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국 | ||
오즈메이커들은 시즌 시작 전부터 선수와 구단에 대한 모든 정보와 데이터를 모으기 시작한다. 이전 성적은 기본이고 가정환경부터 내부의 상황, 성격까지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알아낸다. 스스로를 국내 최고의 스포츠 ‘오타쿠’라 부르는 이유다.
스포츠계에서는 그야말로 ‘국정원’을 방불케 하는 정보력을 자랑하는 오즈메이커들이지만 매 시즌 각본 없는 드라마의 주인공이 누가 될 것인지 100% 예측하기란 한계가 있다.
올 한 해 역시 오즈메이커들의 예상을 뛰어넘은 새로운 스타플레이어가 등장해 승패를 예측할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올 시즌 최고의 이변을 일으키며 오즈메이커들의 예측을 휴지조각으로 만든 선수는 누굴까.
<올 시즌 최고의 복덩이는?>
“이렇게 선전할 줄이야. 그야말로 맹수의 부활이다!”라고 입을 모으게 한 K리그의 주인공은 단연 이동국(30ㆍ전북현대)이다. 작년 시즌 그는 잉글랜드에서 성남으로 돌아와 13경기에 출전, 단 2골을 성공시키는 저조한 성적으로 올 시즌에 큰 기대를 보내기 힘들었다.
그러나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의 부름을 받고 이적한 뒤 올 시즌 27경기에서 20골을 성공시키며 득점왕으로 부활했다. 그가 일으킨 돌풍은 개인성적뿐만 아니라 소속팀 전북 현대가 창단한 이래 최초 통합우승을 하는 데 일조했다. 감독과 선수와의 인간적인 신뢰와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는 데이터로 분석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었다.
김형일(25ㆍ포항스틸러스) 역시 단순히 좋은 체격조건과 터프한 수비에만 그쳤던 기존 평가에서 올해 경기 조율까지 가능한 ‘무결점 수비수’로 업그레이드되는 모습을 보여줬다. 공중볼 처리, 공격 세트플레이에 능한 파워풀한 플레이로 팀의 전력을 단숨에 끌어 올린 그의 활약은 오즈메이커들의 노트에 차기 ‘국가대표 선발은 떼어논 당상’이라고 메모하게 만들었다.
야구에서는 신명철(31ㆍ삼성라이온스)이 ‘반전왕’으로 박수를 받는다. 작년 시즌에는 역대 프로야구 기록 상 250타석 이상 기록한 타자 중 4번째로 나쁜 OPS(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수치)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20-20’을 기록한 사상 첫 2루수로 환골탈태했고 삼성에서 강봉규(31ㆍ삼성라이온스)와 함께 억대 연봉 대열에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이외에도 이용찬(20ㆍ두산 베어스) 역시 강팀의 마무리 투수로서 용의 꼬리 역할을 훌륭히 소화했다는 평가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농구의 관전 포인트는 ‘문코비의 돌풍’. 애초 전태풍(29ㆍ전주KCC)과 이승준(31ㆍ서울삼성)에 가려 별반 주목을 받지 못했던 문태영(31ㆍ창원LG)이 한 게임 41점을 따내는 등 득점력을 과시하며 “문태영을 막으면 이기고, 못 막으면 진다”는 스포츠 토토 셈법을 만들어냈다고 오즈메이커들은 말한다.
<욱! 욱! 다혈질 왕은 누구?>
선수의 성격도 승패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변수다. 경기 중 ‘욱~’하는 성격을 참지 못한다면 파울과 잦은 실책을 남발하게 되고 팀의 호흡 역시 깨지기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다혈질의 성격을 가진 선수들은 오즈메이커들 사이에서 예측불허의 ‘지뢰’로 여겨진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농구 최고의 다혈질로는 마퀸 챈들러(27ㆍ원주동부)가 뽑혔다. 오즈메이커들은 입을 모아 올 시즌 원주동부의 순위를 올렸다 내렸다 할 수 있는 ‘시한폭탄’이라고 말한다. 득점에 대한 과도한 욕심으로 실책을 남발해 강동희 감독으로부터 “어디로 튈지 몰라 길들이기 힘들다”는 말을 들을 정도. 그렇지만 동부의 해결사라 불리며 빠른 스피드로 무난한 플레이를 펼칠 때면 팀의 순위를 한 단계 올려놓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강 감독의 챈들러 길들이기가 성공궤도로 진입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것도 프로농구 배당률을 결정짓는 변수로 작용한다.
