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72명이 입후보한 AKB 총선거는 후보자들마다 선거용 포스터를 따로 제작한다.
AKB48 총선거는 요컨대, 10대에서 20대 초반 소녀들의 인기가 실시간 수치화되는 것이다. 결과에 따라 이름이 호명되는 순간, 기뻐서 눈물을 흘리는 멤버도 부지기수다. 팬 또한 같이 가슴을 졸이며 공감한다. 특히 열렬히 응원하는 멤버가 있다면 그 긴장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로 인해 시청률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지난 6월 18일 방영된 ‘AKB48 총선거 2016’ 생방송은 평균 17.6%를 기록했고 순간 최고 시청률은 38%까지 치솟았다.
흔히 이러한 인기투표는 ‘성 상품화’ 논란을 낳기 쉬운데, 일본은 비교적 관대한 편이다. 여기엔 유독 ‘랭킹’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특성도 한몫 차지한다. 여성에 한해서가 아니라 매년 ‘안기고 싶은 남자’ ‘좋아하는 남자’와 같은 순위도 유력 잡지가 설문조사를 통해 발표하고 있다. 대중이 인정하는 신뢰도와 권위도 꽤 높은 편이라 순위 결과는 여러 곳에서 회자된다.
AKB48 총선거가 시작된 계기는 팬들의 참여 독려와 기발한 마케팅의 조합에 의해서였다. 데뷔 초 AKB48은 인원이 많아 프로듀서가 음반마다 선발 멤버를 뽑고, 센터를 지정했다. 그러나 팬들 사이에서 “왜 항상 같은 멤버가 센터를 맡는가”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고, 결국 인기투표로 선발 멤버와 센터를 뽑게 된 것이다. 이처럼 팬투표로 아이돌 멤버의 인기를 명확히 서열화하는 것은 AKB48이 처음이다.
총선거 방식은 팬클럽에 가입하거나 선거 직전 발매되는 싱글 앨범을 구매한 팬들의 투표로 이뤄진다. 득표수가 가장 많은 순서대로 16명을 선출하며, 상위 7위까지는 ‘여신’이라는 호칭이 별도로 붙는다. 입후보는 AKB48 정규멤버를 포함해 연습생, 자매그룹 멤버들까지도 할 수 있는데, 올해는 무려 272명이 출사표를 던졌다.
입후보자수가 많은 만큼 경쟁은 치열하다. 선거운동 기간이 따로 있는 데다, 후보자들은 선거용 포스터를 따로 제작해 지정된 장소에 부착한다. 또 자신을 어필하는 연설을 하는 등 그야말로 실제 국회의원 선거를 방불케 하는 격전을 치른다.
제8회 AKB48 총선거에서는 사시하라 리노가 득표수 24만 3011표를 획득, 최초로 2년 연속 1위를 달성했다. 흥미로운 점은 득표수다. 거꾸로 읽으면 일본어로 “1위를 삿시(사시하라 애칭)에게”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팬들의 깜짝 이벤트인지의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터넷에서는 “기이한 일이다” “무서울 지경”이라는 놀라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AKB48 총선거 공식 가이드북.
그렇다면 실제로 팬들은 총선거에 얼마나 썼을까. <버즈피드>가 총선거 회장을 찾은 팬 100명에게 앙케트를 실시했다. 그 결과 ‘10만~50만 원 미만’이 29명으로 가장 많았고, ‘50만~100만 원 미만’이 18명, ‘1만~5만 원 미만’이 15명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500만 원 이상을 썼다”고 밝힌 팬도 5명이나 된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AKB48은 남성 팬이 절대다수로, 특히 구매력 있는 30~40대 ‘삼촌 팬’들에게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이번 AKB48 총선거가 가져온 경제적 파급효과도 주목할 만하다. <일간겐다이>에 따르면 “낮에 열린 콘서트와 저녁에 실시된 총선 개표행사를 보기 위해 약 5만 명 이상이 니가타시를 방문했다”고 한다. 그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숙박을 했으며, 경제 파급효과는 우리 돈으로 15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니가타 시내의 호텔마다 만원사례를 이뤘고, 음식점들은 영업시간을 연장할 정도로 특수를 누렸다. 또 택시들은 기차역과 회장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느라 바빴다.
평소에는 한산했던 거리가 총선 며칠 전부터 도쿄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서 온 손님들로 붐볐다. AKB48 총선 개표행사가 목적이긴 하나 “겸사겸사 관광도 하고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이에 <일간겐다이>는 “아이돌 문화가 잘 정착하면 지방경제를 활성화시킨다는 걸 보여주는 성공적인 사례”라고 평가했다.
다만 듣기 좋은 노래도 한두 번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콘텐츠라도 시간이 지나면 하락세에 접어든다. 올해로 데뷔 11년 차. AKB48 총선거도 해를 거듭하면서 관심을 잃어가고 있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는 줄곧 그룹을 이끌어 온 다카하시 미나미가 졸업하고, 핵심 멤버가 차례차례 졸업을 발표하거나 총선 출마를 미루기도 했다. 위기라면 위기라고도 할 수 있다.
선거 개표방송 캡처. 총선 개표행사가 열린 니가타시는 150억 원에 달하는 경제 파급효과를 얻었다.
공식 홈페이지에 올라온 최종 득표수 1~4위(왼쪽부터).
11년 전 AKB48은 이른바 ‘지하 아이돌’에 가까운 존재였다. 도쿄 아키하바라에 있는 전용극장을 거점으로 ‘만나러 갈 수 있는 아이돌’을 콘셉트로 했다. 평범한 소녀들이 꾸준한 노력으로 발전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것이 취지였기 때문에 여느 걸그룹처럼 외모가 특별히 뛰어나지도 않았다. 이렇듯 ‘친근한’ AKB48의 인기를 업그레이드시킨 것이 바로 총선거다. ‘팬들과의 소통을 기반으로 커나가는 아이돌’이란 마케팅이 기막히게 적중한 덕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멤버를 당선시키기 위해 CD를 수백 장, 수천 장씩 사재기하는 팬들도 적지 않아 총선의 의미가 점점 변질되어 가는 중이다. 일반 팬의 소중한 1표 행사가 이제 큰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된 것이다. 따라서 “8년 동안 진행되어온 AKB48 총선거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