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 소속 노동자들이 대우조선의 임금 삭감에 반발해 시위를 하고 있다.
[일요신문] 조선업계 구조조정 논란이 한창인 가운데 거제지역의 분위기는 가라앉은 것도 모자라 흉흉하기까지 하다. 거제지역은 국내 조선업계 ‘빅3’ 가운데 2곳이나 위치하고 있는데다 이달 초부터 진행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검찰수사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가늠하기도 힘든 액수의 분식회계 스캔들마저 터져 최악의 경우 도시기능마저 마비될 수도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지역조선업계의 근로환경이 ‘악소리’ 날 정도의 악화일로에 놓여있다는 점이다.
‘비리의 온상’이란 오물을 잔뜩 뒤집어 쓴 대우조선해양을 바라보는 시각은 거제시민 역시 일반국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른바 대우조선 귀족노조에 대한 비판도 사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며, 지역언론도 이를 지속적으로 다루고 있다.
문제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로 인한 여파가 결코 회사 내부에서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파장이 협력사 등으로 퍼지고 다시 3차 산업에까지 이어지면 그 끝을 가늠하기도 쉽지가 않다. 거제시가 강원랜드가 들어서기 전의 태백시와 같은 처지에 직면할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이에 따라 조선업 종사자들의 근로조건 악화가 마치 필수 과정처럼 따라붙고 있다.
대우조선 분식회계 스캔들이 터져 나온 지난 15일 거제시에서는 이 대형이슈 말고도 주목되는 일들이 관련업계에서 함께 불거졌다. 조선업계의 근로환경이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내몰리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정황들이 외부로 알려진 것이다. 이는 지역을 대표하는 양대 조선소에서 각기 하나씩 드러났다.
우선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 노동자들로 구성된 대우조선하청노동자조직위원회(하노위)는 이날 대우조선 협력사들이 노동자들에게 ‘취업규칙 변경동의서’에다 개별면담 형식으로 날인을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노위에 따르면 대우조선사내협력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이미 ‘협의회 임시회의 및 임금개편관련 회의결과’라는 제목의 문자가 돌았다. 문자는 ‘상여금 550 중 150프로 삭감, 300프로 기본급전환, 나머지 100프로는 추석과 설 각각 50프로씩 지급, 월 318시간 기준 근무, 토요일 주차 없음, 근무 시 12시간만 인정, 비근무시 무급, 상기안을 5월 월례회 때 공포하고 사전 동의를 얻은 협력사는 6월 1일부, 나머지 전체는 7월 1일부로 시행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문자 내용대로 임금삭감이 진행되면 상여금이 150% 삭감돼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에 연간 190만 원(월 16만 원)의 임금 삭감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또한 월 318시간 근로 시에 상여금 300%를 기본급으로 전환하게 되면 추가적으로 임금삭감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하노위는 보고 있다.
하노위 강병재 위원장은 “상여금이 기본급화 되면 기본급이 올라가게 되고 2~3년 동안은 법정 최저임금이 올라도 기본급을 인상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기에 사실상 상여금만 사라지는 셈”이라면서 “또한 유급휴일이던 토요일을 무급휴일제로 전환하면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를 기준으로 월 21만 원의 임금 삭감요인이 추가로 발생한다”고 말했다.
특히 대우조선협력사들은 이러한 내용을 취업규칙동의서에 담아 근로자들로 하여금 날인토록 하고 있다. 협력사들은 최저임금과 상관이 없는 물량팀에 동의서를 먼저 받아 분위기를 조성한 후, 기타 직원들이 이에 동의하도록 종용하면서 비동의시엔 퇴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우조선 사내협력사들이 노동자들의 서명을 받고 있는 동의서 원본. 임금삭감 등 비동의시엔 퇴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다른 얘기는 삼성중공업에서 불거졌다. 삼성중공업은 그동안 복지에 관해서는 타 회사보다 월등한 혜택을 부여해왔다. 하지만 경기불황은 이 회사 내에서도 비생산적이며 손실이 많은 복지를 결국 찬밥신세로 전락시키고 말았다.
삼성중공업은 최근 복리후생 축소를 시행하면서 그 상세한 내용을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김경습 삼성중공업일반노조위원장은 이번 복지축소와 관련한 내용을 역시 15일 밝혔다.
그가 밝힌 복지후생 축소로 폐지되는 목록은 △17시 석식 운영 △하기휴양소 운영 체육대회지원 △TPI 경비 △해외인프라 △근무복 정기지급 수량 조정 △문화행사지원 △주택조합 지원 △사우매장 할인 △사우매장 이용권 지원 △사원자녀 캠프·테마여행 △창립기념일 휴무 △연중 유급휴무 △복지포인트제도 등이다.
삼성중공업 사측이 김경습 삼성중공업일반노조위원장이 공개한 복지후생자구안은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는 했지만 삼성중공업노조협의회는 이 자구안에 반발하며 파업을 결의할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삼성중공업의 파업이 현실화되면 14일 찬반투표를 통해 이미 파업을 하기로 결정한 대우조선해양과 더불어 지역의 양대 조선소가 모두 파업모드에 돌입하게 된다.
위의 두 가지 사례들은 지금 거제시의 분위기를 피상적으로 전달하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노동자들도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얘기가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일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결국 이게 향후 추가로 고통분담을 요구하고 또한 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악순환의 마중물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좀더 설득력을 얻고 있다. 게다가 사태를 이 지경에 이르도록 방관한 자들에 앞서 산업현장 최일선에 있는 노동자들부터 피해를 보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하용성 기자 ilyo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