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바야시 마사모토 롯데캐피탈 사장. 롯데캐피탈 홈페이지 캡처.
신동빈 회장이나 롯데그룹 지주회사인 롯데홀딩스 대표는 ‘형제의 난’의 핵심 당사자들이니만큼 주요 표적이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것도 그룹 내 존재감이 미미한 롯데캐피탈 사장을 맡고 있는 고바야시 사장이 고소장에 오른 것은 다소 의외라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바야시 사장이 그간 보여온 행적을 따라가보면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동주 회장이 왜 그를 신동빈 회장과 ‘동급’으로 취급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올해 67세인 고바야시 사장은 일본 도쿄에 소재한 명문 국립대 히토쓰바시(一橋)대학을 나온 엘리트다. 법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에는 일본 6대 은행 중 하나인 산와은행(현 UFJ은행)에 입사, 뱅커의 길을 걸었다.
그는 산와은행 기업금융부장, UFJ은행 상무 등을 거쳐 2003년 UFJ 고문을 지낸 뒤 퇴직했다. 임원은 지냈지만 은행장 등 최고의 자리까지 오르지 못했던 그는 신동빈 회장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건너온 뒤 가신그룹에 합류한다.
신동빈 회장과 고바야시 사장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신동빈 회장이 롯데에 몸담기 전 노무라증권에서 일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금융 관련 업무가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UFJ를 떠난 고바야시 사장은 2003년 롯데캐피탈 상무에 임명돼 한국으로 건너왔다. 당시 신동빈 회장을 둘러싼 경영환경은 그리 우호적이지 못했다. 우선 한국 롯데그룹 부회장이던 신동빈 회장은 모비도미, 롯데닷컴 등 신사업에 뛰어들었지만 제대로 된 성과를 내지 못해 경영능력이 의심받고 있던 상황이었다. 또 고바야시 사장을 투입한 롯데캐피탈도 신용대출 중심의 영업을 해오다 2003년 카드대란의 후폭풍을 맞고 유동성 위기를 내몰린 상태였다.
반전은 이듬해 일어났다. 신동빈 회장은 2004년 그룹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롯데호텔 정책본부 본부장에 오르며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섰다. 신 회장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고바야시 당시 롯데캐피탈 상무를 사장에 앉힌 것. 고바야시 사장은 대표이사가 되자마자 1200억 원이 넘는 부실자산을 소각해 버리고 200억 원대의 무상감자를 단행, 부실을 털어냈다. 그리고 다시 두 차례에 걸쳐 1200억 원대의 유상증자를 실시해 부실자산 금액만큼을 자본으로 바꿔놓는 ‘수완’을 발휘했다.
이 일로 신동빈 회장의 신임을 얻은 덕인지 그는 장기집권에 들어갔다. 2004년 취임 후 12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는 롯데캐피탈 사장 자리에 앉아 있다. 하지만 긴 시간이 지나는 동안 그를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롯데캐피탈이 그룹에서 차지하는 비중(1분기 영업이익 545억 원)이 워낙 미미한 데다 롯데카드 등과 달리 소비자와 직접 대면하는 사업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룹 지배구조와도 무관해 형제의 난이 한창인 상황에서도 롯데캐피탈은 세간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이는 고바야시 사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형제의 난으로 이인원 부회장과 황각규 사장, 소진세 사장 등 가신그룹이 집중조명을 받는 와중에도 그는 여전히 베일에 가려 있었다.
고바야시 마사모토라는 이름이 사실상 처음 등장한 것은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을 통해서다. 신동주 회장은 지난해 12월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한 뒤 “종업원지주회 대표는 원래 신격호 총괄회장 사람이었지만, 주주총회를 앞둔 7월 전격적으로 다른 인물로 교체됐다”며 “그룹 경영권의 열쇠를 쥔 일본인 임직원들이 신 총괄회장에게 등을 돌리도록 만든 이가 고바야시”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신동주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고바야시가 쓰쿠다 다카유키 일본 롯데홀딩스 대표와 함께 롯데그룹을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주장했다. 신동주 회장 측 법률대리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두우 측은 “쓰쿠다 대표와 고바야시 사장이 롯데홀딩스 지분 47.7%를 장악한 반면 신동빈 회장의 지분은 1.4%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이 말대로라면 롯데그룹의 주인은 신격호 총괄회장이나 신동빈 회장이 아닌 계열사의 일본인 사장 두 사람인 셈이다.
신동주 회장 측은 두 사람 중에서도 특히 고바야시 사장을 배후 조종자로 지목하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반기를 든 일부터 신격호 회장을 해임시키는 등 롯데에서 일어난 모든 음모를 꾸민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신동주 회장 측이 고바야시 사장을 총지휘자로 보는 이유는 이렇다. 우선 고바야시 사장은 2010년부터 일본 롯데홀딩스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겸임하고 있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을 총괄하는 지주회사로, 그룹 전체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있는 회사다. 한국에서는 일개 소규모 계열사 사장에 불과하지만 사실은 그룹 전체의 자금줄을 쥐고 있는 ‘금고지기’인 셈이다. 금융권 일각에서 “롯데그룹 형제의 난은 고바야시 사장이 롯데홀딩스 CFO에 오른 2010년부터 시작된 셈”이라는 얘기가 흘러나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일본 롯데홀딩스 6대 주주(6%)인 임원지주회 등기이사로 올라 있다. 임원지주회 멤버는 2대 주주(27.8%)인 종업원지주회를 포함해 총 6명으로, 사실상 한국과 일본 롯데그룹 전체의 후계구도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조직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고바야시 사장은 이미 종업원지주회를 장악했고, 이를 통해 임원지주회를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지난해 7월 일본 롯데홀딩스가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격호 총괄회장을 해임하는 결정을 내릴 당시 고바야시 사장은 신동빈 회장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갔고, 그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임원지주회에 당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융권의 또 다른 관심은 고바야시 사장이 롯데캐피탈을 통해 차곡차곡 모아둔 현금의 용도다. 롯데캐피탈은 회사 규모나 업계 내 위상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롯데캐피탈은 지난 3월 말 현재 은행권 정기예금 등으로 예치된 현금성 자산이 7619억 원에 달한다. 여기에 쓰지 않고 남아 있는 신용공여한도(일종의 대출한도)가 3000억 원이 넘는 등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 규모가 1조 원을 넘는다. 금융권에 따르면 롯데캐피탈의 이 같은 유동성 자금은 상위 캐피털사 5곳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규모다.
금융권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롯데캐피탈이 이처럼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신동빈 회장이 보유한 롯데그룹 지분 등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롯데그룹의 경영권 확보를 위해 사용될 실탄을 쌓아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제2금융권 한 관계자는 “고바야시 사장이 현금 보유를 중시하는 경영스타일인 것은 알고 있지만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보유하고 있는 유동성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게다가 보유 유동성 규모를 해마다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어딘가 쓸 곳이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된다”고 귀띔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