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을 담당한 부산 영도경찰서 전경.
지난해 12월 초순경 강원도 원주. 무직이었던 박 아무개 씨(22)와 나 아무개 씨(21)는 “성매매 하면 돈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성매매를 시킬 대상을 물색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우선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15세 여중생인 A 양을 꾀어냈다. A 양은 박 씨와 나 씨의 협박에 같은 수법으로 동년배인 B 양과 초등학교 6학년생인 C 양을 꾀어냈다. 이때부터 박 씨와 나 씨 일당은 모텔을 전전하며 세 명의 소녀들에게 성매매를 시켰다.
올해 1월 말까지 두 달가량 불법 성매매 영업을 이어갔지만 점차 상황이 어려워졌다. 예상만큼 큰돈을 벌지 못한 데다 이들 세 소녀에 대한 소문이 금방 퍼져 버렸기 때문이다. 골머리를 앓던 박 씨 일당은 좁은 원주를 떠나기로 결정한다. “부산이 영업이 잘된다더라”는 풍문을 듣고 행선지를 부산으로 정한다. 물론 A 양 등 소녀 세 명을 데리고 갔다. 부산에서 이들은 화대로 15만 원에서 30만 원 사이를 받아 챙겼다. 경찰 조사에서 피해 소녀들은 “셋이서 하루에 최대 10건의 성매매를 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이렇게 원주 일당이 부산으로 영업 장소를 바꿔 본격적으로 돈을 벌기 시작할 즈음 부산에선 또 다른 성매매 일당이 태동하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부산에 거주하던 김 아무개 씨(22)와 서 아무개 씨(22)를 중심으로 한 친구 여섯 명이었다. 이들 역시 성매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쪽 사업을 계획하기 시작했다. 부산 일당 역시 ‘조건녀’를 꼬드긴 뒤 잡아서 성매매를 시킬 계획을 세웠다.
2월 초순 부산 일당은 ‘조건녀’로 나온 여중생 A 양과 초등학생 C 양을 만나게 됐다. 이들은 소녀들을 미리 렌트해둔 차량 2대에 나눠 태워 야산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소녀들의 신상 정보를 캐기 위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이때 소녀들에게 자신들을 ‘부산 경찰 밑에서 일하는 헌터들’이라고 소개했다. 그 과정에서 소녀들은 “사실 성매매를 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남자 일행이 모텔에 있다. 그들이 미리 벌어놓은 돈을 갖고 있다”고 얘기했다. 부산 일당을 경찰 관계자로 오인한 소녀들이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물론 부산 일당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생각에도 없었던 ‘돈’, 그러니까 소녀들이 벌어놓은 돈까지 있다는 솔깃한 말에 이들은 원주 일당이 있는 모텔로 향했다. 두 명뿐인 원주 일당을 제압한 이들은 돈을 갈취했다. 이들은 심지어 박 씨와 나 씨의 주민등록증과 얼굴 사진 등을 찍기도 했다. 게다가 “우리 뒤에 경찰이 있다”는 협박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원주 일당은 자신들의 신상 정보가 부산 일당의 손에 있고 이미 미성년자 성매매 알선 등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폭행을 당했음에도 아무런 신고도 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부산 일당은 여중생 B 양을 놔두고 모텔 밖을 나섰다. 경찰 조사에서 부산 일당은 B 양은 ‘관리’가 힘들 것이라 판단했다고 진술했다. 제법 성인 티가 나는 B 양은 당시 부산 일당에게 “부모님이 부산에 놀러온 줄 안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당시 부산 일당이 원주 일당의 돈을 얼마나 갈취했는지에 대해서도 주장이 엇갈린다. 경찰 조사에서 갈취한 돈에 대해 돈 관리를 맡았던 나 씨는 “30만 원을 빼앗겼다”고 말했다. 반면 소녀들은 “당일 날 돈 번 것만 해도 80만 원”이라고 반박했다. 또한 돈을 빼앗은 부산 일당은 “11만 원을 갈취했다”고 말하고 있다.
소녀들은 15세 여중생과 13세 초등학생이었다.
부산 일당의 그날 행각은 거기서 중단되지 않았다. 주범인 김 씨와 서 씨가 피해 여성 가운데 가장 어린 초등학생 C 양을 한 차례씩 강간한 것. 게다가 일행 중 한 명이 이를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부산 일당의 범죄 행위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그들 사이에서 ‘트러블’이 생겼기 때문이다. 사건을 담당한 부산 영도경찰서 형사 4팀 윤홍주 형사는 “돈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6명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누구는 앱으로 남성들을 꾀어내고 누구는 소녀들을 감시하는데 너는 뭐냐’는 식의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들이 서로 다투는 사이 감시가 소홀해졌고 그 틈을 타 C 양이 도망가기 이르렀다. C 양이 성매매를 한 뒤 모텔 밖을 나왔는데 데리러 온 일당이 아무도 없자 도망을 간 것. 이후 부산 일당의 다툼은 더욱 심해졌다. 서로 ‘너 때문에 나갔다’며 분란이 커진 것. 3일 뒤 여중생 A 양 역시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망갔다.
