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일(한국시간) 추신수가 우천으로 경기가 취소되자 2시간 반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던 팬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있다. _홍순국 메이저리그 사진전문기자 | ||
그 분의 글을 요약해 보면 제가 그동안 일기에 썼던 노무현,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에 대한 애도, 그리고 서재응, 최희섭 선배에 대한 고마움 등등을 열거하면서 ‘혹시 부모님, 조부모님, 아니면 아내가 전라도 출신이냐?’고 물으시더라고요. 공인이라는 사람이 지역감정에 휩쓸려 전라도 사람들에 대해 다소 치우친 감정을 갖고 있다고 하셨고요. 더욱이 그 분은 만약 제 가족 중에 전라도 분이 계신다면 더 이상 팬으로 남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아니, 제가 전라도 사람을 좋아한다면 추신수의 팬임을 포기하겠다고 강조했어요. 재미있는 것은 그렇게 말씀하신 분이 자신은 지역감정에 사로 잡힌 사람이 절대 아니라고 친절히 설명해 놓으셨다는 겁니다.
그 글을 읽고 순간 정신이 멍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전 부산 출신입니다.
제 가족들 중에 경상도 출신이 있는지, 전라도 출신이 있는지는 언급도 하고 싶지 않아요. 그 분의 주장대로라면 미국 사람들이 단지 흑인이나 아시아인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인종차별을 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미국 사람들도 유색 인종의 겉만 보고 차별을 하는 것처럼 그 분도 단지 ‘전라도 사람’이라는 겉모습 때문에 무조건 싫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아직 한국에 이런 분들이 많나요? 그래도 많은 시간들이 흘렀고 동서화합이니 뭐 그런 거창한 말들도 오고 가는데 여전히 지역감정에 사로잡혀서, 일개 운동 선수를 어디 출신이니 아니니 하면서 팬을 하겠다, 안 하겠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이해가 안 됩니다.
만약 제 팬들 중에 이런 분이 계신다면, 그래서 떠나겠다고 하신다면 전 말리지 않겠습니다. 제가 평소 갖고 있는 소신과 가고자 하는 길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더 이상 추신수의 팬을 안 하신다고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아니, 그냥 떠나십시오.
솔직히 그 분의 글을 읽고 굉장히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감사하지만 왜곡된 시각을 갖고 절 평가하려 했던 부분은 이해가 되지 않네요.
마이너리그에서 뛰고 있는 많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부산고 후배들도 있고요. 시간과 여건만 되면 직접 만나서 도움을 주고 싶은데 시즌을 치르다보니 마음만 앞서고 정작 후배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해 안타까움이 큽니다.
후배들에게 한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게 있어요. 루키나 싱글A 등을 거치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힙니다. 한국에서는 상상도 못했던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계속 벌어지게 되죠. 그러나 지금의 후배들보다 가장 많이 힘들었을 분이 박찬호 선배님입니다. 그 다음이 이상훈, 조진호, 김병현 선배님이 아닐까 싶어요. 즉 지금 후배들이 힘들어 하는 것은 이전 선배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사실이죠. 그 당시엔 메이저리그에 한국 야구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본 선수도 아닌 한국 선수가 외국 선수들과 부대끼며 자신의 자리를 구축한다는 게 굉장히 어려웠을 겁니다. 저 또한 선배들의 고생과 노력 덕분에 훨씬 편한 환경과 분위기 속에서 운동을 했으니까요.
나만 힘들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제일 고생한다는 생각도 잊어버리고요. 메이저리그에 올라가기 전까진 뒤도, 옆도 돌아보지 말고 무조건 앞만 보고 가야 합니다. 여기서 죽겠다는 각오 아니고는 그 험난한 과정들을 견뎌내지 못합니다. 이제 겨우 전 그 굴레에 머리를 비집고 들어가 첫 발을 뗐습니다.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꿈꿔왔던 곳이었지만 이 세계가 두렵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비열하고 또는 냉정하기 때문이죠.
클리블랜드에서 추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