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일 프로농구 개막전인 KCC와 동부 경기서 강동희(오른쪽) 동부 감독이 경기중 작전을 알리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ck@ilyo.co.kr | ||
강동희 감독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각 팀의 차기 감독 후보로 손꼽혀 왔다. 경기를 읽는 탁월한 시야와 페이스를 조절하는 경기 운영 능력을 겸비했던 포인트가드 강동희는 지도자로서도 두각을 나타내 왔다. 농구 지식은 기본이었다. 친형처럼 선수들을 감쌌고, 주위 사람들과도 허물없이 어울렸다. 그 어디에도 ‘인간 강동희’의 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도력과 친화력을 겸비한 스타플레이어 출신 강동희는 탁월한 상품성까지 갖춘 ‘준비된 감독’이었다.
그리고 지난 시즌 종료 후, 전창진 전 동부 감독의 계약기간이 만료됐다. 이미 KT와 계약이 성사 단계라는 소문도 줄을 이었다. 그러나 강동희 감독의 동부 사령탑 선임 공식 발표는 4월까지 미뤄지고 또 미뤄졌다.
강 감독은 “동부 구단에서는 특별한 언질이 없었고 전 감독님은 KT와 계약이 거의 완료된 상태였다. 난 당연히 그 동안 모셨던 전 감독을 따라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소탈하기 그지없는 강 감독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마디다. 주위에서는 누구나 강동희를 동부의 신임 감독으로 기정사실화했지만 정작 본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전창진 감독과의 의리를 저 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가슴 한쪽을 짓누르는 부담감도 이겨내기 힘들었다. 강 감독은 “전창진 감독님의 농구 색깔을 걷어내고 강동희식 농구를 만드는 게 힘들다. 동부의 트레이드마크인 고공농구보다는 끈끈한 조직력과 빠른 스피드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팀컬러도 갖춰야 한다”라고 말한다.
언제나 정상의 자리에 군림해왔던 강동희 감독. 이제 그도 지도자로서의 심판대에 섰음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코치 강동희’를 친동생처럼 아꼈던 전창진 KT 감독은 자신의 애제자를 감독 자리에 앉히고 다른 팀으로 홀연히 떠났다. “이제 강동희도 감독 할 때가 됐다”는 배려의 차원도 작용했다. 그리고 전 감독은 ‘애제자’가 아닌 ‘적장’ 강동희에게 “나를 뛰어 넘으라”고 했다. 강동희 감독은 그 한마디를 항상 기억하고 있다. 강 감독은 “전 감독님이 팀을 떠나기 전에 자신을 이기라고 했다. 그 말씀을 가슴에 새겨놓고 있다. 코트에서는 절대 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강 감독은 올 시즌 숙명의 상대인 허재 감독과 총 여섯 번의 맞대결을 펼쳐야 한다. 아직도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형’이라 부르는 허 감독은 절친한 동생 강동희 감독에게 “지옥에 온 걸 환영한다”고 했다. 강 감독은 “허재 형이 내색은 안 하지만 감독을 맡고 나서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다. 그래도 한 번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은 허재 형을 보면서 감독이 되려면 그만큼 강해져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강동희 감독은 코치 시절 끊었던 담배를 최근 다시 피기 시작했다. “이래서 감독들한테 연봉을 많이 주나 보다”라고 힘없이 말한다. 그러나 모두 자신의 힘으로 극복해야 할 관문이라는 걸 강 감독 자신은 잘 알고 있다.
강동희 감독은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는 20여 분 동안 끊임없는 걱정을 털어놨다. “챈들러는 아직 몸 상태가 안 좋다. 전지훈련 때도 운동을 전혀 못했고, 근래 들어 조금씩 시작하고 있다”, “게리 윌킨슨이 생각보다 안정감을 못 찾고 있다. 백인 센터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용병이 한 명밖에 못 뛰니까 김주성의 이점이 거의 사라졌다”, “(은퇴해 KT 코치로 간) 손규완과 (LG로 이적한) 강대협 등 슈터진의 공백이 크다. 외곽에서 한 방을 터뜨려줄 선수가 없다” 등등.
그러나 대부분의 농구 팬들은 아직도 동부를 강팀으로 분류하고 있다. 올 시즌은 KCC와 삼성, 모비스가 3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지만 김주성이 이끄는 동부가 중위권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부는 당연히 상위권”이라는 이런 생각들은 초보 감독에게 크나큰 부담이다. 기대에 못 미치는 윌킨슨의 빈자리를 대신할 선수를 물색 중이지만 마땅한 선수가 없다. 강 감독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주성의 팀’인 동부의 가장 큰 약점이 ‘높이’가 됐다. 센터진만 어느 정도 버텨주면 6강은 충분하다. 그런데 골밑이 끝까지 말썽이다”라며 한숨을 내쉰다.
강동희 감독은 “밖에서 볼 때는 쉬워 보였다. 그런데 막상 감독이 되고 나니 준비를 하면서 부족한 점만 계속 눈에 띈다. 모든 게 시행착오의 연속이고 당황스럽기만 하다. 다른 팀은 강해 보이고 내 팀의 약점은 크게만 보인다”고 말했다. 언제나 자신감 넘쳤던 ‘코트의 마법사’ 강동희로서는 의외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내 강동희 감독은 힘을 냈다. 강 감독은 “변화된 팀 컬러로 좋은 성적을 내도록 노력하겠다. 비시즌 동안 열심히 훈련했기 때문에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일단 시즌 초반만 잘 버텨낸다면 6강 진입 목표를 이룰 수 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감독 강동희가 빚어내는 ‘강동희식 농구’가 서서히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허재원 한국일보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