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신형 말리부가 에어백 논란에 휩싸였다.
그간 현대차는 내수용보다 수출용을 더 튼튼하게 만든다는 것으로 알려지며 국내 소비자들의 불만을 샀다. 수출용은 안전하고 내수용은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심지어 ‘흉기차’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현대차는 자사 홈페이지에 블로그를 개설하고 전문가들의 시승기와 제품분석 글을 올리면서 논란에 꾸준히 대응하고 있다.
이제 ‘수출용의 철판이 내수용보다 더 두껍다’는 비난은 거의 없다. 이는 조금만 생각해도 수긍이 가는 부분이다. 수출용과 내수용 철판을 따로 만들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지 못해 제조·관리 비용이 높아진다. 무엇보다 특정 무게를 기준으로 파워트레인·조향장치·서스펜션·브레이크 등을 최적화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데, 무게가 다른 제품이 있다면 그 일을 한 번 더 해야 하므로 비효율적이다. 조금이라도 단가를 낮추려는 메이커 입장에선 딱히 매력적이지 않은 일이다.
또 현대차는 2013년 말 출시된 제네시스를 시작으로 쏘나타·투싼·아반떼 등 최근 출시된 차량에는 초고장력 강판 51% 이상을 보디에 적용하고 있다. 이후 ‘철판’ 얘기는 쑥 들어갔다.
철판이 사라진 무대를 채운 것은 에어백이다. 현대차가 미국에선 어드밴스드 에어백(3세대)을 장착하고, 한국에선 디파워드 에어백(2세대)을 장착했으므로 한국 소비자들을 우롱한다고 본 것이다. 여기서 잠깐, 에어백의 세대별 특징을 알아보자.
미국 NHTSA 홈페이지는 ‘자동차의 헌법’으로 통한다.
# 미국, 2006년 3세대 에어백 의무화
1~3세대 구분은 미국 NHTSA(National Highway Traffic Safety Adminstration: 미국도로교통안전국)가 운영하는 세이퍼카 홈페이지(www.safercar.gov)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단일 국가로는 최대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서 자동차 안전의 기준을 제시하는 이 홈페이지는 ‘자동차의 헌법’이라고 불릴 만하다. 이 ‘헌법’에서는 에어백을 3세대로 구분하고 있다.
1세대 에어백은 충격을 감지하면 폭발하는 단순한 방식이다. 2세대 에어백은 1세대에 비해 팽창압력을 20~30% 줄인 디파워드(depowered) 에어백이다. 시속 300㎞가 넘는 속도로 팽창하는 에어백이 팽팽하게 부풀면 순간적으로 돌보다 단단해질 수 있다. NHTSA에 따르면, 디파워드 에어백이 아닌 경우 아기 또는 어린이에게 심각한 상해를 일으킬 수 있다.
에어백이 시판된 차량에 도입된 것은 1987년부터지만 운전석 및 조수석 에어백이 미국에서 의무화된 것은 1998년(세대불문)으로 채 20년이 되지 않는다.
3세대는 ‘어드밴스드 에어백’으로 불리는 것으로, 탑승자의 체중 등 여러 상황을 고려해 팽창 여부와 압력을 조절한다. 몸무게 100㎏인 남자와 50㎏인 여자인 경우 에어백의 팽창 압력이 달라야 한다는 점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NHTSA는 어드밴스드 에어백이 △탑승자의 키와 몸무게 △안전벨트 착용 여부 △벨트 장착 지점과 에어백의 거리(시트 위치 조절 시) △충돌 강도에 따라 적절하게 반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NHTSA에 따르면 3세대 어드밴스드 에어백은 2004년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2006년 9월 이후 출시된 2007년식 모델부터 의무장착(standard equipment)됐다. 따라서 국내 메이커들도 미국 수출용에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장착해야만 했다. 당시는 어드밴스드 에어백이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가격이 비쌌을 것이므로, 국내용으로는 2세대 디파워드 에어백을 장착한 것으로 짐작된다.
인터넷에서 국내 소비자를 차별한다는 얘기가 불붙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철판’ 이야기는 확인된 것이 없으므로 ‘설’로만 존재했지만, 에어백은 확실한 팩트가 있기 때문에 타깃이 되기에 적당했다.
안전에 취약하다는 논란에 시달린 탓인지 현대차는 2013년 이후 안전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앞서 말한 대로 초고장력 강판을 적용함과 동시에 3세대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내수용에도 수출용과 동일하게 적용한 것이다.
현대차 홈페이지에서 전 차종(승용차)을 검색해본 결과, 2013년 말 제네시스 출시 이후 내놓은 차들은 모두 3세대 어드밴스드 에어백을 장착하고 있다. 현재 판매 중인 제네시스·쏘나타·투싼·아반떼·싼타페·아이오닉 등이다. 그 이전에 개발된 차들은 아쉽게도 2세대 디파워드 에어백을 장착하고 있다. 심지어 제네시스급 고급차를 표방한 아슬란조차 2세대 디파워드 에어백이 장착됐다.
특이한 것은 2012년 출시된 싼타페에만 예외적으로 3세대 어드밴스드 에어백이 장착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2016년형이 미국 IIHS(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의 전면 오버랩 충돌 테스트에서 4단계 중 3등급인 ‘M(Marginal)’을 받았기 때문이다. 제네시스·쏘나타가 1등급인 ‘G(Good)’을 받은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였다. 최근 IIHS 홈페이지에서 다시 싼타페의 등급을 확인한 결과, 안전을 보강한 2017년형 싼타페는 동일한 테스트에서 G등급(1등급)을 받았다. 동일한 모델이지만 2016년형과 2017년형은 전혀 다른 차인 셈이다.
# 소비자는 과학이 아니라 태도를 본다
한편 쉐보레 말리부의 에어백 논란에 대해 한국GM 측은 “에어백 숫자에 주목해달라”고 해명했다. 전 세대 말리부에 6개의 에어백이 장착되었으나 신형에는 8개가 달려 있다. “기본적인 안전 성능이 골고루 뒷받침되도록 하면서 가격과 규제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결과 최적화된 디파워드 에어백을 채용한 것으로 안전상의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한국GM의 말처럼 에어백이 2세대냐 3세대냐보다 뒷좌석에 사이드 에어백을 장착하는 것이 사고 시 상해를 줄이는 데 더 큰 기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은 엔지니어가 아니다. 감성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현대차가 7년 넘게 시달린 것도 과학적인 근거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감성을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말리부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것과 북미에서 판매되는 차량의 에어백 종류와 개수가 달라 논란을 키웠다. 북미에서 판매되는 말리부에는 4세대 어드밴스드(advanced) 에어백이 10개 장착돼 있다.
뿐만 아니라 신형 말리부는 아이신 8단 변속기가 장착된 미국형과 달리 국내산 6단 자동변속기(일명 ‘보령미션’-보령 GM 공장에서 생산된 데 기인함)를 사용하는데, 이에 대해서도 소비자들의 불만이 있었다. 한국GM은 ‘국내 최적화’, ‘성능상의 큰 차이 없음’을 어필했지만 소비자들은 실망하는 눈치다.
아직 국내에는 2세대와 3세대 에어백에 대한 규정은 없다. 2014년 8월 이후 출시된 택시에 조수석 에어백을 의무화했다. 현대차 쏘나타(LF) 택시 상품설명서를 보니 2세대 디파워드 에어백이다. 택시라서 에어백이 있다는 것만이라도 감지덕지해야 할까. 현재 조수석 에어백이 없는 택시들이 더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
우종국 자동차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