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팀은 깔고 간다” 누구보다 힘든 연말을 보낸 김시진 감독은 그럼에도 “올 시즌 최소한 밑에 한 팀은 깔고 간다”며 의욕을 불태웠다. 임영무 기자 namoo@ilyo.co.kr | ||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김시진 감독은 담배부터 찾았다. “직업이 이렇다보니 하루에 한 갑 정도 담배를 물고 산다”는 말로 한때 담배를 끊었다가 다시 피우게 된 사연을 설명했다. 가장 오래 끊었을 때가 현대 유니콘스 감독 취임 후 미국 플로리다에서 치른 전지훈련 때였다. 두 달 가까이 담배와의 전쟁을 선포했다가 시즌 시작하자마자 물거품이 됐다고 한다. 이유는 당연히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빙빙 돌려서 질문을 하기보단, 직접적으로 물어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야구계를 후끈 달아오르게 했던 장원삼, 이택근, 이현승이 트레이드되기 전과 후, 많은 생각이 오고갔을 것임이 분명했다.
―누구보다 혹독한 겨울을 보냈을 것 같다. 특히 지난 연말은 더더욱 힘든 시간이었을 것 같은데.
▲겨울마다 힘들어지는 게 내 운명인가보다. 몇 년 사이 평탄하게 연말을 보낸 기억이 없다. 주위 친구들은 우스갯소리로 나한테 ‘즐기는 거 아냐’라고 말할 정도다. 솔직히 도피하고 싶었다. 갈 수만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떠나보내야 하는 선수들도 그렇고 남아 있는 선수들도 너무 아파했다. 명색이 감독이란 사람이 선수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손 놓고 지켜봐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다.
―이미 지난 얘기지만 한 번 정리를 해보자. 이장석 대표로부터 선수들 트레이드 얘기를 전해 들은 게 언제인가.
▲언론에서 ‘설’처럼 떠돌 때는 나도 몰랐다. 기자들은 나한테 전화해서 이런저런 내용을 물어보는데 구단주가 말하지 않는 상황에서 내가 무슨 할 얘기가 있겠나. 그런 와중에 부사장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장석 대표가 만나고 싶어한다는 내용이었다. 나름 예상은 했었지만 직접 이 대표로부터 선수들 트레이드 관련 얘기를 들었을 때는 정말 울컥했다. 처음에는 (트레이드를) 안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이 대표의 설명을 듣다 보니 더 이상 반대를 할 수가 없었다. 돈이 없는데, 구단 운영이 안 되는데, 다른 선수들까지 다 영향을 받는데, 아무 대책없이 내 입장만 내세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장석 대표의 결정을 이해했다는 소린가.
▲다른 팀은 모기업의 예산을 받아서 다달이 나눠 쓰면 된다. 그러나 우리는 시즌 때는 스폰서나 입장 수입을 갖고 운영하지만 비시즌 때는 수입이 전혀 발생하지 않는다. 결국은 이 대표 주머니에서 돈이 나와야 먹고 산다는 얘기다. 당장 이번 해외 전지훈련부터 문제가 될 것 같았다. 여러 차례 고민하다가 이 대표 뜻대로 하라고 말씀드렸다. 이 대표는 나한테 죄송하다고 하더라.
―야구 팬들 사이에선 히어로즈의 트레이드와 관련해서 비난이 끊이질 않았다. 심지어 선수 장사를 해먹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있었다.
▲나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대표 사정도 정말 딱하다. 제2, 제3의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모두 이 대표 개인 돈으로 지급된다. 다른 구단 사장들은 몇 년 하다가 인사 발령 나서 야구단을 떠나면 그만이다. 그러나 이 대표는 자신이 포기하지 않는 한 히어로즈를 안고 가야 한다. 설령 그가 야구단을 통해 수익 창출을 꾀한 후 돈을 벌려고 했다 쳐도, 그동안 돈을 써야 한다. 그걸 생각하면, 쉽게 비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구단 대표와 감독 사이가 아니라면 개인적으로 이 대표도 참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6일) 아침 한 스포츠 신문에 삼성 선동열 감독과 장원삼 선수가 함께 찍은 사진이 1면에 실렸다. 그 사진을 보고 만감이 교차했을 것 같다.
▲기분이 좋을 리가 있겠나. 엊그제까지만 해도 4주간 기초군사훈련받고 막 퇴소해서 전화통화했던 선수다. 원삼이가 퇴소 보고차 전화했을 때 ‘수고했다. 몸 만들어라’라고 얘기까지 했었는데…. (웃으면서) 한마디로 표현하면, ‘저 새끼, 벌써 배신 때리나’ 싶었다.
―이택근, 이현승 선수 모두 애제자 아니었나.
