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아재는 중년 남성을 뜻하는 아저씨를 낮춰 부르는 단어로 종종 사용돼 왔다.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방언으로도 쓰이는 이 단어가 2016년 현재 연예계를 상징하는 대중문화의 키워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친근한 아저씨’, ‘웃긴 아저씨’의 의미로도 통용되는 아재를 대하는 10~20대 젊은 층의 반응은 긍정적이고 호의적이다.
방송가에서 유행을 가장 빠르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개그 프로그램들은 최근 아재 소재의 코너를 전면에 배치하고 있다. KBS 2TV <개그콘서트>는 ‘아재씨’라는 코너가 인기다. 개그맨 박영진이 출연한 말장난을 구사하며 썰렁한 농담을 줄지어 읊는 내용에 불과하지만 그 인기는 프로그램 전체를 통틀어 가장 높다. ‘아재씨’에 등장하는 농담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술자리에서 꺼내면 ‘야유’의 대상이 됐지만 이제는 다르다.
경쟁 프로그램인 SBS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도 아재 소재의 코너가 있다. ‘부장아재’라는 코너는 회사를 배경으로 정규직 직원을 앞둔 두 명의 인턴사원이 겪는 일을 그린다. 코너의 제목 그대로 회사 부장님이 쏟아내는 아재 개그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 코믹하게 펼쳐진다.
김흥국의 엉뚱한 말실수가 ‘아재 어록’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사진 제공= TV조선
방송가와 연예계에 아재 열풍이 불어 닥치면서 뜻밖의 수혜자도 탄생했다. 가수 김흥국이다. 옷 상의의 목 단추를 두 개쯤 풀어헤치고 적당히 나온 배와 검게 그을린 피부를 가진 그는 겉모습만으로 아재의 상징처럼 통한다. 상대방을 친근하게 대하는 태도, 누구와 만나도 어우러질 수 있는 그의 친화력에 젊은 층은 열광한다. 덕분에 김흥국은 ‘예능 치트키’라는 새로운 별명까지 얻었다.
과거 김흥국이 방송을 통해 했던 ‘말실수’는 지금에 와서 ‘아재 개그’로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기도 하다. 가수 장윤정의 노래 ‘어머나’를 소개하면서는 “장윤정이 부릅니다, 어머니”라고 말하거나, 자신이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세쌍둥이 자매를 앉혀놓고 “도대체 몇 살 터울이냐”고 묻는 등의 발언이 그 대표적인 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팝스타 마돈나가 미국 UCLA에서 강의한 소식을 전할 때는 “마돈나가 우크라대학에서 강의를 했다”고 밝혔다. 전부 ‘말실수’였지만 지금은 김흥국의 ‘아재 어록’으로 통한다.
# 예능부터 드라마, 영화까지 ‘아재 스타’ 향연
과거 부정적인 의미를 더한 ‘꼰대’ ‘아저씨’ 등으로 분류됐지만 아재는 조금 다르다. 샌들에 양말을 신지 않는 중년, 여름에는 발목양말 정도 신어주는 중년을 ‘아재’로 분류할 수 있다. 아재를 향한 관심은 그들이 보여주는 친근한 매력에서 기인한다. 특히 젊은 세대와 동떨어지지 않으려, 유행을 적극 받아들이는 중년 남성들이 늘면서 대중문화 전반으로 아재 열풍은 퍼지고 있다.
실제로 ‘아재 스타’의 활약은 예능과 TV 드라마, 영화를 망라할 정도로 전방위적이다. 유행 반영에 민감한 예능 프로그램은 현재 김구라부터 신동엽까지 이른바 아재 스타들이 이끈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단순히 눈에 띄는 활동을 넘어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인정받는다.
대표주자는 김구라다. ‘막말하는 아재’로 표현될 법한 그는 현재 지상파와 케이블채널을 넘나들며 8~9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때 ‘독설가’로 통했지만 지금은 그 표현법이 순화되면서 유명세와 친근함을 더했고, 고등학교 3학년 아들(가수 MC그리)을 둔 가장이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아재 스타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한때 독설가로 통했던 김구라는 ‘막말 아재’로 여러 프로그램에서 활약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 =MBC
그런가하면 신동엽은 ‘야한 농담 즐기는 아재’로 불린다. ‘성인 취향’ 프로그램에 더 적합한 그는 자신의 개성을 꾸준히 특화시켰고 최근에 와서 아재 열풍을 만나 비로소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영화 역시 아재의 활동은 두드러진다. 최근 영화 흥행을 결정짓는 한 축으로 아재 배우가 인정받을 정도다. 배우 오달수와 성동일이 그 중심에 있다. 마치 옆집 아저씨를 연상케 하는 푸근한 이미지를 내세워 여러 장르의 영화 속 명품 조연으로 활약한 두 배우는 최근에 와서 영화를 책임지는 당당한 주연으로 도약했다. 이들 외에도 한국영화 제작진이 캐스팅에서 가장 욕심내는 송강호, 김윤석, 설경구 등 배우 역시 전부 40대인 ‘아재 배우’로 부를 만하다.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미생>의 이성민과 <시그널>의 조진웅은 각각의 작품에서 아재의 매력을 과시했고 그 인기를 증명하듯 최근 자동차부터 금용 관련 상품까지 다양한 브랜드의 광고 모델로도 각광받고 있다. 아재로 출발해 아재가 만드는 아재 영화와 드라마의 향연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다음소프트가 SNS에서 검색되는 ‘아재’ 관련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는 현재 대중이 이 단어에 얼마나 열광하는지를 엿보게 한다. 2011년 1만 8390회 언급된 ‘아재’는 2015년 총 48만 3186회나 언급됐다. 4년 사이 무려 26배나 늘어났고, 심지어 올해 5월을 기준으로 하면 지난해보다 두 배 더 언급됐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