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탈의 2대 주주인 한미약품은 예고 없이 장내 공개 매도를 통해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실연의 주인공은 의학·약학 연구개발업체 크리스탈지노믹스(크리스탈)다. 2000년 설립된 크리스탈은 지난해 국내 제22호 신약인 관절염치료제 ‘아셀렉스’를 개발해 주목을 받았다. 또 지난 8일에는 급성백혈병 신약후보 물질을 미국 앱토즈바이오사이언스사와 35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하며 유명세를 탔다.
그동안 크리스탈은 회사 설립 이후 적자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상태였다. 지난해에도 38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하지만 아셀렉스의 시판과 이번 기술수출로 올해는 흑자 전환이 유력시된다. 기나긴 연구개발 노력이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이다.
한미약품은 크리스탈의 이러한 가능성을 보고 투자했으며 2008년 유상증자 등의 과정을 통해 크리스탈의 2대주주 자리에 올랐다. 한미약품은 또 자사의 손지웅 부사장을 비롯해 3명을 크리스탈 이사회에 파견해 경영에도 직‧간접적으로 관여해왔다. 크리스탈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유지해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약품은 지난 9일과 10일 양일간 장내 매도로 크리스탈 지분을 모두 처분했다. 크리스탈에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한 셈이다. 크리스탈 측은 지난 10일 회사 홈페이지를 통해 “2대 주주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아니다”라며 “매우 유감스러움을 금할 수가 없다”고 밝히는 등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크리스탈 측에 따르면 두 회사가 체결한 ‘전략적 제휴 합의서’에는 지분 매각 시 사전에 상대방에게 통지하고 우선매수권을 부여하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한미약품은 이러한 합의 내용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것. 크리스탈 관계자는 “지난 9~10일 이틀 동안 기타법인의 대규모 매도 주문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한미약품 측에 문의했으나 답변을 듣지 못했다”며 “13일에야 한미약품 재무팀에 직접 연락해 매도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고 말했다.
크리스탈 측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고 있다. 사진=홈페이지 캡처
일부에서는 한미약품이 시세차익을 노리고 매도 타이밍을 잡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장내 매도를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이 직접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크리스탈 관계자는 “임성기 회장이 ‘주가가 2만 원을 넘으면 매도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일 3500억 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공시하자 크리스탈 주가는 당일 곧바로 상한가를 쳤다. 9일과 10일에도 주가가 각각 2만 850원, 2만 3000원으로 장을 마쳤다. 한미약품은 이번 주식 매각을 통해 보유 지분 229만여 주(한미사이언스 보유 지분 포함)를 전량 매도해 208억 원의 시세차익을 얻었다. 8년 사이 100%가 넘는 수익률을 기록했다.
한미약품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일부 비난의 목소리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회장님이 지분 매각을 지시했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며 “담당부서에서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매도를 진행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또 “이미 5~6년 전부터 크리스탈 측에 블록딜 등 장외매도를 통해 주식을 처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특별한 답변이 없었다”며 “서로 지분 매각에 대한 일종의 암묵적 동의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두 회사 내부적으로는 이미 수년 전부터 관계가 청산될 것이라는 예상을 한 것으로 보인다. 크리스탈 관계자는 “그동안 한미약품과 함께 연구개발을 진행한 적은 없었다”며 “개발 분야가 겹치기도 해 자연스럽게 관계가 소원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도 “처음에는 전략적 제휴로 파트너십을 염두에 두고 투자했지만 이후 단순히 재무적 투자 관계로 변해버렸다”며 “서로 지향하는 방향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에서 파견한 3명의 경영진에 대해 크리스탈 관계자는 “다음 주주총회에서 사임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며 “합의서에 법적 페널티가 포함돼 있지는 않아 분쟁이 커지지는 않을 것이며 오히려 한미약품이 나가서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정재훈 기자 julian@ilyo.co.kr
‘약 조제 자동화’ 업체와 윈윈전략 한미약품, 제이브이엠 자회사 편입 속사정 한미약품그룹의 지주회사인 한미사이언스는 지난 9일 의약품 관리 자동화 시스템 분야 국내 1위 기업 제이브이엠(JVM)을 자회사로 편입했다고 공시했다. 인수 대금은 약 1290억 원으로 JVM 지분 30%를 취득해 최대주주로서 경영권을 확보했다. 지난 6월 9일 한미사이언스는 제이브이엠을 자회사로 편입했다고 공시했다. 사진=제이브이엠 제공 JVM은 국내 약 조제 자동화시스템 시장의 80%를 점유하는 독보적 1위 회사다. 북미와 유럽에서도 7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약 조제 자동화시스템’이란 약사가 조제할 약 정보만 입력하면 기계가 자동으로 약을 봉지에 담아 밀봉까지 해주는 시스템이다. JVM은 지난해 매출액 885억 원에 영업이익 65억 원, 순이익 52억 원을 기록했다. JVM이 국내에서 독보적인 점유율을 기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미약품이 있다. 제약업계 최고의 영업력으로 평가받는 한미약품이 JVM의 국내 영업을 대행해왔기 때문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한미약품의 기본 경영 기조는 서로 ‘윈윈’하는 것”이라며 “JVM과는 오래 전부터 좋은 협력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이번 인수‧합병으로 이전보다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경영은 계속 김준호 JVM 부회장이 맡는다. 김 부회장은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과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하며 서로 신뢰를 쌓아왔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향후 그룹의 사업다각화 및 개편과 맞물려 경영진이 교체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아직까지는 경영 독립성을 인정하고 있다”면서도 “앞으로 (경영진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