남성은 “하나님 앞에 동성애는 죄악 중의 죄악이다. 심판받고 지옥 간다”라고 적힌 피켓을 든 채로 퍼레이드 행렬로 들어섰고, 참가자들은 남성을 반기며 안아주거나 어깨동무를 했다.
장년 남성은 약 2분가량 대열에 합류해 함께 행진했으며 당시의 모습이 찍힌 사진은 온라인에서 “퀴어 퍼레이드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단 한 장의 사진”으로 불리며 공유됐다. 사진을 접한 네티즌들은 “누가 사랑으로 보듬는 자인지 보여준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을 포용하는 게 제일 어려운 일이다. 감동적이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우리는 계속 여기에, 우리 그대로의 모습으로 퀴어하게 존재한다” “동성애는 인권이 아닙니다” 첨예한 대립과 갈등 속에 시작된 퀴어대축제는 예상외로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끝이 났다. 주최측 추산 5만 명, 경찰 추산 1만 1000명의 참가자들이 함께한 이날 축제는 퍼레이드를 끝으로 순조롭게 막을 내렸다.
여다정 인턴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