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그라운드를 감격으로 가득 채우고 있는 ‘돌아온 영웅’들.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이 험난했기에 그만큼 더 벅차고 소중한 순간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이 써내려가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를 되짚어봤다.
# 원종현이 돌아왔다
NC 원종현은 어느덧 불굴의 의지와 투혼을 상징하는 이름이 됐다. 그는 지난해 1월 대장암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다. 미국 스프링캠프에서 불펜 피칭을 하다 어지럼증을 호소했다. 결국 조기 귀국해 정밀 검진을 받았다. 검진 결과는 놀랍게도 대장암 2기. 그는 아직 스물여덟밖에 안 된 투수였다. 날벼락이 따로 없었다. 다음 날 곧바로 서울 아산병원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한 달에 두 차례씩, 무려 12번이나 항암 치료를 받았다. 일주일에 3~4일은 약물주머니를 왼팔에 달고 혈관 주사를 맞아가며 버텼다.
안 그래도 굴곡이 많았던 야구 인생이다. 군산상고를 졸업하고 2006년 LG에 입단했다. 그러나 경찰청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온 2009년 말 LG에서 방출됐다. 2년 가까운 공백 끝에 2011년 신생팀 NC의 강진 캠프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가까스로 합격했다. 그리고 3년이 더 흐른 2014년 마침내 NC의 필승조에 합류해 꽃을 피웠다. 무려 73경기에 나와 71이닝을 소화한 정상급 셋업맨. LG와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에서는 시속 155km 강속구를 뿌려 화제도 모았다.
대장암을 이기고 마운드에 다시 선 NC원종현 선수가 공을 힘차게 던지고 있다. 사진제공=NC 다이노스
그러나 이제 막 전성기를 맞이하려던 그에게 병마가 덮쳤다. 숱한 위기에서 오뚝이처럼 일어난 원종현이었지만, 암은 또 다른 차원의 고비였다. 항암 치료는 고통스럽다. 암세포를 죽이려면 그보다 더 강한 약물을 몸에 투입해야 한다. 약물이 몸에 퍼지면 다른 세포까지 죽어 없어진다. 구토와 헛구역질이 이어져 음식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다. 건장한 체격의 야구 선수가 과일을 갈아 만든 해독주스만 먹어가며 몸에 에너지를 공급했다.
그러나 그는 늘 야구를 마음에서 놓지 않았다. 약물주머니도 왼팔에 달았다. 공을 던지는 오른팔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집념이었다. 지난해 10월 마산구장에서 열린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도 마운드에 올랐다. 투수가 아닌, 시구자 자격으로 팀의 가을 잔치를 함께했다. 1년 만에 다시 나타난 원종현의 야윈 모습에 팬들은 응원의 박수를 보냈다. 원종현도 다시 한 번 야구에 대한 의지를 되찾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지난 5월 31일. NC가 두산에 5-6으로 뒤진 9회초 마산구장 마운드에 원종현이 나타났다. 이번엔 진짜 투수로서 공을 던졌다. 592일 만이었다. 최고 시속 152km가 나왔다. 두산 오재원, 민병헌, 오재일이 차례로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그 누구보다 강력하고 인상적인 복귀전이었다. 그냥 돌아온 게 아니라, 변함없이 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더 감동적이었다.
팬들의 기립 박수가 쏟아졌다. 원종현은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다 문득 멈춰 섰다. 야수들을 기다렸다가 일일이 주먹을 마주치며 감사 인사를 했다. 동료들은 그동안 모자와 가슴에 ‘155’라는 숫자를 새기고 뛰었다. 원종현이 다시 돌아와 ‘시속 155km’를 던져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홀로 암과 싸운 원종현에게 이보다 더한 격려는 없었다. 그렇게 그는 다시 NC의 용사가 됐다. 그리고 NC와 원종현은 요즘 함께 승승장구하고 있다.
# 정현욱도 돌아왔다
LG 정현욱은 한때 ‘힘’의 상징이었다. 오랜 무명 생활을 거쳐 삼성의 전천후 필승조로 자리 잡았고,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선 시도 때도 없이 마운드에 올라 한국 대표팀의 승리를 지켜낸다는 의미로 ‘국민 노예’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LG는 2012년 말 삼성에서 FA 자격을 얻은 정현욱과 4년 28억 원에 계약했다. 정현욱은 2013년 54경기에 등판해 제 몫을 했다. LG를 11년 만에 포스트시즌으로 이끈 주역 가운데 한 명이었다.
그러나 2014년 7월 8일을 마지막으로 그는 남들보다 조금 긴 쉼표를 찍어야 했다.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했고, 동시에 위암이라는 암초를 만났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해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 다만 암세포가 위의 윗부분에 붙어 있는 게 문제였다.
LG 정현욱 선수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과 동시에 위암이 발견돼 위의 80%를 잘라내는 투병생활 끝에 다시 마운드에 섰다. 사진제공=LG 트윈스
위암 수술은 암세포 아랫부분을 모두 다 잘라내야 더 이상 전이되지 않는다. 암세포가 최대한 아래쪽에 있어야 절제하는 위의 크기도 줄어든다는 얘기다. 하지만 정현욱의 위는 그런 케이스가 아니었다. 암세포의 위치가 안 좋았다. 결국 위의 80%를 잘라내야 했다. 식도와 소장을 이어 붙이는 대수술이었다.
