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은 지난 1일 밤 9시 30분경 대표팀 합숙훈련 장소인 경북 영주 경륜원 트랙에서 여자대표팀 감독 A 씨와 국가대표 선수 B 씨가 만나면서 시작됐다. B 선수가 호두과자를 사와 A 감독에게 전달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트랙에 단둘이 있었다는 것이 대한사이클연맹 김성주 사무국장의 말이다. 그날 밤 이후 B 선수가 성추행 피해사실을 연맹 측에 알렸고, 이에 감독 A 씨는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한 달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지만 해결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사과하면 경찰 고발 안해”
김 사무국장은 지난 2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B 선수가 전화 통화에서 ‘화해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었는데 이후 휴대전화 번호가 바뀌어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해당 선수가 소속된 지자체에 상벌위원, 총무 등과 함께 내려가 직접 만나보려 했지만 일정 때문에 부득이하게 혼자 내려갔는데 그는 ‘신뢰감이 가지 않는다’는 이유로 만남을 거절했다”고 밝혔다.
결국 만남은 기자와의 전화통화 다음날인 지난 22일 서울에서 이뤄졌다. B 선수와 소속 지자체 감독, 그리고 연맹 측 관계자가 한 자리에 모인 것. 일단 A 감독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라 참석하지 않았다는 게 연맹 측의 설명이다. 극적인 만남이 이뤄졌지만 이번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김 사무국장은 “B 선수의 진술은 똑같다”며 “‘과도한 신체접촉이 있었다’ ‘가슴을 만졌다’ 등의 같은 진술을 했다”고 말했다. 화해의사에 대해서는 “A 감독이 사이클 관련 운동경기에 나타나지 않겠다고 하면 화해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결국 연맹은 상벌위원회가 성추행 사건의 진위 여부를 가려 조치할 예정을 밝혔다.
B 선수 측은 ‘화해’라는 단어 자체에도 강한 반감을 보일 정도로 강력한 대응 방침을 밝혔다. B 선수의 소속 지자체 감독은 “B 선수는 화해할 의사가 전혀 없고 그런 얘길 한 적도 없다”면서 “다만 A 감독이 성추행 사실을 시인한 뒤 사과하고 최소한 B 선수가 선수활동을 하는 동안만큼은 사이클계를 떠나 있겠다고 약속하면 이번 사건을 경찰에 고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연맹 측에 제시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에 운동을 시작한 B 선수가 이런 입장을 밝힌 까닭은 경기장에서 A 감독을 마주치기가 겁난다는 이유에서다. 운동을 그만둘 수 없는 절박한 상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에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됐지만 이미 여러 경기에서 우수한 성적을 올린 바 있는 B 선수는 사이클 업계에서 유망주로 인정받고 있다. 게다가 양친이 돌아가시고 두 언니와 초등학생 남동생을 책임지고 있는 가장이라는 이유에서도 그는 운동을 그만둘 수는 없는 처지다.
또한 B 선수 측은 연락이 안 된다는 연맹 측 설명에도 반박하고 나섰다. B 선수의 소속 지자체 감독은 “피해자로서는 전화를 받고 싶지 않은 게 당연하다”며 “그렇다면 선수가 소속된 팀의 감독인 내게 연락이 와야 하는데 내게는 단 한번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말한다. B 선수의 한 측근 역시 “B 선수의 번호를 모른다는 건 말이 안된다”며 “얼마 전 밤 11시 52분에 ‘구자열 회장 얘기 전달한다’면서 ‘타 팀에 이적할 수 있게 해주고 선수생활이 힘들게 되면 유명 스포츠 용품 업체인 P 브랜드 팀을 창단해주겠다. 그것도 안 되면 P 업체의 전국 대리점 어느 곳에서라도 일하게 해주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기까지 했다”고 성토했다.
특히 사이클계에서 A 감독에 대한 시선은 곱지 않다는 게 여러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 관계자는 “B 선수가 대표팀 훈련 중 A 감독이 유독 B 선수를 예뻐하며 ‘어떤 종목을 하고 싶니? 더 타게 해줄게’라는 말들을 했었다”며 “물론 특출 난 선수를 챙길 순 있겠지만 A 감독을 잘 아는 이들은 B 선수에게 조심하라고까지 말했다”고 귀띔했다. 더욱이 A 감독은 평소 B 선수와 대화할 땐 자신을 ‘아빠’라고 호칭할 정도로 극진히 챙겼다는 게 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사건 당일의 상황을 문제 삼는 이들도 있었다. B 선수가 호두과자를 사서 자신이 소속된 팀 감독과 대표팀 A 감독에게 전달하려 했는데 당시 숙소에 없었던 A 감독이 굳이 숙소에서 300m 아래에 있는 트랙으로 불러냈다는 것. 더욱이 숙소에서 트랙까지는 가로등도 변변치 않은 길인데다 A 감독이 B 선수에게 “올 때 아무도 안 보게 내려와라” “올라갈 때는 비상구로 올라가라”는 식으로 지시까지 내렸다는 얘기도 불거져 나와 A 감독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다는 이들이 많다.
대표팀 사임 후 지역서 활동
그렇다면 일이 터진 후 성추행을 부인하면서도 대표팀 감독을 사임한 A 감독은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연맹 측 김 사무국장은 “현재 사이클 관련해 전혀 활동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지만 B 선수 소속팀 감독은 “현재도 한 지자체 팀 감독으로 있으며, 지역 사이클 연맹 전무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반박했다. 기자가 확인한 결과 A 감독은 대표팀 감독직만 사임한 채 지역에서는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휴대전화를 받지 않은 까닭에 인터뷰를 할 수는 없었다.
사이클계에서 감독과 선수가 결부된 성추행 논란은 사실상 전례가 없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이구동성이다. 처음 성추행 사건이 터진 만큼 연맹 측에서는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김 사무국장은 “시일이 걸리겠지만 최선을 다해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진위를 가려낼 것”이라고 말했다.
선수 측 역시 강경하다. B 선수의 소속팀 감독은 “현재로서는 경찰에 고소했을 시 선수가 또 한번 상처를 입을 것이고, A 감독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꺼리고 있지만 연맹 상벌위원회에서 결론이 나지 않을 경우엔 경찰에 고소를 할 방침이다”라고 밝혔다.
한편 연맹은 지난 15일 대표팀 합숙훈련을 중단했으며, 8월에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에도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문다영 객원기자 dy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