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빈 국회 본회의장.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더민주) 소속 김춘진 김성주 전 의원은 지난 5월 22일부터 29일까지 프랑스와 크로아티아를 다녀왔다. 출장 목적은 ‘저출산 고령사회 극복 및 보건의료산업 발전방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둘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귀국 당일 국회의원 임기가 종료되는 상황이었다.
공개된 일정은 대부분 대사관이나 의회 관계자 등과의 면담으로 채워져 있었다. 예산은 2500만 원가량 사용됐다. 김춘진 전 의원은 지난 4월 아시아태평양지역 국제보건 국회의원 연맹 추진을 협의하겠다며 일본 출장도 다녀온 바 있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소속 노영민 오영식 정수성 이강후 홍지만 전 의원은 5월 10일부터 16일까지 태국 및 인도네시아를 다녀왔다. 모두 20대 총선에서 낙선한 인물들이다. 목적은 ‘해당 국가의 산업시설을 시찰하고 모조품 유통 관련 방지책을 모색하기 위함’이었다. 국방위원회에서도 낙선 인사인 한기호 진성준 전 의원이 지난 5월7일부터 11일까지 이스라엘 출장을 다녀왔다. 상호 군사협력 증진 및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는 목적이었다.
총선 이후 상임위 차원에서 해외출장을 다녀온 의원은 16명이었는데 이 중 11명이 낙선 인사였다. 그런데 당선자들 경우에도 다소 이해하기 힘든 명목의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은 마찬가지였다.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위)에서는 총선 이후 4명의 의원이 해외출장을 다녀왔는데 4명 모두 당선자지만 20대 국회에선 예결위에 포함되지 않았다. 앞으로 예결위에서 활동하지도 않을 사람들이 선진국 예산 제도를 배워오겠다며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김성태 안민석 의원은 지난 5월 6일부터 13일까지 영국 아이슬란드 스웨덴 러시아 등을 다녀왔고, 김재경 홍익표 의원은 5월 9일부터 16일까지 미국을 다녀왔다. 목적은 ‘해당 국가 예결산 제도에 대한 조사 및 연구’였다. 이에 대해 예결위 측은 “해당 의원들은 예결위 위원장과 간사 등인데 예결위 활동 중에는 너무 바빠서 해외출장을 한 번도 못 다녀왔다. 고생을 하셔서 그런(보상) 차원도 있다”며 “예결위에 나중에 다시 포함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문제는 없다”고 해명했다.
상임위 차원이 아닌 의원 개인 자격 해외출장도 대부분 낙선자들이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총선 이후 개인 자격으로는 22명의 의원이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 그런데 그 중 20대 총선 당선자는 7명뿐이었다. 나머지 15명은 모두 총선에 불출마하거나 낙선했음에도 19대 국회 임기 종료를 앞두고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이다.
새누리당 박윤옥 전 의원은 총선 직후인 지난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몽골에 다녀왔다. 더민주 강기정 김성주 신정훈 전 의원은 지난 5월 1일부터 5일까지 독일의 연금제도를 조사하겠다며 독일에 다녀왔다.
특히 새누리당 신성범 전 의원, 더민주 김태년 의원, 정의당 정진후 전 의원은 지난 5월 2일부터 8일까지 베트남과 라오스를 방문했는데 해외출장 일정 중 상당수가 관광지 방문으로 채워져 있어 외유성 해외출장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세 의원들이 이들 국가의 관광지를 방문한 이유는 문화 관광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는지 조사해 국내에 도입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신성범 정진후 전 의원은 20대 총선에서 낙선했고, 김태년 의원은 20대 국회에서 상임위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기획재정위원회로 변경됐다. 게다가 해당 의원들이 작성한 결과 보고서는 대부분 의원들이 방문한 관광지에 대한 소개로 채워져 있었다. 국내에서 인터넷만 뒤져봐도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총선 직전에는 이미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의원들이 국제회의 참석 등을 이유로 6명이나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확인됐다. 새누리당 양창영 전 의원은 당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였는데 지난 2월 7일부터 11일까지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에 다녀왔다. 그런데 유엔총회 의원회의 일정은 2월 8일부터 9일까지였다. 양 전 의원은 나머지 일정에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결과보고서에 적시하지 않았다.
총선을 전후해 19대 국회 임기가 끝날 때까지 총선 불출마자들이나 낙선 의원들이 해외출장을 다녀온 사례는 33건이나 됐다. 일부 낙선 의원들의 경우는 임기 종료 때까지 두세 번씩 집중적으로 해외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국회의원들의 비효율적인 해외출장이 거듭되는 이유는 허술한 관리제도 때문이다. 현행 국회 해외출장 제도는 의원들이 해외출장을 요청한 후 국회의장 승인만 받으면 다녀올 수 있다. 의원들의 해외출장이 꼭 필요한 것인지 따져보는 절차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임기 말이면 불필요한 해외출장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일반 회사라고 생각해보면 퇴직을 일주일 앞둔 직원이 해외출장을 다녀오는 것을 용납해주겠나”면서 “해외출장 비용은 1년 단위로 편성되기 때문에 낙선 인사들이 줄줄이 해외출장을 다녀오고 나면 정작 해외출장을 다녀와야 할 현역 의원들이 예산이 부족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