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발매된 ‘라이트노블(Light Novel: 애니메이션을 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가벼운 소설류)’과 판타지·무협 소설 전체를 스캔한 뒤 유료 회원들에게 불법으로 제공하고 있는 한 웹사이트 운영자의 말이다. 이 운영자는 회원들이 “소라넷도 잡혔는데 이 사이트도 위험한 것이 아니냐”고 지적하자 이와 같은 글을 공지로 올렸다. 한마디로 국내 저작권법과 단속 체계를 제대로 비웃은 것이다.
‘벚꽃 도서관’이라고 알려진 이곳은 국내에 정식 발매된 라이트노블 수천 권을 PDF 또는 TXT(텍스트)파일로 변환해 보관하고 있다. 운영진의 말에 따르면 이 사이트는 국내 발매된 라이트노블 약 95%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매월 발간되는 신간 역시 지속적으로 업로드하고 있다. 확인 결과 서울문화사의 ‘제이노블(젬스노벨)’, ‘윙크노벨’, 학산문화사의 ‘익스트림 노벨’. ‘메이퀸 노벨’, ‘파우스트 노벨’, 대원문화사 ‘NT노벨’, ‘이슈노벨즈’, 디앤씨미디어 ‘시드노벨’, ‘L노벨’, 영상출판미디어 ‘노블엔진’, 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AK노벨’ 등 국내 출판사들이 출간한 정식 발매작 전권, 혹은 80~90%에 달하는 작품들이 불법 PDF파일로 만들어져 공유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6월 15일자로 백업된 작품만 470여 권으로, 실제 웹사이트에 저장된 작품들은 절판된 작품들까지 합쳐 수천여 권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이용자들로부터 업로드 요청을 받거나 신간소설이 발매되면 바로 업로드해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해외 출판사와 정식 계약은 체결했으나 아직 발매되지 않은 작품 역시 번역해서 제공해 왔던 것으로 확인됐다.
‘벚꽃 도서관’에 불법으로 업로드돼 있는 정식 출판 라이트노블들. 회원들에 한해 유료로 제공된다. 홈페이지 캡처.
‘벚꽃 도서관’은 이런 불법 파일을 유료로 제공하고 있어 더욱 문제다. 이 사이트는 철저한 회원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가입한 뒤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는 1만 원을 포인트로 환전해야 한다. 환전은 현금이 아닌 문화상품권을 통해서만 가능하며, 구매한 상품권의 PIN번호를 웹사이트 내 환전 게시판에 남기면 담당자가 확인한 뒤 이를 포인트로 바꿔 제공한다. 이들 운영자에 따르면 환전은 반드시 외부 업자를 통해 이뤄지며 당일 혹은 최대 1주일 정도의 기간이 소요된다. 이러한 환전에 대해 벚꽃 도서관 측은 “현존하는 모든 라이트노블을 스캔해 저장하는 것만을 목표로 하는 사이트이니만큼 원래는 무료로 운영됐으나, 이용자들이 요구하는 책을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해 이용자들로부터 조금씩 ‘후원’을 받는 것”이라 밝히고 있다.
포인트는 현금과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으며 작품들은 800포인트부터 사용해 읽을 수 있다. 이들 웹사이트에 저장된 소설들은 한 권당 최소 150~800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었다. 800원씩만 잡아도 한 권당 12만 원에서 64만 원까지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운영자는 웹사이트의 운영에 대해 “주당 400(만 원)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저작권법 위반 관련 사법처리 가능성을 비웃는 ‘벚꽃 도서관’의 공지사항.
이처럼 불법으로 월 약 1600만 원 상당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벚꽃 도서관’에 법의 철퇴가 내려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운영자는 “이 사이트는 저작권 의식을 막장으로 말아먹은 사이트”라면서도 “국내 경찰이든 법이든 우리를 잡을 수 없다”며 득의양양하고 있다. 이유는 이 웹사이트의 서버가 해외에 위치해 있기 때문. 운영자의 말이 사실이라면 ‘벚꽃 도서관’의 서버는 스위스 취리히에 있다.
