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사무처가 총 2억 5500만 원을 들여 구입한 5개 작품 중 하나인 ‘비밀정원’은 휴게실 구석에 있을 뿐더러 조명조차 없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119점.’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 그리고 국회도서관에 있는 전체 미술작품의 개수다. 미술작품들은 전부 진품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회의사당에는 ‘6·25 한국전쟁’(주태석 작) 등 98점의 미술품이 있다. 국회의사당 그림들은 주로 비상계단 복도, 국회의사당 내 벽면에 설치돼 있다. 국회 의원회관도 ‘설악의숲’ (김종학 작) 등 곳곳에 총 19점의 그림과 조각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국회 도서관에도 생활일기(석철주 작)등 2점의 작품이 있다.
국회의 미술작품 보유 유형은 기증·임차·구입·제작 등 크게 4가지다. ‘Brilliant Point(Sgr)’(오세중 작) 등 국회사무처가 개인이나 단체로부터 기증받아 설치한 작품은 54점이다. 국내 갤러리를 통해 임차한 그림(48점)도 있다. 119점의 그림 대부분이 기증이나 임차를 받은 작품이다. ‘곰소의 오후’(김대성 작) 등 국회사무처가 구입한 작품은 15점, 제작 작품은 2점이다.
이처럼 국회사무처가 119점의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는 까닭은 뭘까.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국회 참관객 이동이 많은 본관 면회실 및 계단 등을 볼거리가 있는 열린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 위해 그림을 걸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 미술품이 늘어난 시기는 19대 국회다. 119점 작품 중 62점이 19대 국회(2012~2016년)에 국회의사당과 의원회관에 들어왔다. 미술품 보유 유형도 달라졌다. 19대 국회 이전에는 ‘기증’ 형식의 미술작품이 대부분이었다. 19대 국회 이전에 전시된 57점 중 기증 작품은 50점이었다. 하지만 19대 국회부터 임차 작품이 급증했다. 19대 국회 당시 전시된 62점의 작품은 중 임차 작품은 48점이다.
국회사무처 구입 작품 중 하나인 ‘스케이프 드로잉’은 작품 안쪽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유상 임차 작품도 생겨났다는 것이다. 국회사무처는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을 지불하고 그림을 임차해왔다. 2015년 5월 7일부터 국회의사당에 전시 중인 ‘맨드라미’(김지원 작)는 국회사무처가 PKM갤러리로부터 빌린 작품이다. 내년 12월 6일까지, 1년 6개월 동안 전시될 이 작품의 임차료는 594만 원. 같은 기간 동안 전시될 예정인 ‘꽃밭’(이동기작)의 임차료는 400만 원이다.
2015년 5월 7일 국회사무처는 ‘해뜨는아침’(임자혁 작) 등 총 4점을 임차하기 위해 누크갤러리에 330만 원을 지불했다. 국회의사당에 벽면에 걸린 이 작품들은 올해 12월 6일까지 전시될 예정이다. 국회사무처는 2015년 8월 1일 ‘모란’(강요배 작) 역시 미술은행으로부터 60만 원을 주고 임차했다. 지난해에만 국회 사무처가 미술작품 임차료로 약 1200만 원을 지불한 셈이다.
국회에 걸려 있는 그림 중에선 비교적 고가에 속하는 것들도 제법 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국회미술작품 보유현황’에 따르면 국회사무처는 2013년 12월 31일 총 5점의 미술작품을 2억 5500만 원에 샀다. 국회사무처는 ‘두개의 끝 또다른 끝’(노상균 작)을 8000만 원, ‘비밀정원’(문범 작)은 6000만 원에 샀다. 또 ‘최초의 외교사절’(조덕현 작) ‘스케이프 드로잉’(김태호 작) ‘사이풍경’(장희진 작)을 각각 5000만 원, 4500만 원, 2000만 원에 샀다.
앞서의 5점 작품들은 국회 의원회관 1층과 2층 곳곳에 전시 중이었다. 조덕현 작가의 ‘최초의 외교사절’이 걸린 장소에서 만난 한 대학생은 “5000만 원이라니 왜 이렇게 비싼지 모르겠다. 처음엔 1000만 원인 줄 알았다. 의원회관에 처음 왔는데 지나가면서 누가 그림을 보고 있나. 여기 다니면서 눈길이 가는 것도 아니고 국민 혈세를 가지고 이렇게 쓰다니 어이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대학생 역시 “아무리 국회의 권위가 있어도 수천만 원짜리 그림을 복도에 전시하는 것은 너무 심한 것 같다”고 보탰다.
5점 작품에 대한 국회사무처의 작품 관리도 미흡한 수준이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전시 작품에 차단봉 등의 적절한 안전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했지만 개별 작품들에 차단봉은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가 직접 살펴본 ‘두개의 끝, 또다른 끝’의 그림 절반 정도에 얼룩이 가득했다. ‘최초의 외교사절’은 작품 곳곳에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작품 곳곳에 손때가 덕지덕지 묻어 있는 ‘최초의 외교사절’.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비밀정원’은 휴게실 구석에 있을뿐더러 조명조차 없었다. 작품 앞엔 소파가 놓여 있어 감상하기 힘든 위치에 전시돼 있었다. ‘스케이프 드로잉’은 작품 안쪽에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국회 청소용역업체 관계자는 “관리를 하긴 하는데 이렇게 먼지가 많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설명했다. 국회사무처 관계자는 “훼손 등 사고 발생에 대비해 종합보험에 가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국회 사무처가 이러한 작품들을 구입한 까닭은 뭘까. 국회사무처는 2013년 9월 2일 ‘국회 제2의원회관 미술작품 설치’ 사업 공모전을 개최했다. 총 사업비는 5억 5700만 원으로 당시에도 호화논란이 일었다. 국회사무처는 “국회 의원회관은 문화예술진흥법 제9조에 의한 미술작품 설치 대상 건물이다. 미술작품 설치비용은 건축비용의 100분의 1로 정해져 있다. 이번 미술품 구입비용은 기존 의원회관 총사업비에 이미 포함된 금액일 뿐이다. 집행만 이번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미술작품 컨설팅 업체 (주)THETON이 사업자로 선정됐고 국회사무처가 앞서의 5점 고가의 작품들을 (주)THETON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주)THETON 관계자는 “당시 몇 십 개의 업체가 지원했다. 우리가 작가들을 선정해 사무처에 패키지로 제안했고 운이 좋아 당선됐다. 2013년 9월부터 진행했고 작가들이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듬해 4월쯤에 설치를 완료했다. 판화같이 저가 작품을 다량으로 놓을 수도 있었지만 국회가 우리나라를 대표하기 때문에 노상균 작가 같은 유명 작가로 구성했다. 이 점을 사무처가 좋게 봐줬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는 ‘문화예술진흥법을 지켰고 공개입찰로 사업을 진행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국민의 혈세로 2억 5500만 원이란 비용을 들여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의문점은 여전히 남는다. 미술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작가에게 직접 제작을 의뢰해 작품을 구입한 것은 1차 시장이다. 1차 시장은 부르는 게 값이다. 공공기관이 입찰을 받아 그 업체가 추천한 작가를 선정해 작품을 제작하면 가격 결정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말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