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1일 법정을 나선 민변 채희준 변호사가 북한 식당 종업원 12명에 대한 인신보호법상 구제 청구와 관련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쟁점 1. 그들은 왜 하나원에 가지 못 하나.
국내에 들어오는 모든 탈북자들은 사회에 나오기까지 두 기관을 거친다. 1차적으로 국정원의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보호센터)에서 심문을 거쳐 통일부 산하의 하나원으로 이송된다.
두 기관의 성격 및 기능만큼이나 차이는 뚜렷하다. 하나원은 탈북자들이 국내 사회생활에 터전을 잡고 적응할 수 있도록 다양하고 실질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다. 하나원은 집단생활 속에서 탈북자들끼리 유대감을 쌓을 수 있지만, 보호센터는 철저한 독방생활 속에서 이중 삼중의 감시를 받는다. 탈북자들은 이곳에서 탈북 경위 및 입국 과정에 대해 철저한 심문을 받게 된다.
지난 4월에 입국한 북한 해외식당 소속 여종업원 12명 역시 보호센터에 입소해 심문을 받았고, 일부는 지금도 심문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일반적인 탈북자들이 얼마간의 심문 과정을 거쳐 하나원에 입소한 것과 달리 이들은 현재까지도 보호센터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민변 측이 제기한 인신보호구제 청구의 핵심이 바로 이것이다.
현재 민변 측은 ‘국정원 측이 북한이탈주민법 제7조 3항과 12조 1항에 따라 여종업원들을 조사 후 통일부 장관에게 보고 및 신병을 이송해야 함에도 이를 거부하고 있다’는 취지의 주장을 하고 있다. 물론 보호 여부의 결정 기준인 ‘국가안전보장에 현저한 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사람(앞서의 법 8조 1항)’의 경우 예외 대상이지만, 민변 측은 앞서의 여종업원들은 이에 해당되지 않다고 보고 있다.
반면 국정원을 비롯한 정부 측은 ‘집단 탈북이란 특수성’과 ‘북한의 선전 공세’ 등 여러 가지 사안을 종합 고려해 판단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과거 탈북자들의 이송 업무에 관여한 바 있는 한 정부 관계자는 “이번 경우가 일반적인 탈북자들과 비교하자면 이례적인 사례이긴 하지만 원래 집단 및 기획 탈북의 경우 심문 과정이 좀 더 강도 높게 이뤄진다”라며 “심문 기간이라는 것 자체가 딱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는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민변 측은 내심 국정원 측이 이번 집단 탈북의 기획 과정부터 개입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송사를 제기한 것 같지만 아직 밝혀진 것도 없지 않나”라고 반문한 뒤 “더군다나 이번 경우는 북한 정권이 직접 가족들을 내세우며 협박조의 발언을 서슴지 않고 있다. 대단히 특수하고 위험한 상황이기 때문에 국정원의 결정은 당연하다고 본다”라고 덧붙였다.
물론 앞서 관계자가 언급한 대로 실제 국정원이 이들의 탈북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매우 복잡해진다. 기획 단계서부터 국정원이 이들의 입국 과정을 이끌었다면 현재 이 같은 장기수용 자체가 ‘통제’ 및 ‘감금’으로 비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법원 심리 당시 앞서의 종업원 12명은 법원 출석을 하지 않았다. 이에 국정원은 신분노출 및 그로 인한 가족들의 위험부담을 이유로 당사자들이 출석을 거부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민변의 최초 청구소송 제기 및 6월 24일 국정원장을 상대로 한 소장 제출 행위 이면에는 이 같은 의심을 품고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쟁점 2. 논란의 ‘가족 위임장’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청구인 측의 의견을 받아들여 지난 21일 심리까지 진행하게 된 주된 배경에는 민변 측이 제출한 ‘가족 위임장’이 결정적이었다. 애초 인신보호구제 청구는 본인 혹은 가족들만 제기할 수 있고, 여의치 않을 경우는 위임장을 통해 진행해야 한다. 문제는 이 ‘가족 위임장’의 성격에 있다.
민변 측이 제출한 해당 위임장은 친북성향의 미국시민권자인 정기열 칭화대 교수으로부터 건네받은 것이다. 정기열 교수는 북한에서 직접 가족들의 위임장 및 동영상을 전달 받아왔다. 현재 법원은 해당 위임장의 적법성을 인정했지만, 보수진영에선 정 교수의 정치적 성향과 북한 당국의 의도성을 이유로 해당 위임장의 적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측은 20일 보도자료를 통해 “위임장을 받아왔다는 자(정기열 교수)는 우리가 언론보도를 통해 익히 알고 있던 종북 활동 인사”라며 “가족들 역시 자유로운 의사를 바탕으로 작성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기자와 통화한 한 대북소식통은 “현재 종업원들의 가족들은 북한 당국에 의해 특별 감시 속에서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 일부 가족들은 직장에서도 대기발령을 받은 상태로 확인됐다”며 “위임장의 적법성 여부는 국내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지만 북한 내부 상황을 감안하면 북한 당국의 의도성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민변 측 관계자는 “종업원들의 가족들이 실제 위임장 제출에 동의했다는 부수적인 증거 자료가 충분하고 법원 역시 이를 받아들인 상황”이라며 “일부 위임장에 대한 시비는 그야말로 색깔론과 물타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했다.
#쟁점 3. 향후 북한의 대응 여부
민변 측은 6월 24일 시흥경찰서(보호센터 소재지 관할)에 국정원장을 상대로 고발장을 제출했다. 첫째는 국정원이 특별한 이유 없이 통일부에 여종업원 12명의 신병을 이송하지 않고 수감한다는 ‘직권남용’의 이유다. 둘째는 여종업원들이 국정원에 가로막혀 심리에 있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고 출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문제는 여종업원 12명의 신병을 놓고 진행되고 있는 국정원과 민변 측의 국내전뿐만이 아니다. 이를 예의주시하며 여종업원들의 신병이양을 주장하고 있는 북한 당국의 차후 대응방식도 주의 깊게 봐야할 대목이다.
앞서의 대북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가족의 위임장’을 국내에 전달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에 굉장히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고, 어떤 방식으로든 응수하겠다는 의지”라며 “더군다나 외화벌이를 하는 일종의 공관에서 발생한 기획 입국이고 우리 정부의 개입까지 의심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북한 내부에선 북한 당국 차원에서 물리적 대응을 포함한 모든 대응 방식을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