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타이어업계 2위인 금호타이어는 시장지배력과 더불어 높은 기술력을 보유한 기업으로 분류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지만 이 기간에도 꾸준히 흑자를 기록하며 2014년 말 워크아웃에서 조기 졸업했다. 지난해에도 3조 404억 원의 매출과 1359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다.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권단은 출자전환을 통해 42.1%의 지분을 취득했다. 현재 우리은행(14.15%)과 KDB산업은행(13.50%)이 1, 2대 주주이며 매각작업은 산업은행이 주도하고 있다.
지난해 금호산업 인수로 그룹 재건에 성공한 금호아시아나그룹. 구윤성 기자 kysplanet@ilyo.co.kr
워크아웃 당시 채권단은 금호산업과 마찬가지로 금호타이어에 대해 박삼구 회장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했다. 우선매수청구권이란 매각 과정에서 우선협상자와 같은 지위를 갖는 것을 말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 진행되는 인수전에서 사실상 배타적 지위를 행사할 수 있는 권리다.
문제는 자금이다. 개인이 막대한 인수자금을 마련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앞서 박 회장이 금호기업이란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금호산업을 인수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이는 우선매수청구권을 제3자인 금호기업에 양도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지고 있지만 ‘제3자에게 우선매수청구권을 양도할 수 없다’는 약정이 포함됐기 때문이다. SPC를 설립하거나 계열사를 동원해 자금을 모을 수 없다는 말이다. 게다가 박 회장은 지난해 금호산업 인수 과정에서 5000억 원에 달하는 빚을 진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자력으로 금호타이어 인수자금을 마련하기는 매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까닭이다.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채권단이 주주협의회에서 약정 변경을 의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금호타이어의 최대주주인 우리은행이 제3자 지정을 허용해 줄 것이란 말이 나오며 박 회장에게 유리한 국면이 전개되는 듯했다. 그러나 우리은행 관계자는 “전혀 사실과 다른 내용”이라며 “당초 약정(제3자 지정 및 양도 불가)대로 매각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산업은행은 더욱 강경한 입장이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이미 금호산업 등을 통해 채권단이 본 손실이 얼마인데 그쪽(박삼구 회장)을 배려할 이유는 전혀 없다”며 “주주협의회에서 약정을 변경해 주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제3자 지정권 문제 외에도 악재는 또 있다. 프랑스의 미쉐린, 독일의 콘티넨탈 등 글로벌 타이어업체들이 금호타이어 인수에 관심을 보인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당초 금호타이어 매각가격을 5000억 원 정도로 예상했으나 해외 업체들의 관심도가 높아짐에 따라 1조 원을 상회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채권단 관계자는 “기업실사가 끝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매각가격을 예측할 수는 없는 일”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그럼에도 박 회장의 금호타이어 인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호아시아나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중에서도 긴 역사를 가진 금호타이어에 대한 회장님의 애정이 남다르다”며 “제3자 지정권을 행사할 수 없으면 인수에 어려움이 따르겠지만 (인수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3자 지정권 없이는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박 회장은 2006년과 2008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현 CJ대한통운)을 각각 6조 4255억 원, 4조 1040억 원에 인수한 바 있다. 의욕적으로 그룹의 외연을 확장했지만 인수 과정에서 과도한 차입금이 문제가 되며 그룹의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탄을 받았다.
박 회장의 금호타이어 인수 시도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곳은 또 있다. 박 회장의 동생 박찬구 회장이 이끄는 금호석유화학그룹이다. 금호석유화학은 금호타이어에 합성고무를 공급하는 최대 납품회사다. 최근 금호터미널 합병, 상표권 분쟁 등 여러 가지 이슈로 형제 간 감정의 골이 벌어질 대로 벌어진 상황을 고려할 때 박삼구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면 금호석유화학과 완전히 거래를 끊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금호석유화학 측은 크게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이미 금호타이어 측에서 납품 물량을 조금씩 줄여가는 추세”라면서도 “금호타이어 납품 물량이 합성고무 부문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 정도에 불과해 크게 문제될 수준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채권단은 이달 안에 기업실사를 마무리하고 7월에는 정식으로 매각공고를 낸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매각 주간사는 크레디트스위스(CS)가 맡고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금호타이어가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복귀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성은 전혀 고려할 대상이 아니다”라며 “채권단은 원칙대로 매각을 진행해 최대한 좋은 가격으로 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