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귀만이 이원희, 왕기춘이 버티고 있는 유도 73㎏급에서 지난해 5월부터 국제대회 7개를 우승,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어렸을 때 이름 때문에 하도 스트레스를 받아서 엄마한테 이름을 바꿔달라고 떼를 썼다가 맞아 죽을 뻔했어요.”
친구들이 놀리는 건 다반사였다고 한다. 새로운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처음에는 그의 이름이 친구들 사이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장난꾸러기들은 ‘방귀만’이란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짓궂게 괴롭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어렸을 때부터 워낙 싸움을 잘한 탓에 그의 주먹 맛을 본 친구들은 더 이상 이름을 갖고 놀리지 못했다는 사실.
방귀만이란 이름의 탄생 배경에는 부모님과 작명소의 의기투합이 자리한다. 첫째 아들 이름을 아버지가 지은 후 계속 찜찜했던 부모님은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거금을 들고 작명소를 찾아갔고, 작명가의 연구 끝에 ‘귀만’이란 이름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의 형 이름은? 아주 평범한 방정민 씨다.
“제 이름이 싫을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자랑스러워요. 요즘엔 아무리 유명해도 튀지 않으면 쉽게 각인이 안 되잖아요. 독특한 이름 때문에 절 기억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졌어요. 기춘이도 마찬가지고요. 왕기춘이란 이름도 그리 흔한 이름은 아니잖아요? 유도선수들 중에 유난히 독특한 이름이 많아요. 송대남, 김주진 선수도 그렇고요. 유도선수들이라 특이한가?”
방귀만은 원래 66㎏급 선수였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때도 66㎏급에 출전했다. 그러다 2005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훈련 도중 왼팔꿈치가 탈골되는 부상을 당하게 된다. 가까스로 부상에서 회복해 2006년 도하아시아경기대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갔지만 또 떨어졌다. 2007년 말에는 체중을 빼면서 또 다시 왼팔꿈치가 빠졌다. 결국 수술을 받았고 방귀만은 2008년 3월, 이원희, 왕기춘이 버티고 있는 73㎏급으로 체급을 올려야 했다.
“체중 조절 실패가 가장 큰 원인이었어요. 무리하게 체중을 빼다보니까 그게 팔꿈치 탈골로 오더라고요. 보통 대회 앞두고 7~8㎏씩 뺐으니까 정작 시합 때는 거의 힘을 쓸 수가 없었죠. 어떤 때는 주먹 쥘 힘조차 없을 정도로 탈진 상태에서 시합에 들어간 적도 있었어요. 결국 팔꿈치 수술을 받으면서 체급을 올리는 문제를 검토했는데, 73㎏급에는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이원희, 왕기춘 선수가 있잖아요. 국제대회보다 국내대회가 더 살벌하고 이기기 힘들기 때문에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웠어요.”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한다. 66㎏급에서 계속 뛰었다간 부상이 재발할 게 뻔했기 때문에 체중조절의 부담이 없는 73㎏이 그가 가야할 길이었다.
2008년은 적응 기간이라고 생각하고 훈련에만 집중했다. 베이징올림픽 선발전이 있었지만 이미 마음을 비웠기 때문에 미련을 갖지 않았다. 체급을 올리면서 이미 군 입대를 각오했던 것도 여유를 갖게 했다. 마침내 방귀만은 국군체육부대 입대 후 군인 신분으로 출전한 2009년 5월, 아시아선수권 대회를 시작으로 월드컵유도, 그랑프리 국제유도 등 국제대회에서 잇따라 우승하며 한국 유도계의 다크호스로 부상했다.
“66㎏급 때는 변비약을 먹고 살을 뺀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결국 쓰러지고 말았지만. 73㎏급에서는 체중에 변화가 없다 보니까 대회에 나가서 제대로 힘을 쓸 수가 있더라고요. 66㎏때는 식탐이 굉장했거든요. 평소 살 빼는 데 스트레스가 심하니까 대회가 끝나면 폭식을 하곤 했었죠. 체급을 올리고 나선 하루하루가 행복해요. 운동도 너무 잘되고, 팔꿈치 부상도 많이 좋아졌고요. 물론 기춘이의 벽을 넘어서는 게 숙제로 남아있지만 말이죠.”
