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이 편견의 벽에 갇힌 장애인이 아니라 자기 진실을 감당해야 하는 한 인간으로 나오는 드라마가 반가웠다. 내 왼쪽 무릎에도 7cm 정도의 칼자국이 있다. 2013년이었다. 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나 무릎 뼈가 세 동강이 난 것이다. 철심을 박고 와이어를 감고 깁스를 했다. 어디를 가나 시선을 의식해야 했던 그 시간들이 떠오르면 나는 그 때 참 많이 수고했다고 다쳤던 무릎을 쓰다듬어 준다. 그리고 나면 세로로 길게 무릎에 새겨져 있는 흉터가 부끄럽지 않고 장하기까지 하다.
휠체어를 타고, 그 다음엔 목발을 짚고 그렇게 장애인으로 산 몇 달의 시간 이후, 비로소 장애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장애인들도 장애인이기 이전에 인간이고, 당연히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삶을 누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나 부끄러워 할 일은 아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은 단순히 불편한 것을 넘어 종종 부끄러운 일이 된다.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고 장애인 가족이 될 수 있는데.
발달장애 아이를 가진 엄마가 TV에 나와 호소하는 것을 들었다. 아이가 학교를 졸업하니 갈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사회에서 받아주는 곳이 없으니 갈 데가 없고, 집밖으로 나가는 일은 아이에게도 사회에게도 위험하니 산책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이래저래 받아주는 곳 없는 아이는 집에서 죽는 날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하소연을 들으며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 아이들에겐 감옥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발달장애 아이를 둔 엄마들이 시청 앞 광장에서 40일 넘게 농성을 했다. 발달장애인들의 생존권을 보장해 달라고. 절박했던 부모들과 박원순 시장의 극적인 소통이 훈훈해 화제가 되고 있다. 엄마들이 “시청 후문에 농성장을 꾸리고 주저앉은 지 사십여 일을 보내는 동안, 어쩌면 시장님의 하루하루가 더 고달프셨을지도 모르겠다, 죄송했다”며 “돌봄이 없으면 금세 엉망이 되어버리는 아이들을 보노라면 자꾸만 마음이 급해져서 ‘내가 죽으면 어떡하지?’라며 아이들이 끔찍한 상황에 처해지는 상상을 하게 된다”고 솔직한 마음을 실어 보낸 것이었다.
마음은 마음으로 전해지는 법이다. “세상의 벽과 맞서 싸우는 어머니들의 절규 앞에서 같이 우는 것 밖에 할 수 없는 제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이 더 컸다”는 박 시장은 “세상과 싸울 어머니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아려온다”며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는 법이니 서로 울타리가 되는 서울을 꿈꿔보자고 했단다.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함께 살 수 있다면, 서로 울타리가 되어줄 마음만 있다면, 장애인으로 사는 불편도 그저 사는 일이 되지 않을까.
이주향 수원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