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덕신공항은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수조 원대 국비를 따내 김해공항을 확장하게 된 부산은 표정 관리 중이다. 적어도 신공항과 관련해선 국비 무일푼이 된 대구보다는 신세가 낫기 때문이다.
대구 국회의원들이 최근 정부부처와 긴급 간담회 등을 열고 있지만 뒷북도 저런 뒷북이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그리고 밀양신공항을 밀었던 4개 시·도가 부산의 ‘야단법석 작전’에 제대로 걸려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6월 22일 영남권 중진 의원들이 신공항과 관련해 간담회를 개최한 모습.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총선 정국이었던 지난 3월 29일이었다.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였던 조원진 의원(대구 달서병)은 대구시당 선거대책위 발대식에서 이런 말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가 2년 남았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에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다.” ‘영남권 신공항’이란 단어는 한 자도 나오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다소 원론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산 정치권은 조 의원 발언을 고리 삼아 신공항 사수 작전에 들어갔다. 일단 부산지역 상공계가 긴급성명을 냈다. 조 의원 발언을 두고 “전율을 금할 수 없다”면서 “신공항 건설의 공정성을 현저히 저해한 발언의 책임을 지고 총선후보를 즉각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조 의원이 친박계이고, 당 중책을 맡고 있기 때문에 청와대와의 교감이 있지 않았겠느냐는 교묘한 해석을 섞었다. ‘선물 보따리=영남권 신공항’으로 프레임한 것이다.
이후 부산 시민사회단체가 일어났고, 부산 정치권도 가세했다. 그 이후 최근까지 대구 정치권은 신공항에서만큼은 어떤 언행도 삼갔다. 조 의원 발언이 오히려 대구 정치권에는 재갈을 물린 꼴이 됐다. 부산의 신공항 작전 1단계였다.
총선 결과 부산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석이 5개 나왔다. 김영춘 박재호 최인호 전재수 김해영 의원은 ‘갈매기 5형제’로 불리면서 신공항 이슈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새누리당 일색의 부산은 그간 박근혜 대통령 눈치를 보며 신공항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했는데 이들 5형제가 여론몰이에 나서자 힘을 받았다. 그리고 부산은 2단계 작전에 돌입한다. 언론플레이다.
부산은 부산 출신 언론인들과 오찬과 만찬을 이어가며 가덕신공항 여론몰이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리고 국회 등 정치부 기자들과 만나 부산의 분위기를 전하며 신공항 발표에 앞서 이슈화를 자극했다. “가덕신공항이 안되면 민란이 일어날 것”이라는 말이 여기서 등장했다.
부산시 관계자들은 당시 “용역을 맡은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의 용역이 불공정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들린다. 밀양에 유리한 항목에 가점이 붙고 가덕에 유리한 항목은 평가를 하지 않고 있다”는 식의 말을 흘리기도 했다. “대구정치권이 이렇게 가만있는 것은 이미 밀양으로 내정됐기 때문”, “조원진 의원이 아무 정보도 없이 그렇게 선물보따리를 자신했겠는가” 등의 이야기도 다시 흘렸다. 부산의 한 중진 의원은 “신공항과 관련한 모든 정보루트가 차단돼 있음에도 대구가 느긋한 것은 비선의 보고를 받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라는 의혹을 제기하기까지 했다.
부산시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언론도 밀양신공항 쪽으로 기사화를 하니 부산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부산 서면에서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부산이 그러는 사이 대구에서는 신공항 관련 집회나 행사는 열리지 않았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이런 말을 들려줬다.
“부산에서 자꾸 민란이니 폭동이니 그런 말이 나오니 부산에 줘야겠는데 그렇다면 대구를 잃을 판이고, 밀양에 주자니 부산이 난리가 나게 생겼다. 부산은 신공항을 무산시키면 시켰지 밀양신공항은 안 된다는 사즉생의 각오로 뛰었다. 언론뿐 아니라 부산의 면밀한 작업은 그보다 훨씬 정교했다.”
부산은 만약 밀양신공항으로 결정이 될 경우 용역의 불공정성을 들어 극렬 반발할 예정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국토교통부와 한국교통연구원, ADPi사 3자의 계약서를 보면, 1년간의 용역 진행 상황과 그 내용을 두고 매월 국토교통부와 회의를 한 차례 하도록 돼 있다. 용역 시작이 시작된 뒤 6개월 되는 달인 올해 2월엔 중간보고도 이뤄질 수 있도록 규정했다.
국회 국토위 업무를 잘 아는 한 여당 관계자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용역을 약속한 정부가 용역기관과 매월 만나고 중간보고도 받는다는 것은 용역 발주자의 의향이나 요구대로 일을 진행시키거나 개입할 공간을 둔다는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면서 “문제를 삼는다면 충분히 논란이 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귀띔했다.
실제 신공항 용역을 맡길 즈음인 지난해 국토부 관계자들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여러 의원들을 각각 만나 ‘김해공항 확장안’도 한 방편이라고 보고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국회 국토위에서 활동한 한 의원은 “2013년 6월에 영남권 5개 시·도 간 사전합의를 거쳐 처음 실시한 ‘영남권 항공수요조사연구용역’에서는 신공항이 필요하다는 충분한 수요를 확인했다”며 “그런데 김해공항 확장으로 결론 난 것은 용역을 하게 된 이유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결과라면 용역을 할 필요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어 그는 “이번 ADPi 용역명은 ‘영남권신공항 사전타당성 검토’인데 이것도 맞지 않다. 신공항 입지 선정이 목적이었다면 ‘입지 결정을 위한 용역’으로 표현했어야 하는데 해석의 여지가 크게 두루뭉술한 제목을 달았다”고 지적했다.
신공항을 쫓다 지붕만 쳐다보게 된 대구에서 ‘신공항 무용론’이 제기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신공항을 부산에 양보하고 10조 원대의 다른 프로젝트를 정부로부터 받아내자는 시나리오도 있었다. 신공항이 유치되더라도 관광객을 끌어들일 만한 매력적인 공급이 이뤄지지 않으면 지역발전의 만능열쇠가 되지 못할 것이란 논리에서였다. 최근 백지화 발표가 나오자 대구 일각에서는 지난 10년의 민심 소모에 대한 반대급부로 초대형 프로젝트를 확약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편 가덕신공항에 직을 걸었던 서병수 부산시장을 두고 친박계에선 “아웃되어야 할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서 시장이 신공항 발표 직전 “용역 과정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부산시 관계자들을 총동원해 용역 결과 불복 기류를 형성했다는 이유에서다. 청와대에서조차 “서 시장은 못 믿을 사람”이라는 기류를 풍기고 있다. 친박계 한 인사는 “김해공항 확장이란 선물을 줬음에도 가덕신공항 자체 추진 이야기가 나오면서 청와대가 아주 불쾌해 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정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