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대표의 위기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이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이다. 안 대표는 6월 정국에서 ‘김수민(초선·비례대표) 리베이트’ 의혹에 직격탄을 맞았다. 당 진상조사단(위원장 이상돈 의원)은 “당으로 유입된 돈은 없다”고 선을 그었지만 리베이트 의혹은 물론 공천 과정의 커넥션 파장은 확산일로다. 수면 아래에 있던 안철수계와 비 안철수계 간 내부 알력설도 서서히 드러났다. 그야말로 최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공동대표가 위기에 빠졌다.
“8월 말까지 특별한 이슈는 없을 것이다.” 더민주 중진 의원의 정국 전망은 빗나갔다. 이 중진 의원은 6월 개원 이후 가습기 살균제 피해 사고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 협상만 있을 뿐 8월 9일 새누리당 전당대회, 같은 달 27일 더민주 전당대회까지 여야 대권주자들은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전대는 각 당의 ‘당권-대권 분리’ 규정 탓에 차기 대권주자들이 나올 수 없다. 새누리당은 대선에 출마할 경우 선거 1년 6개월 전, 더민주는 1년 전에 각각 사퇴해야 한다.
하지만 다이내믹한 한국 정치는 6월 정국에서도 반복됐다. 핵심은 레임덕에 빠진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총궐기와 야권의 위기다. 특히 위기의 총구는 ‘문·안’(문재인·안철수)에게 쏠렸다. 임기 4년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는 검찰 카드를 꺼내 들었다. 롯데그룹에 대한 전방위 수사와 선거사범 수사 확대가 대표적이다. 이 경우 범야권이 표적 사정권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고발당한 홍일표(정치자금위반 혐의) 새누리당 의원을 비롯해 민경욱(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이학재(허위사실공표 혐의) 의원의 경우 당선인 수사에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더민주 인천시당 관계자는 “검찰이 야권에만 원칙론을 앞세워 ‘속전속결’로 처리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정국 변수는 이뿐만이 아니다. 강력한 국회의장 체제를 연 정세균 국회의장은 연일 개헌론을 꺼내고 있다.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등판이 초읽기에 돌입했고,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차기 대권 도전으로 턴할 것으로 보인다. 문·안만 갇힌 채 정계개편의 판이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문 전 대표는 6월 13일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네팔로 출국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과 탁현민 성공회대 교수가 동행했다. 문 전 대표는 약 한 달 정도 머무른 뒤 돌아올 예정이다. 문 전 대표의 네팔행은 차기 대선을 위한 숨 고르기 차원이다. 문제는 출국 전 행보다. 일각에선 ‘문재인 답지 않다’는 비판이 나왔다.
문 전 대표는 6월 9일 가덕도를 전격 방문, “공정한 절차대로 하면 부산이 바라는 대로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대구에 지역구를 둔 김부겸 더민주 의원은 “(밀양 유치는) 대구의 사활이 걸린 문제”라고 맞섰다. 차기 대권주자인 두 거물급 정치인이 PK(부산·경남)와 TK(대구·경북) 간 영남 패권주의 덫에 빠진 것이다.
급기야 문 전 대표는 메피아 의혹에도 휘말렸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개원 첫날 지난 대선 때 문재인 캠프 산하 ‘서울시민캠프’ 상임대표였던 지용호 전 서울메트로 감사를 ‘문재인 낙하산’으로 지목했다. 우상호 더민주 원내대표는 “구의역이 왜 문재인의 문제냐”고 강력 반발했지만, 새누리당은 연일 “전형적인 ‘친문(친문재인) 인사’”라며 때리기에 나섰다.
눈여겨볼 대목은 이 같은 문 전 대표 행보가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포비아(공포) 확산과 직·간접으로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더민주 비주류 한 의원은 당내 권력구도에 대해 “20대 국회 전반기 의장이 된 정세균 의원을 행보를 주목하라”고 귀띔했다. 정 의장은 강력한 차기 당권주자이자 경우에 따라 대권에 도전할 수 있는 대권잠룡이었다. 하지만 그는 차기 당권과 대권 대신 국회의장직을 택했다.