국내 선수 중에는 서장훈(35ㆍ인천전자랜드)이 다혈질 왕으로 뽑혔다. 코트 위에서 득점을 향한 집념은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는다. 지난 시즌 하승진(24ㆍ전주KCC)의 뺨을 때린 사건이나 같은 팀 가드에게 패스문제로 돌출 행동을 일으킨 부분은 팀 관계자들을 긴장시키게 한다.
축구에선 라돈치치(26ㆍ성남일화)가 신태용 감독의 속을 시커멓게 타게 하는 ‘시한폭탄’으로 꼽힌다. 올 시즌 내내 신 감독으로부터 “뺄까 싶으면 골을 넣고, 칭찬해줄까 싶으면 경기를 망친다”는 지적을 받으며 들쭉날쭉한 모습을 보였다.
변덕스런 플레이뿐 아니라 가감 없는 폭탄발언도 그 폭발력이 상당했다. K리그 챔피언십 인천 전을 앞두고 했던 TV 인터뷰 중 전 소속팀 인천을 향해 던진 한마디 “인천? 몰라요~ 아 야구팀, SK”라는 용감한(?) 발언으로 단숨에 인천 선수와 팬들 사이에서 ‘패륜치치’라는 악명을 얻으며 활화산 같은 분노가 잔디밭에 쏟아지게 만들었다.
▲ 이청용 | ||
옐로카드로만 본다면 이번 시즌 13장을 받은 김한윤(35ㆍFC서울)이 가장 거친 축구를 선보였다.
프로야구에서는 경기장이 아닌 사생활에 있어 ‘욱~’하는 성격을 컨트롤하기 힘든 선수들이 사건 사고를 일으켰다.
올 시즌 감독의 가슴을 치게 만든 주인공은 서승화(30ㆍLG트윈스). 경기장에서 상대선수와 야구가 아닌 격투기를 벌인 전과가 있는 서승화는 ‘악동’의 불명예를 안고 올 시즌에 임했지만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김재박 감독도 차츰 그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던 중 2군 선수인 이병규(26ㆍLG트윈스)의 머리를 야구 방망이로 때려 팀의 사기를 꺾었다는 평가다. 오즈메이커들은 “가뜩이나 (팀 성적이 저조해) 머리 아픈 김재박 감독에게 마지막 한 방을 먹였다”고 회고한다.
안치용(30ㆍLG트윈스)은 올 시즌 주전경쟁으로 급한 마음에 무리한 주루 플레이를 연발했다가 빈축을 샀다.
복귀 한 달 만에 새벽까지 술집에 있다가 구설수에 올라 결국 유니폼을 벗은 정수근(32ㆍ전 롯데) 역시 음주관련 사고로 팀 분위기에 악영향을 미쳤다.
<최고의 ‘삑사리’는?>
‘도대체 왜?’라는 탄식을 자아내게 하는 순간의 주인공들도 이번 시즌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들은 치열한 접전이 오고가는 경기 중 한 번의 실수로 팀을 나락으로 떨어뜨리거나 감독의 미움을 받는다.
