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타에게는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다. 지도자 수업을 밟은 후 코치나 감독이 될 수도 있고 해외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도 한다. 자신의 전공을 살린 일이니 더욱 쉽고 보람된 일일 수 있다. 그럼에도 왜 그들은 경쟁이 심하고 대중의 호불호가 갈리는 연예인의 길을 택했을까? 물론 이유는 있다. 항상 수요와 공급은 맞아떨어진다. 스포테이너를 만들고 싶어 하는 이들이 있고, 스포테이너가 되고 싶어 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 웬만한 톱스타 못지않은 인지도
스포테이너에게 ‘신인 시절’은 없다. 신인이라 하면 처음 방송에 얼굴을 내밀고 다양한 활동을 하며 인지도를 쌓는 시기다. 하지만 연예계에 투신한 스포츠 스타들은 이미 현역 시절 대단한 활약을 한 이들이다.
서장훈은 ‘국보급 센터’라 불리며 정규리그 통산 1만 321점을 넣어 역대 1위다. 리바운드도 평균 13.97개로 유일하게 용병 센터들도 대적할 만했다. 안정환 역시 국가대표로 활동하며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일군 주역이다. 특히 이탈리아와 벌인 16강전에서 극적인 역전골을 넣으며 반지키스 세리머니까지 선보인 안정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최근 새로운 스포테이너로 각광받고 있는 이천수 역시 안정환과 국가대표로 어깨를 나란히 했고, MBC <무한도전> 출연 이후 숱한 러브콜을 받고 있는 이봉주는 한국 마라톤의 새 역사를 쓴 인물이다. 이 외에도 현역 UFC 선수인 김동현은 미국과 브라질 선수 등이 두각을 보이는 UFC에서 이름값을 높이고 있는 몇 안 되는 동양인이다.
JTBC ‘쿡가대표’ MC 김성주, 강호동, 안정환(왼쪽부터). 사진출처=‘쿡가대표’ 홈페이지
이렇듯 이들은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대중이 그들의 이력과 얼굴을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높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메인 MC 자리까지 삽시간에 꿰차곤 한다.
그들의 이력이 예능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KBS 2TV <우리동네 예체능>은 각 종목에 맞는 스포테이너를 배치해 재미를 배가시킨다. 안정환은 최근 KBS 2TV <어서옵쇼>를 비롯해 과거 KBS 2TV <청춘FC 헝그리일레븐>에서 축구선수로서 기량을 뽐냈고, 서장훈은 KBS 1TV <우리들의 공교시>에서 고교 농구 감독으로서 노하우를 전수하기도 했다.
한 지상파 예능국 PD는 “방송가는 항상 새로운 얼굴을 원한다”며 “유명 스포츠 선수의 경우 이미 대중적 호감도와 인지도가 높기 때문에 적절한 입담만 갖췄다면 곧바로 주요 자리를 부여하고 현업에 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연예인들과의 두터운 친분
처음 방송을 경험한 이들은 ‘보이지 않는 벽’에 적잖이 놀라고 한다.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것처럼 보이는 예능프로그램의 촬영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프리랜서인 연예인들은 저마다 돋보이기 위해 멘트 경쟁, 분량 경쟁을 펼친다. 내가 아무리 재미있는 말을 해도 상대가 적절한 리액션으로 받아주지 않으면 통편집된다. 톱MC들이 평소 친분이 있고 아끼는 동료 방송인들에게 더 많이 말을 걸고 기회를 주며 ‘사단’을 형성할 수 있는 이유다.
방송에 발을 들이는 스포테이너 역시 이 같은 과정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들의 입장은 일반적인 신인 방송인들과 다르다. 현역 시절부터 많은 연예인들과 두루 친분을 쌓으며 ‘준 연예인’의 행보를 걸어왔기 때문에 연예계 입문 과정도 순탄한 편이다.
성공한 스포테이너 곁에는 조력자도 있었다. 강호동의 경우 이경규가 적극적으로 끌어줬고 SBS <X맨>, KBS 2TV <공포의 쿵쿵따> 등에 출연하며 톱MC로 도약하는 기틀을 마련할 때는 유재석이 곁을 지켰다.
안정환에게는 아나운서 출신 김성주가 ‘믿을맨’이다. 두 사람은 MBC 축구 해설위원과 캐스터로 호흡을 맞췄고, 이후 안정환이 본격적인 연예 활동을 시작한 후에는 MBC <아빠 어디가>와 JTBC <냉장고를 부탁해> 등에서 ‘쿵짝’을 맞췄다. 또한 서장훈은 김구라와 각종 프로그램에서 ‘톰과 제리’처럼 물고 뜯으며 캐릭터를 구축했다.
SBS ‘동상이몽’ 서장훈은 김구라와 티격태격 앙숙 케미를 발산하며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출처=‘동상이몽’ 홈페이지
# 끼와 재능, 예(藝)와 체(體)는 통한다
안정환은 현역 시절 ‘테리우스’라 불렸다. 하지만 동료 축구인들은 말한다. 안정환은 원래 웃겼다고. 마이크를 잡을 기회가 없었던 것뿐이지, 그의 입담은 이미 정평이 나 있었다.
서장훈은 특유의 ‘투덜이’ 이미지로 방송 초반 “난 연예인이 아니다”고 말을 하다가 면박을 받곤 했다. 그런 그가 점점 연예계에 동화되다가 “맞다, 난 연예인이다”라고 인정하는 대목에서 대중 역시 그를 ‘농구 선수 서장훈’이 아닌 ‘방송인 서장훈’으로 받아들이게 됐다.
통상 예와 체는 통한다. 둘을 합쳐 ‘예체능’으로 분류하는 이유다. 학창 시절을 떠올리면 외향적이고 재미있는 친구들이 운동도 잘했고, 운동을 잘하는 친구들이 춤도 잘 췄다. 스포테이너가 꾸준히 탄생될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선수 생명은 짧다. 육체적인 노화는 막을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을 시기가 40대 전후인 반면 운동선수들은 이 시기가 되면 은퇴를 준비하거나, 이미 은퇴했을 나이다. 그러니 여전히 솟구치는 끼와 재능을 발산할 곳으로 연예계의 문을 두드리곤 한다.
또 다른 예능국 PD는 “예능 프로그램은 토크 외에도 몸을 쓰는 게임이 많은데 이때 스포테이너들이 발군의 활약을 보이곤 한다”며 “강호동에 이어 안정환, 서장훈 등 성공 사례가 잇따라 나오고 있는 만큼 새로운 스포테이너가 계속 공급될 것이다”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