▲현승이는 우리 큰 놈이랑 1년 선후배 사이라 와이프랑도 가까웠다. 트레이드 통보를 받고 ‘감독님, 저 어떻게 합니까?’하며 우는데 정말 가슴이 찢어지더라. 누가 나한테 거액을 빌려주기만 한다면 이 구단을 확 사고 싶은 심정이라고 농담처럼 얘기했다. 택근이한테는 내가 소식을 알렸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싶어서 정말 고민 많이 했다. 결국 문자를 보냈다. ‘미안하다 택근아. 지켜주지 못해서. 너를 직접 보고 얘길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어서…. 훌륭하게 성공할 수 있는 자질이 있는 선수니까 열심히 해라. 정말 미안하다’라고.
―이장석 대표는 기자들에게 더 이상 트레이드는 없다고 공언했다. 믿어도 되는 부분인가.
▲나한테 약속했다. 아니, 이젠 더 있어서도 안 된다. 단, 현금이 개입되지 않은 선수 대 선수의 트레이드는 고려 중이다. 지금 한 건을 추진 중인데, 실명을 거론할 수는 없다. 이 트레이드는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트레이드가 될 것이다.
―현재 선수들 연봉 재계약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동안 트레이드 문제로 발표를 안 했을 뿐이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일본 전지훈련을 떠나기 전 모두 마무리 될 것으로 믿는다.
―히어로즈의 올 시즌 전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마디로 ‘뭐 갖고 먹고 사느냐’하는 얘기도 들린다.
▲이 또한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한 명이 나가면 다른 한 명이 그 자리를 메우게 돼 있다. 장원삼, 이택근, 이현승 모두 훌륭한 선수였지만, 그보다 더 좋은 선수를 발굴하고 키워내는 게 내 몫이다. 팬들한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올해 히어로즈, 절대 안 죽는다. 죽어도 그냥은 안 죽는다. 정말 최악의 경우, 밑에 한 팀은 깔고 간다(웃음).
―히어로즈랑 계약 맺을 당시 3년에 계약금 2억 원, 연봉 2억 원을 받기로 했는데, 그 계약금을 아직 다 못 받은 걸로 알려졌다. 사실인가.
▲지난 12월에 다 받았다. 난 계약금에 대해 초연했지만 주위에서 더 관심을 많이 보이더라. ‘계약기간 끝날 때까진 주겠지’ 싶었다. 돈이 있는데 안 줄 리도 없고, 재정 문제로 고달파 하는 이 대표를 보면서 계약금 얘기는 꺼낼 수조차 없었다.
―이런 질문을 어떻게 받아들일 지 모르겠다. 혹시 모기업에서 빵빵한 자금을 대며 지원해주는 팀의 감독이 부러운 적이 있었나.
▲나라고 왜 좋은 환경을 가진 감독이 부럽지 않겠나.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으면서,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기로 각오했다. 지금도 사람들이 의아해 하는 게 내가 왜 히어로즈란 팀을 맡았느냐 하는 부분일 것이다. 2008년 2월 4일, 선수단을 떠나면서 마음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지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히어로즈의 베이스가 현대 유니콘스라는 사실이 가장 컸다. 그때 동고동락했던 코치와 선수들이 존재했기에 다시 손을 잡을 수 있었다. 만약 히어로즈와 계약 기간이 끝나고 다른 팀에서 감독 제의가 들어와도, 이 팀에서 다시 손을 내밀면, 난 또다시 그 손을 잡을 것만 같다.
현역 시절 124승을 올리며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로 주가를 높였던 김시진 감독에게 8개팀 중 최고의 투수를 꼽아달라고 주문했다. 김 감독은 주저없이 LG 봉중근이라고 대답했다. “중근이가 많은 장점들을 갖췄다. 투철한 직업의식도 있고 프로다운 쇼맨십도 있고 투수로서의 자질도 뛰어나다”는 평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타자 중에서 당장 데려오고 싶은 선수가 있다면? 이란 질문에 대해서는 대답을 듣다가 감독도, 기자도 웃음을 터트려야만 했다.
“두산 김현수, LG 박용택, 삼성 최형우, 롯데 이대호…, 이름만 나열해도 기분 좋네요. 부자가 된 것 같으니까. 하하.”
<김시진 감독은>
출생 1958년 3월 20일 신체 키 183cm
체중 83kg 학력 한양대학교
데뷔 1983년 삼성 라이온스 입단
경력 태평양 돌핀스 코치,
현대 유니콘스 코치, 현대 유니콘스 감독,
히어로즈 감독(2008년 10월~)
수상 다승, 승률 1위(1985년),
골든글러브 투수부문(1985, 1987년),
올스타전 최우수선수(1985년),
다승 1위(1987년), 티켓링크 프로 코치상,
일간스포츠 프로코치상(2000년)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