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갔던 청년 시절 조훈현(왼쪽)과 세고에 겐사쿠 9단(오른쪽). | ||
일본 현대 바둑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세고에 9단은, 우리에게는 조훈현 9단의 스승이라는 이유로 특히 친숙하고 널리 알려진 인물. 1889년 히로시마 출생. 1909년 ‘방원사(方圓社)’에 입문, 전문기사가 되었다. 방원사는 일본 바둑의 근-현대를 잇는 가교 역할을 했던 단체로 이를테면 일본기원의 전신인데, ‘방원’이란 말 자체가 바둑의 별칭이다. ‘방’은 네모난 것으로 바둑판, ‘원’은 둥근 것으로 바둑알을 상징한다. 네모난 대지, 둥근 하늘이니 방원은 우주다.
세고에 9단은 1924년 일본기원 창립에 동참했고, 2차대전이 끝날 때 원폭 피해로 건강을 잃었으나 1946년 일본기원이 법인으로 발전할 때 초대 이사장을 지냈으며 이후에는 후진 양성과 바둑의 세계 보급 및 교류에 힘을 쏟았다.
세고에 9단은 또 바둑의 종주국, 한·중·일 극동3강의 대표천재 세 사람을 길러낸 것으로 유명한 사람. 그게 사실은 제일 큰 공로다.
20세기의 기성으로 추앙받는 우칭위엔 9단, 전후 일본 바둑 최고의 천재로 꼽혔던 하시모토 우타로 9단, 우리 조훈현 9단이다. 조훈현 9단의 제자가 이창호 9단, 우칭위엔 9단의 말년 최후의 제자가 중국의
‘철녀’ 루이나이웨이 9단이다.
▲ 1919년 세고에 겐사쿠(당시 5단)가 중국에서 청나라 숙친왕과 대국을 하는 모습. | ||
세고에 9단은 1972년, 조훈현 9단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소설 <설국>의 작가,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평생 친구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자살한 데 이어 생의 마지막 열정을 쏟았던 사랑하는 제자마저 한국으로 돌아가자 외로움을 견디지 못했다는 것인데, 사실 여부를 떠나 그럴 수 있겠구나, 그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둑의 전당’이 문을 연 2004년, 전당에 처음 올라간 사람은 초대 본인방 샨사, 바둑사 3대 기성 가운데 두 사람인 제4대 본인방 도사쿠, 제17대 본인방 슈사쿠, 그리고 17세기 일본 전국시대의 주인공인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 넷이었다.
이번 선정에서는 세고에 9단 외에 이와모토 가오루 9단, 기타니 미노루 9단, 그리고 방금 소개했던 하시모토 우타로 9단, 그리고 역사의 인물로 일본 바둑사의 풍운아 이노우에 인세키 등이 후보로 거론되었다고 한다. 기타니 9단은 새삼 소개할 필요가 없을 것. 이와모토 9단은 일본 해외 보급의 선구자.
부동산으로 거부가 되었던 이와모토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미국의 뉴욕과 시애틀, 유럽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그리고 멀리 남미 브라질의 상파울루 등 네 곳에 바둑문화센터를 건립했다. 그곳들이 일본 바둑 전파의 전진기지가 된 것은 물론이며 지금도 운영되고 있다.
인세키는 매력적인 캐릭터. 당대 바둑계의 권좌 ‘명인’의 자리를 놓고 10대 본인방 죠와와 일생을 다투었던 인물. 바둑 실력뿐 아니라 권모술수에도 능했지만, 끝내 운이 따라주지 않은 비운의 인물이기도 했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