특히나 프로농구 코트 위는 작은 실수도 큰 파장을 일으킨다. 현재까지 최고의 ‘삑사리’ 장면을 선사하는 선수는 전태풍. 그를 지켜보는 팬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다른 선수가 돼 버린다”고 말한다. 클라이맥스는 11월 12일 벌어진 울산모비스와 전주KCC의 대결. 전태풍은 3점차로 뒤진 종료 2.7초전 드리블로 상대 진영을 파고들었지만, 정작 3점 슛을 노려야 할 마지막 찬스에서 골밑에 있는 하승진에게 패스하는 실책성 플레이를 저질렀다. 결국 슛도 못 쏴보고 최후의 공격권을 날려버렸다. 이렇듯 매 경기 잘하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 ‘삑사리’를 내는 통에 전주KCC에 베팅한 스포츠 토토 고객들은 ‘내 돈~’을 외치고 오즈메이커들은 이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전태풍이 어느 순간 다른 선수가 되진 않을지 언제나 긴장한다.
<구설왕은 누구?>
올 시즌 스포츠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빈번히 회자됐던 선수는 누구일까. 높은 몸값에 비해 제 가치를 다하지 못했다고 평가받는 방성윤(27ㆍ서울SK)이 1위였다. “과연 방성윤이 몸값만큼의 활약을 한 선수인가?”를 두고 이런저런 설전이 오갔던 게 사실.
SES의 멤버 슈와의 열애사실이 밝혀진 농구선수 임효성(28ㆍ인천전자랜드) 역시 최대 관심사로 떠오른다. 여자친구의 유명세 덕에 프로 경력 5년 만에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야구에서는 조인성(34ㆍLG트윈스)과 심수창(28ㆍLG트윈스)의 마운드 설전이 만화가들과 네티즌들에게 무궁무진한 영감(?)을 선사했다. 오즈메이커들은 “이를 주제로 엄청난 카툰과 짤방(영상을 캡처해서 본인의 의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 패러디물)이 유행했다”고 전한다.
축구에서는 이천수(28ㆍ알 나스르)가 오즈메이커들의 몰표를 받았다. 잊을 만하면 공개되는 선수로서의 잘못된 처신과 자세는 올해도 비난의 화살을 피해가기 힘들었다는 평가다. ‘과연 다음 이천수의 여인은 누구일까?’하는 예측도 술자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농담의 주제였다고.
오즈메이커란
배당률을 정하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국내에는 7명이 활동 중이다.
체육진흥투표권 수탁사업자인 스포츠토토는 지난 2004년 고정배당률 게임의 출시를 앞두고 이들을 채용했다.
주된 업무는 각 팀의 전력을 분석해 게임 전 미리 배당률을 정해 놓는 것. 가령 안양 KT&G와 원주 동부의 경기가 있을 경우 안양 쪽의 배당을 2.46배로 원주 동부를 1.30배로 미리 고정시켜 두고 판매한다. 배당률은 다양한 변수로 팀의 전력을 분석한 후 매겨지는 수치. 오즈메이커들은 스포츠팬의 구매를 유도하면서 회사가 적정수익을 올릴 수 있는 최선의 배당률을 매 경기 도출해낸다. 이런 과정은 스포츠에 대한 해박한 지식 이상으로 숫자와 데이터 통계 분석력이 필요해 그들의 전공 역시 공학, 경제학, 경영학이다. 그러나 이들은 스포츠 전문지에서 2년 동안 야구기자로 활동하거나 모 방송에서 유럽축구해설가로 일하다가 이직한 스포츠 분야의 경력자들이다.
오즈메이커의 애환
악플에 협박에 '울고 싶어라'
같은 건물을 쓰는 사원들도 절대 출입이 불가능해 다른 부서에선 몇 년 동안 이들의 얼굴조차 모른다고.
휴일 없이 모든 스포츠를 관람해야 하는 직업 특성은 가족을 본의 아니게 소외시키기도 하지만 꼭 봐야 할 경기가 있으면 특별휴가를 자유롭게 허락해 세계 어느 곳도 가볼 수 있는 것은 이 직업의 장점이라는 게 오즈메이커들의 전언이다.
손지원 인턴기자 snorkle@par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