더민주 다수 의원들은 정 의장의 국회의장직 도전을 만류했다. 비노(비노무현)계 한 의원은 “정 의장이 더민주에서는 ‘문재인’밖에 대선후보를 할 수 없는 구조라고 인식하는 것 같았다”며 “대통령이 안 된다면, 마지막 정치인생을 제7공화국 헌법을 위한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 의장이 선출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정 의장이 연일 개헌론에 군불을 때며 ‘정세균 발 개헌’ 태풍을 이끄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입법부 수장을 택한 정 의장의 선택이 당내 친노 패권주의와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이는 친노·친문계가 독식한 더민주에서 문 전 대표가 최종 대선후보로 선출되더라도 바람을 일으킬 수 있느냐는 문제를 야기한다. 선거의 3대 기반인 ‘지역·조직·세대’ 등에서 어느 하나라도 확장성을 꾀하지 못한다면 ‘문재인 대안론’은 ‘필패론’으로 격하될 수밖에 없다. 문 전 대표는 영·호남 지역구도에, 더민주 친노계에, 2040세대에 갇힌 상황이다. 이 아킬레스건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권의 절대반지’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한 다른 후보에게 돌아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안 대표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국민의당 창당 이후 최대 위기다. 핵심 의혹은 김수민 의원의 리베이트 의혹과 당 공천 과정 커넥션이다. 국민의당은 4·13 총선 당시 TV 광고대행업체 ‘세미콜론’, 공보대행업체 ‘비컴’과 광고 및 홍보계약을 맺었다. 두 업체 용역은 김 의원이 대표로 있었던 ‘브랜드호텔’이 맡았다. 국민의당이 두 업체와 계약을 하고 다시 ‘브랜드호텔’이 광고 및 홍보 용역을 맡은 ‘이중 구조’였던 것이다.
세미콜론과 비컴은 총선 당시 브랜드호텔에 1억 1000만 원과 6820만 원을 각각 지급했다. 세미콜론은 6000만 원짜리 체크카드를 만들어 국민의당 홍보TF 팀원에게 전달했다. 이 돈 중 일부가 국민의당으로 유입됐느냐가 불법자금 수수 혐의의 핵심이다. 선관위는 유입에 힘을 실으며 김 의원과 안 대표 측근인 박선숙 당시 사무총장과 왕주현 사무부총장 등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국민의당 입장은 단호하다. 당 진상조사단장인 이상돈 의원은 6월 15일 중간발표에서 “홍보업체의 자금이 국민의당으로 들어온 것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1억 7820만 원 모두 브랜드호텔 계좌에 있는 것을 통장 사본으로 확인했으며, 정당한 작업의 대가인 만큼 리베이트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김 의원을 비롯한 당사자 조사 없이 발표한 데다, 은행 거래 없이 직접 ‘맨투맨’으로 현금을 전달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애초 국민의당 비례대표 후보자 명부에 없었던 김 의원이 신용현(1번)·오세정(2번) 의원과 함께 최종 후보자 발표 당일인 3월 23일 당의 전략공천을 받은 것도 풀리지 않는 의혹이다. 이 과정에서 안 대표와 천정배 공동대표가 새벽까지 최종 후보자 명부 작성을 놓고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수민 리베이트’ 의혹을 고리로 당의 검은 커넥션 논란이 안 대표를 휘감았다. 의혹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국민의당 공천은 사실상 ‘날림 공천’으로 전락한다. ‘안철수의 새정치’가 사실상 ‘헌정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의미다. 전계완 정치평론가는 “의혹의 사실 여부와는 별개로 국민의당 대응 과정을 보면, 안 대표의 새정치는 끝이 났다고밖에 볼 수 없다”며 “기성 정치권을 능가하는 ‘안철수 정치’로는 정권교체는커녕 정치혁신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여권 성향의 ‘유승민’, 야권의 ‘김부겸·송영길’ 등의 세대교체론이 급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더민주의 친노 패권주의 포비아와 국민의당의 헌정치 논란의 장기화로 범야권에 대한 원심력이 커질 경우 손학규 전 상임고문의 구원투수의 길은 열린다. 안희정 지사에게도 틈새는 생긴다. 후반기 정국 야권 발 정계개편의 두 키워드는 ‘세대교체’와 ‘문재인 대안론’이다. 이 게임의 키는 ‘문·안’이 쥐고 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