정현욱은 암 투병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구단에도 간곡하게 부탁했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딸조차 아빠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홀로 외로운 싸움을 이어갔다. 대식가로 이름났던 그가 소식가로 변신했다. 많이 먹지 못해 체중이 20kg이나 줄었다. 힘 있게 타자를 윽박지르던 강속구도 사라졌다. 구속이 10km나 줄었다. 그래도 정현욱은 공을 던지고 싶었다. 한때 딱 달라붙던 유니폼 바지가 야윈 다리 위로 펄럭여도, 다시 경기에 나가고 싶었다.
그렇게 1년 8개월이 흘렀다. 정현욱은 지난 3월 26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두산과의 시범경기에서 다시 마운드에 섰다. 어느덧 한 투수의 존재를 잊어가던 팬들은 비로소 정현욱이 얼마나 큰 시련을 극복하고 다시 눈앞에 나타났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다시 20일이 흐른 4월 15일 대전 한화전. 정현욱은 꿈꾸던 순간을 맞이했다. 1군 경기에 다시 나섰다. 3.1이닝 3피안타 무실점으로 1043일 만에 세이브를 따냈다. 후배 투수 우규민은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그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험난한 언덕을 넘고 돌아와 새 야구인생을 시작한 선배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였다.
#정현석도 이겨냈다
정현욱이 다시 공을 던지던 이날, 때마침 한화 타선에는 정현석의 이름이 있었다. 정현석은 정현욱보다 한 해 먼저 위암을 이겨내고 돌아온 선수다. 정현욱이 마운드, 정현석이 타석에 각각 서 있는 장면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많은 야구인과 야구팬의 가슴은 벅차오를 수밖에 없었다. 두 선수가 마주 보고 대결하는 동안, 그라운드는 ‘기적’의 여운으로 가득 찼다.
한화 이글스의 정현석 선수도 위암을 이기고 그라운드로 다시 돌아왔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정현석은 2014년 12월 한화 선수단 정기 건강검진에서 위암 판정을 받았다. 청천벽력. 곧바로 위를 절반 넘게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퇴원한 뒤에는 결혼한 지 1년 된 아내와 함께 제주도로 요양을 떠났다. 운동은커녕 걷는 것만 가능한 몸 상태였다. 이듬해 2월까지 공기 좋은 지역에서 몸의 힘을 되찾는 데 집중했다. 달라진 식사량과 식습관에 적응하는 기간도 물론 필요했다.
3월부터는 등산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수 있게 됐다. 충남 서산에 있는 한화 재활군에 합류해 개인 훈련을 시작했다. 한화는 정현석을 위한 개인 훈련 프로그램을 만들어줬다. 하루라도 빨리 1군에 돌아올 수 있도록 전폭 지원했다. 정현석의 회복 속도도 점점 빨라졌다. 5월 15일 2군에 합류했고, 6월 19일부터 2군 경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5일, 마침내 정현석은 1군 엔트리에 다시 이름을 올렸다. 문학 SK전 5회말, 좌익수로 교체 투입됐다. 그렇게 그리워했던 그라운드를 결국 다시 밟았다. 상대 팀인 SK 팬들도 열화와 같은 박수로 정현석을 환영했다. SK 역시 전광판에 ‘정현석 선수의 건강한 복귀를 축하합니다’라는 문구를 띄웠다. 모두 하나가 돼 정현석을 맞이했다.
무엇보다 한화에게도 정현석의 복귀는 ‘선물’이었다. 한화 선수들은 모자에 정현석의 별명인 ‘뭉치’를 적어 놓고 동료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정현석은 건강한 미소로 그 염원에 화답했다.
#김세현은 여전히 싸운다
넥센 김세현은 지난 시즌까지 ‘김영민’이라는 이름을 썼다. 지난해 9월 복통 때문에 병원을 찾았다가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황망히 시즌을 일찍 접고 항암 치료를 시작했다.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된 20대 후반 투수에게 너무 가혹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치료는 비시즌에 끝났다. 새로 태어나고 싶어서 이름까지 바꾸고 스프링캠프에 참가했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앞세워 새 마무리 투수라는 보직도 얻었다. 그러나 이 병은 완치된 게 아니다. 김세현은 지금도 여전히 병과 싸우고 있다. 수시로 병원에 가야 하고, 매일 오후 3~4시 사이에 항암 치료제를 먹는다. 정해진 시간대보다 3시간 이상 복용이 늦어지면 약의 효과가 없어진다. 그래서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완치가 없는 병이라 언제까지 약을 계속 먹어야 할지 알 수도 없다.