이 웹사이트의 불법성을 의식한 일부 이용자들이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도 경찰에 검거된 소라넷을 보면 이곳도 안전하지 않다”고 지적했으나 운영자 측은 ”포르노로 인해 국제 공조 수사가 이뤄진 소라넷과 같냐“며 ”조금이라도 위험한 징후가 발견될 경우 모든 게시물을 취리히 서버로 이전할 것“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저작권법에 따라 불법 웹사이트에 철퇴를 내려야 할 관계기관들이 일제히 손을 놓고 있는 것도 ‘벚꽃 도서관’의 운영진으로 하여금 사법처리에 대해 코웃음을 치게 만든다. 불법복제물 신고를 맡고 있는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최근 한 네티즌이 저작권법 위반으로 ‘벚꽃 도서관’을 신고했으나 ”해외에 서버가 존재해 국내법으로 시정권고를 하기 어렵다“고 답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등 사법기관이 나서기 위해서는 출판사나 작가가 직접 고소를 해야 할 것으로 보이지만 이 역시도 해외 서버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단순히 출판사 한 곳이나 일부 작가들이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신고한다 하더라도 수사기관이 직접 움직이기에는 부족하다는 것.
‘벚꽃 도서관’ 측은 저작권을 침해당했다고 판단한 이용자의 경우, DMCA(미국의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에 따라 자신들에게 통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렇지만 또 다른 공지사항을 통해서는 ”DMCA 조항이 아무 때나 규율되고 해석되는 줄 아느냐“라는 냉소적인 글을 남기기도 했다.
해외에서는 국외 서버를 이용한 저작권 위반에 대해서도 철퇴를 내리고 있다. 저작권보호센터에 따르면 2013년 11월 중국의 무협지 <소오강호>의 애니메이션을 저작권 회사로부터 탈취한 뒤 자신들이 등록한 홈페이지에 불법으로 게재한 3명에 대해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징역 2~3년과 10만~16만 위안(한화 1800만~28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이들의 홈페이지 도메인 등록은 미국에서 이뤄졌으며, 서버는 홍콩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법은 거주하는 국가에 관계 없이 모든 한국인에 대해 대한민국의 법을 적용하는 속인주의에 해당하기 때문에 ‘벚꽃 도서관’의 운영자가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으로 밝혀질 경우 얼마든지 저작권법에 의한 처벌이 가능하다. 운영자 측은 해외 서버를 무기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을 거듭 주장하고 있으나, 최근 발생한 ‘조아라·문피아 사태’를 보면 실제로는 운영자 역시 국내 수사 착수를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조아라·문피아 사태’는 지난 6월 초 국내 최대 인터넷 소설 연재 사이트인 조아라와 문피아에서 무료로 제공되던 소설과 이미 출판된 인기 소설들을 ‘벚꽃 도서관’ 측이 불법으로 복제해 유료로 제공한 사건을 말한다. 이에 조아라와 문피아에서 활동하던 작가들이 절필을 선언하자, 사이트 측이 ‘벚꽃 도서관’에 대대적인 압박에 나섰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에 ‘벚꽃 도서관’ 운영자는 꼬리를 내리고 ”조아라·문피아에서 연재되고 있는 자료는 업로드하지 말 것“이라는 공지사항을 올렸다.
사건과 관련해 조아라 소속의 한 인터넷 소설 작가는 ”절필을 선언한 작가들 가운데 연재 종료 이후 출판하기로 출판사와 계약을 맺었는데 책이 나오기 전에 ‘벚꽃 도서관’을 통해 유료로 소설이 공유되는 바람에 큰 손해를 본 사람들도 있다“라며 ”만화나 소설 등과 관련한 국내 저작권법 위반 사례는 개인이나 소수 인원이 고소·고발하는 것보다 이처럼 손해를 본 출판사들이 단체로 행동에 옮겨야 시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