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커피의 도시 삔우린의 아름다운 정원. 삔우린은 해발 1000m가 넘는 고원지대여서 기후도 선선하다.
오랜만에 삔우린으로 갑니다. 커피농장에 도전하는 한국인을 만나기 위해섭니다. 10시간 넘게 버스를 타야 하므로 배낭에는 책 한 권이 있습니다. 데브라 맨코프가 지은 <모네가 사랑한 정원>입니다. 한국에서 가져온 책입니다. 이 도시에도 아름다운 정원이 있습니다. 국립 깐도지 정원(National Kandawgyi Garden)입니다. 나무와 꽃, 호수와 숲이 540만 평에 펼쳐져 있습니다. 1915년 식물학자인 커프와 숲 연구를 하는 알렉스 로저가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나라 사람들은 꽃을 아주 좋아합니다. 길거리에서도 향기 좋은 재스민 꽃을 팔고 불교사원에서는 나라꽃인 파타욱을 한아름 놓고 불공을 드립니다. 이 나라를 이끄는 아웅산 수지도 머리에 꽃을 꽂고, 군중들에게 꽃을 던지며 인사를 합니다. 양곤에 있는 북한식당에서는 연회가 열리면 아예 꽃을 파는 것이 일상화되었습니다. 프리지아, 백합, 글러디올러스, 제라늄, 희고 붉은 장미, 난과 여러 색깔의 국화, 한 나무에서 여러 색깔의 꽃을 피워내는 부겐베리아까지. 여기선 쉽게 만나는 꽃들입니다. 시인들도 꽃을 노래합니다. 현 정부의 틴쩌 대통령의 부친은 미얀마의 유명시인 밍뚜웅(Minn Thu Won)입니다. 그의 시 ‘Lost Love’입니다.
들에 나가 일을 마치고/돌아가는 길/ 키예푸를 머리에 꽂고 싶다던/ 아내의 말이 생각나네/ 오늘 아침 그녀를 보았네/ 우아하고 가장 아름다운 꽃/ 그녀의 머리에 빛나는/ 장미꽃이 가장 아름다웠네
하나의 나무에서 여러 색깔의 꽃을 피워내는 부겐베리아. 남미가 원산지지만 양곤의 주택가에서도 볼 수 있다.
꽃의 도시 삔우린에서 ‘모네의 정원’을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인상파 화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는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파리 근교 지베르니 정원에 머물며 수련을 그리는 데 바쳤습니다. 나중엔 시력이 약해지다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마지막 작품 ‘수련’ 대장식화 패널 22점은 지베르니 작업실에서 파리 오랑주리 미술관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는 1883년 지베르니로 이사를 하며 지금도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정원을 가꾸는 데 평생을 보냈습니다. 제가 보기엔 화가이지만 뛰어난 정원사입니다. 정원에 대한 그윽한 사랑이 그림에 담겨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는 인생의 마지막 29년을 지베르니 정원에서 수련을 그리는 데 바쳤다.
모네는 평소 “내가 화가가 된 것은 꽃 덕분인 것 같다”고 말했다 합니다. 그 말처럼 그는 꽃과 정원을 주요한 모티브로 삼았습니다. 화가가 된 후 초반 25년간 그린 800점 중 꽃과 정원의 그림이 100점이 넘었습니다. 지베르니에 정착한 후반 25년 동안에는 꽃과 정원의 그림이 500점이 넘는다고 합니다. 꽃을 주제로 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며 꽃은 모네 고유의 표현방식이 되었습니다. 그가 그린 꽃들은 너무 많습니다. 모네가 가장 좋아하던 꽃 아이리스부터 붉은 줄장미, 백합, 국화, 달리아, 해바라기, 등나무꽃, 라벤더 등. 최고의 걸작은 ‘수련’입니다. 죽기 직전까지 평생 매달린 꽃이기에 더욱 감동이 옵니다. 당시 한 기자는 ‘베토벤이 귀머거리나 다름없을 때 작곡했듯이 그도 장님에 가까운 상태로 수련을 그렸다’고 합니다. 빛을 포착하는 데 뛰어난 그에겐 아이러니하고 슬픈 기록입니다.
화가이자 정원사였던 클로드 모네의 초상. 르누아르의 그림이다.
모네는 1926년, 86세 나이로 죽기 전에 가족들에게 꽃장식이 없는 소박한 장례를 치러달라고 부탁했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 정원의 꽃을 꺾는 것을 극히 싫어했습니다. 모네의 유언에 따라 그의 관은 밀풀 다발로만 장식을 했고, 정원에서 모네와 함께 일하던 일꾼들이 운구를 했습니다.
모네가 살았던 지베르니 정원. 그의 긴 노후가 담겨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웃이 있었습니다. 삔우린의 숲속에도 먼 고향을 떠나 이곳에서 살던 영국인들의 저택과 아름다운 정원들이 있습니다. 이곳에서 노후를 보내고 죽은 영국인도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노후가 찾아옵니다. 하지만 어디서 살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살든 자신이 서있는 땅을 소중하게 가꾸며 이웃과 함께 있는 것. 그 장소가 바로 우리가 살아야 할 ‘노후의 아름다운 정원’이 아닐까요?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