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지난 10일 롯데그룹에 대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소문으로만 돌던 롯데그룹 수사가 본격 시작되자 서초동 일각에선 박근혜 대통령 레임덕의 신호탄 아니냐는 얘기가 나왔다. 검찰 수사가 현 정부 실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과거 검찰이 대통령 임기 후반 정권 실세들을 사법처리했던 사례도 오르내렸다. 실제로 몇몇 친박 인사는 정권 초부터 롯데와의 각별한 친분이 여러 번 도마에 오른 바 있다.
이에 대해 사정당국 고위 인사는 “소설 같은 얘기”라고 일축했다. 그는 “물론 수사는 생물이라는 점에서 어디로 불똥 튈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번 수사는 청와대가 ‘OK’ 사인을 내렸다는 것이다. 하명수사라는 뜻이 아니고 롯데 같은 대기업 수사는 여러 측면을 고려해야 하는데, 검찰이 독자적으로 했겠느냐. 이런 점에서 오히려 박 대통령이 검찰을 확실히 장악하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김수남 총장 임명 직후인 지난해 연말부터 롯데그룹과 관련된 비리에 대해 집중 내사를 벌여온 것으로 전해진다. 범죄정보를 수집하는 부서들이 롯데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모았고, 회계분석 파트에선 롯데의 재무제표와 자금 흐름을 꼼꼼하게 들여다봤다. 그리고 서울중앙지검 내 인지부서 3개(특수4부, 첨단범죄수사부, 방위사업수사부)가 동시에 롯데를 겨냥했다. 지난 6월 10일 롯데그룹 압수수색에 투입된 인원 240여 명은 사상 최대 규모다.
이처럼 검찰이 롯데를 정조준하게 된 배경엔 청와대 의중이 실렸다는 게 중론이다. 사실 롯데는 정권 초부터 여러 차례 수사 대상으로 거론됐다. 대표적인 ‘친MB 기업’으로 꼽혔고, 제2롯데월드 등 인허가와 관련된 비리 정황이 사정라인에 의해 포착됐다. 그러나 수사로까지 이어지진 않았다. 이 과정에서 현 정권 특정 실세가 롯데를 비호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대두되기도 했다.
검찰이 과연 롯데에 대한 수사에 나설지 회의적 시선이 팽배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서울중앙지검 고위 관계자는 “검찰이라고 롯데를 안 하고 싶었겠느냐. ‘양치기 소년’이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수사 의지는 있었지만 (청와대) 재가가 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이는 이번 수사가 여권 핵심부 결단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임기 후반으로 접어든 청와대는 왜 롯데를 타깃으로 했을까. 이에 대해선 여러 추측이 무성하다. 대기업 사정을 통한 재계 기강 잡기나 박 대통령 지지율 회복 등이 회자된다. 한 친박 원로 인사는 “롯데의 비리 혐의가 구체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원론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형제의 난 등으로 국민적 지탄을 받고 있는 롯데를 수사하는 일이다. 현 정권으로선 실보단 득이 더 많다”고 귀띔했다.
그런데 일각에선 롯데가 ‘괘씸죄’를 샀다는 말이 나오고 있어 관심을 끈다. 우선 지난해 7월 롯데의 경영권 분쟁 얘기를 빼놓을 수 없을 듯하다. 당시 광복절 특사에 재벌 총수를 포함시키는 안을 준비하고 있었던 박 대통령은 롯데발 형제의 난이 터지자 곤혹스러워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재벌가의 볼썽사나운 모습은 박 대통령이 신동빈 회장 등 총수들과 청와대에서 만찬을 가진 지 사흘 만에 터졌다. 재계와의 유화적 스탠스로 경제 살리기에 나섰던 박 대통령과 현 정권에 롯데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 됐다.
이런 상황에서 롯데는 사정 당국이 광범위하게 내사를 진행 중이란 소식을 듣고 친박 핵심부에 구명을 시도했다고 한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게까지 직접 줄을 대려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또 박 대통령 친인척은 물론 현 정권에서 최고위직을 지냈던 원로급 친박계 정치인에도 선처를 호소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 동향이 심상치 않자 필사적으로 현 정부 핵심부와 접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롯데의 이러한 움직임은 오히려 ‘역풍’을 일으켰고, 이러한 분위기는 검찰 수사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한 핵심 친박 관계자는 “(롯데가) 역린을 건드렸다. VIP와 핫라인이 연결돼 있는 한 원로 인사를 통해 로비를 하려고 했다. 이를 듣고 VIP가 상당히 불쾌해했던 것으로 안다. 그 후 롯데에 대해 강경 기류가 흘렀고, 청와대 민정을 중심으로 수사의 큰 그림이 빠르게 그려졌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롯데를 바라보는 박 대통령 주변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동안 친롯데 성향으로 알려진 친박 의원들이 숨을 죽이는 이유다. 앞서의 친박 관계자는 “VIP가 직접 관심을 기울이는 수사다. 누가 롯데를 위해 나설 수 있겠느냐. 지금은 전 정권뿐 아니라 자칫하면 현역들도 위험해질 수 있다. 그만큼 단호하다”면서 “이는 검찰 수사가 애초에 윗선에서 정해진 수순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는 뜻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