부산 일당에게서 도망친 A 양과 C 양은 어렵게 다시 만났다. 그렇지만 이들은 갈 곳이 없었다. 노숙 생활을 시작했지만 어린 소녀들에겐 그리 녹록지 않았다. 결국 3월 초순 이들은 다시 성매매의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이미 두 일당을 통해 성매매의 나락에 떨어진 이들이 이젠 독자적으로 성매매를 시도하려 한 것.
두 소녀는 결국 성매수남으로 위장해 성매매 단속 수사를 벌이던 부산 영도경찰서 생활질서계 경찰에 체포된다. 당시 소녀들은 매우 ‘거친’ 상태로 경찰서에 잡혀 왔다. 윤 형사는 “어른에 대한 반감이 매우 심한 상태였다”면서 “대화가 통하질 않고 묻는 말에 욕만 해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실제 소녀들은 노숙 생활 도중 한 ‘어른’에게 이 모든 사실을 털어 놓았지만 믿지 않았으며 ‘말도 안 된다’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한다. 생활질서계에서 도움을 요청하자 형사 4팀이 나서서 수사를 맡게 됐다.
소녀들을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 윤 형사는 “소녀들은 비행 청소년은 아니었다. 다만 개인적인 가정 상황 등으로 제대로 돌봄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라며 “당시는 학교에서 장기 결석생 전수 조사가 이뤄지기 전이다”라고 말했다.
사건의 전말을 파악한 경찰은 가장 먼저 가해자인 동시에 강도 피해자인 원주 일당을 찾아 나섰다. 소녀들은 원주 일당의 이름과 그들의 주활동 지역이 강원과 충북 일대인 사실만 알고 있었다. 경찰은 수소문 끝에 원주 일당을 찾을 수 있었다. 검거 전에 일대 렌트카 업체를 샅샅이 뒤져 그들이 렌트한 차를 특정했다. 윤 형사는 “일당이 차를 렌트한 시기와 주차 단속 내역 등을 수사해 돈의 흐름과 출처 등을 2주 동안 조사해 체포 영장을 받을 수 있었다”면서 “처음에 박 씨와 나 씨 모두 혐의를 부인했지만 이내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말했다.
부산 일당은 소녀들 앞에서 가명을 썼지만 주범 가운데 한 명인 서 아무개 씨가 미처 생각지 못하고 본명을 사용했다. 원주 일당도 서 씨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이에 경찰은 3월부터 한 달간 서 씨를 집중 수색했다. 윤 형사는 “서 씨의 통화 내역, SNS 활동 등으로 서 씨와 범행을 할 법한 인물을 11명 내외로 추렸다”며 “이후 행적 조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공범을 5명으로 특정했다”고 얘기했다. 이어 “5월에 5명의 소재를 파악했는데 이들은 사이가 벌어져 다 따로 지내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끈질긴 수사 끝에 지난 13일 오전 부산 일당 가운데 한 명을 검거한 데 이어 일당을 모두 검거할 수 있었다. 윤 형사는 “부산 일당은 모두 전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3월 원주 일당인 박 씨와 나 씨는 형법 제276조 체포 및 감금 혐의와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등의 혐의로 구속됐고 부산 일당의 주범인 서 씨도 형법 제334조 특수강도, 형법 276조 체포 및 감금,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주범 김 씨 등 부산 일당 두 명 역시 지난 16일 서 씨와 같은 혐의로 구속됐다.
이번 사건의 수사는 두 달여가 걸렸다. 원주 일당을 추적하기 위해 부산 영도경찰서 형사 4팀원들은 8번의 출장을 다녀왔다. 실제 기자가 영도경찰서를 찾았던 지난 14일에도 이번 사건 때문에 이틀이나 밤을 새 충혈된 눈으로 윤 형사가 기자를 맞았다.
윤 형사는 “일선 경찰들은 물론 검찰까지도 ‘소녀들이 도망갔으면 되지 않느냐’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본인들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라. 위압을 가하는 ‘무서운’ 사람이 지속적으로 협박 등을 가하면 거기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속적인 협박에 적응이 되면 굳이 ‘도망가지 말라’고 말하지 않아도 피해자들은 도망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라며 이를 ‘심리적 감금’라고 표현했다. 덧붙여 이번 사건 피해자들이 어린 소녀들임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