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전자상가에서는 ‘학생작품’이라는 문구가 적힌 가게를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 학생작품은 졸업작품 대행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주로 기계공학과, 전자공학과 학생들이 많이 찾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학과들은 졸업작품으로 기계 혹은 전자기기를 만드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학부생들은 졸업작품을 위해 들이는 시간이 너무 많다는 불평이다. 그렇지 않아도 취업 준비로 바쁜데 졸업작품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다는 것. 이들이 선택하는 게 바로 졸업작품 대행이다.
졸업작품 대행은 원칙적으로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불법이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졸업작품을 대신 만들어주며 5200만 원의 수익을 올린 A 씨(24)가 붙잡혔다. 그러나 교수 입장에서 대행 여부를 판별하긴 어렵다. 또한 업체에서 완제품을 만들어주지 않고 일부만 만들었다면 대행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지난 6월 23일 직접 상가를 방문해서 의뢰해봤다. 한 가게 업주는 기자를 보자마자 “졸업작품 때문에 왔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냥 말만 한다고 만들어 주는 건 아니고 설계도를 만들어오면 맞춤제작 해준다”며 “어떤 학생들은 한 곳에서 만들지 않고 여러 업체를 돌아다니면서 만든다. 예를 들어 모터는 모터 전문 가게에 의뢰하고 센서는 센서 전문 가게에 의뢰하고 제품 인테리어는 그곳 전문에 맡기면 완벽한 작품이 나온다”고 말했다. 법적 위험성이 없냐고 물어보자 “이런 장사 수십 년 했는데 작품이 법적 문제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밝혔다.
세운전자상가에 위치한 졸업작품 대행업체들. 학생작품이라는 문구로 홍보하고 있다.
대행업체에 맡기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하며 대행 사실을 들키면 학교 내 징계를 각오해야 한다. 그럼에도 대행을 택하는 학생들은 시간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전자공학과에 재학 중인 손 아무개 씨(25)는 “작품마다 다르지만 졸업작품은 최소 몇 달을 잡고 준비해야 한다. 또한 하나의 기술로 작품을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기술도 연동해서 만들어야 한다. 연동할 때마다 다른 지식도 계속 습득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공부할 시간도 필요하다. 대행업체에 맡기면 이 모든 게 해결된다. 그래서 돈이 좀 들더라도 대행업체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글로벌미디어학부 출신인 이 아무개 씨(27) 역시 “내가 졸업할 당시에도 대행업체에 의뢰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어떤 작품을 만들지에 대한 아이디어를 의뢰했다. 나 역시 아이디어 생각에만 두 달이 걸렸다. 또 어떻게 보면 경제적으로 쌀 수도 있다. 학부생들은 시행착오가 많기 때문에 재료비에 많은 돈을 쓴다. 그러나 대행업체는 전문가들이라 그럴 일은 없다”고 밝혔다.
온라인에서도 졸업작품 대행업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앞서의 졸업작품 대행자 A 씨를 검거하면서 경찰 관계자는 언론에 “같은 수법의 각종 대행 사이트를 검색해 방송통신위원회에 접속 차단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포털 검색 사이트에 ‘졸업작품 대행’이라고 검색하면 수많은 대행 사이트를 찾을 수 있고 접속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 온라인 대행업체에 연락해서 작품을 의뢰했다. 전화를 받은 업주는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항의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만들고 싶은 작품을 확실하게 묘사하라. 묘사하기 힘들면 설계도를 만들어서 보내달라”며 “작품은 30만 원에 해주겠다. 작품에 결함이 있으면 환불은 안 되지만 AS는 가능하다”고 전했다. 기자가 의뢰한 작품의 부품 값은 10만 원 내외다. 또한 의뢰한 작품에 필요한 센서와 모터를 하나하나 설명해주며 다른 작품에 대한 판촉까지 했다.
온라인 졸업작품 대행업체 소개글. 전북지방경찰청은 접속 차단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했지만 접속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업체가 아닌 개인끼리 졸업작품을 사고팔기도 한다. 졸업작품을 판매한다는 사람에게 연락을 취하자 그는 “내가 졸업할 당시 만들었던 작품인데 이제 쓸 일이 없으니 판매한다”며 “작품뿐 아니라 설계 과정을 정리한 ppt와 영상자료까지 주겠다. 교수에게 같이 제출하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온라인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판매되고 있는 졸업작품들. 작품뿐 아니라 ppt등의 자료도 같이 판매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교수들은 대행을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에 나서고 있다. 김동성 숭실대학교 전자정보공학부 교수는 “우리 학부는 졸업작품 제작기간이 약 1년이다. 이 기간 동안 매주 1회씩 교수와 미팅을 하면서 진행한다”며 “물론 1년간 매주 대행을 진행한다면 가능은 하겠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종선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역시 “우리 학부에서는 졸업작품 대행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라며 “각 교수가 2~4명의 학생의 졸업작품을 지도한다. 한 학기 동안 교수가 매주 학생들과 만나 학생들의 졸업작품 설계 방향과 진행 상황을 살핀다. 매주 교수의 설계과정지도, 학생들의 관심방향, 진도 상황이 반영돼 학생 고유의 졸업작품이 결정되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이밖에 인천대학교 전자공학과는 표절방지 서약서를 제출하게 한다. 또한 졸업작품 대행업체가 주로 만드는 작품 목록을 통해 해당 작품을 만들지 못하게 한다. 이를 어기면 나중에라도 졸업이 취소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완벽한 대행 방지책은 아니다. 앞서의 손 씨는 “매주 졸업작품 관련 상담을 한다고 하지만 제대로 살피는 건 한 달에 한 번 정도다. 어차피 실제 작품 제작 과정을 지켜보지도 않는다”며 “4학년쯤 됐으면 전공 관련 지식도 어느 정도 쌓았기 때문에 충분히 둘러댈 수 있다. 거짓으로 보고하면 그만”이라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