73㎏급 세계 랭킹 1위인 왕기춘과 세 차례 맞붙은 적이 있었다는 방귀만. 세 번 다 판정으로 졌다며 웃는다.
“기춘이는 쉴 새 없이 공격하는 스타일이에요. 몸이 워낙 유연해서 잘 넘어가질 않아요. 그래서 국제대회보다 국내 선발전이 더 통과하기 힘들죠. 언론에서는 절 기춘이의 라이벌로 묘사하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고마웠어요. 세계 최고의 선수와 라이벌이라도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많은 자극을 받아요. 진정한 라이벌이 되려면 지금보다 더 잘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 일러스트=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몇 차례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는데 전화가 잠시 끊어진 상태였어요. 기춘이가 은퇴한다고 알려지자, 몇몇 선후배들은 기춘이가 없으면 73㎏급에선 제가 1인자가 되는 거 아니냐고 말하더라고요. 그런데 누가 빠져서 1인자가 되는 거랑 맞붙어 싸워서 정정당당히 1인자가 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잖아요. 그래서 더더욱 기춘이가 돌아오길 바랐습니다.”
오는 11월 광저우아시안게임에는 73㎏급에서 단 한 명만 출전할 수 있다. 한창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방귀만과 지난 월드마스터스대회에서 충격의 예선 탈락을 한 왕기춘의 대결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세 차례 맞붙어서 모두 패한 방귀만이 불리한 조건이지만, 방귀만은 이젠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한가득이다.
“73㎏급에만 60~70여명의 선수들이 있어요. 그중에서 20명 정도는 실력이 엇비슷해요. 종이 한 장 차이죠. 기춘이하고 저 말고도 또 다른 선수가 그 티켓을 거머쥘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요즘엔 경기를 하면 할수록 자신감이 붙어요. 그 자신감이 경기하는 데 굉장한 도움이 되더라고요. 질 거란 생각이 안 드니까요.”
방귀만은 2002년 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선정한 아테네올림픽 장학생에 뽑혔다. IOC 장학생은 한국올림픽위원회가 5개 유망 종목에서 6명의 선수를 IOC에 신청했는데 방귀만이 유일하게 선정된 것이었다. 이로 인해 방귀만은 2004아테네올림픽 때까지 매달 1200달러의 훈련비를 지원받았다. 그런데 한껏 기대를 안고 출전한 아테네올림픽에서 방귀만은 1회전에 브라질 선수를 상대로 기술을 걸다가 되치기 한판패로 쓰러지고 말았다.
“정말 황당하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당시 몸 상태가 최고였거든요. 상대 선수 또한 그리 어려운 선수가 아니라 쉽게 이길 것 같았고요. 제가 잠시 방심한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해 들어온 걸 제대로 막지 못한 거였죠. 4년을 준비해서, 정말 치열하다 못해 ‘전쟁’으로까지 불린 국내선발전을 통과해서 갔던 올림픽이었는데, 뭐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1회전에서 탈락해 버리니까 망연자실, 그 자체였습니다. 선수촌에서 열흘간 숨어서 지냈어요. 사람들 만나기도 싫었고, 기자들은 더더욱 피해 다녔어요.”
방귀만이 더욱 화가 났던 건, 올림픽이 있기 전에 치른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우치시바 마사토를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는데, 정작 올림픽에선 우치시바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사실이었다. ‘IOC 장학생’이란 타이틀 때문에 금메달 후보로까지 꼽혔던 방귀만으로선 첫 경기 탈락이 엄청난 수모로 다가왔고, 올림픽의 소중한 기회를 자신의 실수로 날려버렸다는 점에 대해 자괴감까지 느낄 정도였다.
