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피해 학생 부모의 신고로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김 씨는 지난 2009년부터 여학생들에게 자신의 신체 부위를 만지게 하는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이 학생들은 미술에 관심이 있어 지인의 소개로 김 씨를 찾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여학생들에게 그림을 알려주던 중 “촉감으로 그림을 그려보라”며 학생들의 눈을 가린 뒤 자신의 성기를 만지도록 했다. 김 씨는 또 “신체를 잘 알아야 그림을 더 잘 그릴 수 있다”며 성폭행을 하기도 했다.
8년 간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을 성추행·성폭행한 서양화가가 구속됐다. SBS의 관련 방송 화면 캡처.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이후 장애인 학교에서 봉사활동을 자처하기도 했는데 이때 청각장애 학생을 추행했다. 일부 학생을 성폭행한 김 씨는 범행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소재 김 씨 집을 압수 수색하던 과정에서 김 씨가 본인의 성범죄 현장을 촬영한 동영상 수십여 개를 발견했다. 경찰의 압수수색 뒤 잠적한 김 씨는 일주일 만에 체포됐다. 경찰은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김 씨의 과거 행적을 확인하고 있다.
김 씨는 국내 명문 미대를 졸업한 후 프랑스 등 외국에서 유학을 한 후 개인 전시회와 방송활동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김 씨는 유화와 조각 등에 집중해 개인 전시회를 열며 서양화가로 지냈다. 김 씨는 파리에서 유학했던 작가들과 전시회를 진행했고 이후에도 서울 각지에서 그룹전을 열면서 작가 인맥을 쌓아왔던 것으로 보인다. 김 씨의 전시회가 열렸던 갤러리 관계자들은 “오래전이라 누구인지 기억이 나지 않고 소속 작가가 아니었고 대관만 신청했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다” 등으로 일축했다.
김 씨와 친분이 있는 유명 작가 A 씨는 “한때 그룹전이 유행이라 김 씨와 전시회를 같이 하다가 알게 됐다. 최근에는 만난 적이 없는데 이 소식을 접했을 때 너무 충격적이었다. 평소 내가 알던 김 씨는 인간적인 사람이었고 그 누구보다도 자기 작품에 빠져 살아가는 전업작가 가운데 한 명이었다”며 “외부에서 화가들의 생활은 화려해보이지만 항상 혼자 작업실에서 작업을 하니 외롭기도 하다. 이런 과정에서 김 씨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나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여전히 믿을 수가 없다. 이번 일로 미술계에 대한 비난이 이는 것은 아닐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 씨가 지난 1998년에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당시 경기도 용인 소재의 한 성당의 건축을 도맡기도 했다. 그 성당의 내부에선 여전히 김 씨의 건축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당 관계자는 “형제님이 20여 년 전 성당을 새로 지을 때 도움을 줬다는 기록이 있다. 비용을 받지 않고 지어준 것으로 보인다”며 “건축물 기록이 있어 형제님의 이름만 알 수 있을 뿐이지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아는 바가 없다. 성당에 다니지는 않았고 건축만 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는 다른 성당에도 건축물을 기부했었고 세례를 받은 천주교 신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사건의 발단이었던 학생들을 소개받았던 2009년께 그가 한 천주교 단체 회원으로 활동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해당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하며 미술에 관심 있는 학생들을 소개받았던 것이다. 해당 단체 회원들에 따르면 김 씨는 별로 두드러지는 인물이 아니었다. 당시 해당 단체의 회장직을 맡았던 B 씨는 “본인이 신청해서 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회장직을 맡아서 김 씨의 이름을 알 뿐이지 회원이 300명이 넘기 때문에 얼굴까지는 모른다”며 “더군다나 김 씨는 거의 활동을 하지 않아 알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제명 대상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우리 단체가 거론돼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SBS의 김 씨 관련 보도 화면.
같은 기간 김 씨는 경기도의 한 지역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지역에도 김 씨의 작품이 전시돼 있었다. 해당 주민은 “2003년에 김 씨가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2009년쯤 테마마을로 조성이 되면서 작가들에게 재능기부 요청을 했고 이때 김 씨의 작품이 마을 입구에 세워졌다”며 “김 씨의 집에 갔을 때 작은 액자들이 전시돼 있었고 항상 혼자 있던 모습만 기억난다. 아내와 이혼을 한 뒤 3~4년 전에 이곳을 떠났다”고 말했다. 한 언론에선 안성에서 거주했던 김 씨에 대해 ‘10년 넘게 안성에서 은둔자처럼 조용히 살며 그림에 집중했다. 사람을 사귐에 어색하고 저잣거리의 번잡스러움에 익숙지 않다’고 묘사했다. 다양한 인맥을 통해 작품 활동과 방송 활동을 했던 그의 행적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이번 사건으로 김 씨의 작품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지난 2014년 김 씨는 전시회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발표했다. 돋보이는 것은 과일 모양의 조각들이다. 김 씨는 “배가 고파 과일을 먹다가 문득 뭉클한 감동이 밀려왔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과일 한 조각이 예술보다 위대했다”고 말한 바 있다.
최영지 기자 yjcho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