몸에 열이 날 때면 무조건 응급실로 달려가야 한다. 열은 증상 재발의 첫 번째 신호라서다. 올 시즌에도 원정 숙소에 머물다 열이 38도까지 오르는 바람에 응급실로 달려간 적이 있다. 또 다시 시즌을 멈추고 고통스러운 치료를 시작하는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당장 군 입대라도 할 것 같은 짧은 헤어스타일에도 사연이 있다. 아주 독한 치료제를 먹고 있기 때문에 화학제품을 사용하는 펌이나 염색을 할 수가 없다. 사람들은 “남다른 각오의 표현”이라 여기지만, 그에게는 건강과 직결된 문제다.
넥센 김세현 선수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으로 투병을 하면서 마운드에 오르고 있다. 사진제공=넥센 히어로즈
김세현은 이 모든 시련을 거치면서 한 뼘 자랐다. 20대의 활력을 당연하게만 여겼던 젊은 투수는 이제 건강이 얼마나 큰 선물인지 절실하게 깨달았다. 생활 습관부터 야구를 대하는 마음까지, 모두 달라지고 성숙해졌다. 그는 “아프고 나니 야구가 더 절박해졌다. 지금 내가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운동할 수 있는 상태만 된다면, 끝까지 열심히 야구를 하는 게 내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게 바로 병마를 이기고 돌아오는 모든 선수의 마음이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존 레스터 항암 고통 이긴 후 WS 우승 단맛 시카고 컵스 투수 존 레스터는 올해 33세다. 그는 보스턴 소속이던 2006년 8월, 그러니까 10년 전 23세의 젊은 나이에 암의 일종인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 허리에 통증을 느꼈고, 정밀 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다가 암세포를 발견했다. 림프종은 림프조직에 생기는 악성 종양이다. 백혈병과 함께 대표적인 혈액암으로 분류된다. 다행히 초기에 발견할 경우 완치율이 50%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레스터는 고교 시절 워싱턴 주를 평정한 최고의 유망주였다. 보스턴 입단 후에는 마이너리그에 괴물 투수가 나타났다는 소문이 퍼졌다. 암 판정을 받은 2006년에는 빅리그 데뷔 5연승을 올리면서 다른 구단 에이스와의 트레이드 카드로 거론될 만큼 승승장구하던 중이었다. 그러나 모든 게 일거에 멈췄다. 레스터는 고향 시애틀에 있는 프레드 허친스 암센터에서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 네 번의 항암 치료를 거쳤다. 고통스러운 나날이었다. 혈액암의 일종인 림프종을 이기고 마운드에 다시 선 시카고 컵스 존 레스터. 사진출처=시카고 컵스 홈페이지 결국 6개월 만에 완치 판정을 받았다. 초기에 발견된 게 천만다행이었다. 2007년 스프링캠프에 참여했고, 트리플A에서 메이저리그 복귀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해 7월 24일 클리블랜드와의 원정 경기에서 다시 빅리그 마운드에 올랐다. 암을 이겨내고 11개월 만에 돌아온 레스터에게 야구팬들은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냈다. 레스터는 그해 정규시즌을 4승 무패로 마쳤다. 그리고 콜로라도와의 월드시리즈 4차전에 팀 웨이크필드 대신 선발 등판해 승리 투수가 됐다. 포스트시즌 첫 등판에서 팀의 우승을 확정한 역대 세 번째 투수였다. 그 후 레스터는 빅리그 통산 130승을 넘긴 특급 왼손 투수로 성장했다. 2008년 5월 20일에는 캔자스시티를 상대로 생애 첫 노히트노런을 달성했고, 2008년부터 4년 연속 15승 이상도 따냈다. 올해 역시 벌써 8승을 따내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6월 둘째 주 2경기에서 15이닝을 던지면서 2승 무패, 평균자책점 0.00을 기록하면서 내셔널리그 주간 MVP에 오르기도 했다. 레스터 외에도 암을 극복한 인간 승리의 주인공들은 더 있다. 레스터와 같은 팀에서 뛰고 있는 앤서니 리조(27)는 2008년 5월 마이너리그에서 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6개월에 걸친 항암 치료를 이겨낸 뒤 그해 11월 마침내 완치 판정을 받았다. 리조는 2011년 빅리그에 데뷔해 2년 연속 30홈런을 때려냈다. 통산 399홈런을 친 안드레스 갈라라가도 레스터와 같은 림프종을 이겨냈다. 애틀랜타 소속이던 1999년 등 통증 때문에 정밀 검사를 받았다가 림프종이 확진됐다. 당시 38세였던 그는 1년에 걸친 화학요법과 방사능 치료를 이겨낸 뒤 그라운드에 복귀해 4년을 더 뛰고 은퇴했다. 이 외에도 메이저리그 정상급 3루수였던 마이크 로웰은 고환암을 극복했다. 1999년 스프링캠프 신체검사에서 암이 발견돼 힘겨운 방사능 치료를 받았다. 3개월 만에 복귀했고, 이후 네 차례나 올스타에 선정됐다. 또 골든글러브 3회 수상 외야수 에릭 데이비스는 결장암, LA 다저스 중견수 출신인 브렛 버틀러는 편도암, 뉴욕 양키스를 이끌었던 조 토레 감독은 전립선암을 각각 극복하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큰 시련을 극복하고 결국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온 이들의 의지와 투혼은 전 세계 야구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