“아버지가 2004년 2월에 위궤양으로 돌아가셨어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받고 선수촌에서 부천의 병원으로 택시를 타고 갔는데 제가 도착하기 10분 전에 눈을 감으셨더라고요. 평소 효도다운 효도를 못 해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게 항상 회한으로 남아 있었거든요. 지금 제 모습을 보신다면 분명히 기뻐하실 텐데….”
2년 전에 아버지 산소를 찾았다는 방귀만은 조만간 이번 월드마스터스대회에서 획득한 금메달을 들고 아버지를 다시 찾아 뵐 계획이다.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2012런던올림픽 금메달이 방귀만의 가장 큰 목표이지만, 아들 방귀만이 더 이상 2인자가 아닌 당당히 세계 정상의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고 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생활전선에 뛰어 들었고 아들이 편하게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적인 부분을 도맡으며 어머니 또한 만만치 않은 고생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번 수원 대회 때 어머니가 직접 경기장에 오셨어요. 제가 우승하는 걸 지켜보신 후 절 부둥켜안고 우시면서 아버지도 같이 봤으면 좋았을 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마음이 찡했어요. 이게 끝이 아니니까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다고 어머니께 약속드렸습니다.”오는 8월 도쿄에서는 세계선수권대회가 열린다. 이전까지만 해도 참가국에 티켓이 한 장밖에 주어지지 않았지만 올해부터는 티켓이 2장씩 걸려있다. 방귀만은 벌써부터 마음을 설레며 조심스럽게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만약 기춘이랑 같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간다면 둘이 결승에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누구 한 사람은 패배자로 찍히겠지만, 그런 승부는 설령 진다고 해도 후회 없을 것 같아요. 그래서 진정한 1인자를 가렸으면 해요. 멋진 승부를 통해서 말이죠.“
자투리 인터뷰
결혼 선물로 여친에 금메달 줄 것
“원희 형이 김미현 선수를 소개시켜준 적이 있었어요. 여자친구라면서. 나이는 형수님이 더 많았지만 외모도 어려 보이고, 굉장히 착하고 매너가 있다는 걸 느꼈죠. 숙소에서 원희 형이 (김미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기에, 결혼 상대자로 아주 괜찮은 분 같다고 말씀 드렸어요.언론에만 늦게 알려졌을 뿐, 마사회 선수들은 두 사람의 연애를 다 알고 있었어요. 형을 보면서, 배우자가 운동선수여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옆에서 지켜보기에도너무나 부러울 정도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었거든요. 원희 형이 벌써 아이 아빠가 됐다는 게 신기해요.”
왕기춘이 젊은 패기와 열정의 유도를 한다면 이원희는 세계 최고의 테크닉을 구사한다는 게 방귀만의 생각이다. 두 선수의 장점을 모두 취하고 싶은 그는 이원희가 점차 매트와 멀어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방귀만한테도 여자친구가 있다. 5년간 그의 옆을 떠나지 않은 여자친구 김유진 씨(26)다. 현재 마산에서 커피숍을 운영하는 김 씨는 방귀만이 운동하는데 보이지 않는 내조를 하고 있다고.
“운동선수랑 사귀는 여자는 정말 힘들어요. 잘 챙겨주지 못하다보니까 오해로 인한 갈등이 자주 발생하거든요. 저 또한 그런 일들로 몇 차례 위기를 겪기도 했지만 여자친구의 인내심이 대단한 편이에요. 힘든 상황에서도 절 떠나지 않았으니까요.”
방귀만은 꿈을 이룬 후 여자친구와 멋진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한다. 2012년 올림픽까지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더니, “2년 밖에 안 남았는데요? 5년을 기다렸는데 2년 더 못 기다려주겠어요? 여자친구에게 메달을 결혼 선물로 주고 싶어요. 색깔이 황금색이면 더더욱 좋겠고요”라며 활짝 웃는다.
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