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든 건 이동찬의 입에 달렸다.”
최유정 변호사를 잘 아는 한 변호사의 말이다. 최근 구속된 이동찬의 진술에 따라 최 변호사 재판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얘기다. 앞서의 변호사는 “그만큼 최 변호사가 이 씨의 ‘입’을 복잡한 심경으로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지난 21일 핵심 법조 브로커 이동찬 씨가 구속됐다. 정운호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전방위 로비 의혹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도주 생활을 해오다 검거된 지 이틀 만이다. 이 씨는 최 변호사가 정 대표의 원정도박 사건을 맡아 50억 원의 수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주선한 혐의와 이숨투자자문의 업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에 부정한 청탁을 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송창수 이숨투자자문 대표의 사기 사건에서 재판부 교체‧청탁 명목으로 최 변호사가 50억 원의 금품을 받게 된 과정에도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씨 수사과정에서의 핵심은 크게 3가지로 추려진다. 첫 번째는 최 변호사의 수임료 사용처다. 최 변호사 수사 과정에선 그 일부만 발견됐다. 한 법조 관계자는 “이 씨의 진술을 토대로 수임료의 사용처를 확인하고, 이 돈이 브로커 수수료만으로 활용됐는지, 혹은 최 변호사가 실질적으로 로비를 했는지,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등에 대한 조사가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며 “또 정 대표와 홍만표 변호사의 관계에 대해 다른 내용을 알고 있는지, 금융기관이라든가 또는 다른 관공서 등에 로비를 했는가의 여부도 검찰이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 측이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수임료 사용처’에 대한 진술이다. 최 변호사는 검거 당시부터 재판에 넘겨진 지금까지 변호사법 위반 등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정상적으로 수임 계약을 맺었고, 로비 등 부당한 변론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최 변호사를 접견한 지인은 “동기 변호사나 일부 변호인단이 ‘검찰 수사에서 인정할 부분이 있으면 인정하고 가야 한다’고 설득했지만, 최 변호사는 억울하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최 변호사가 정 대표나 이숨투자자문 송 씨의 사건을 수임할 때부터 법원 교제와 청탁 알선을 모두 언급했다고 보고 있다. 최 변호사에게 있어 이 씨의 진술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 씨는 그동안 최 변호사와 사무실을 실질적으로 운영해왔고, 이숨투자자문 송 씨, 정 대표, 최 변호사 간의 연결고리 역할을 했다. 이 씨 진술에 따라 최 변호사 측의 주장이 한 번에 무너질 수도 있다. 검찰도 이 씨가 이와 관련, 상당 부분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판단해 집중 추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최 변호사는 “이 씨에게 이용당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이 씨가 최 변호사와 ‘사실혼 관계’라고 주장하면서 각별한 관계임을 강조해왔던 것을 전면 부인하는 것이다. 과거 이 씨가 여성 경찰관과 수년간 동거를 하면서 수사 정보 등 100여 건의 정보를 유출했던 전력이 있어, 이번에도 “이 씨가 목적을 두고 의도적으로 접근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 주장도 이 씨의 진술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 법조 관계자는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이 씨가 최 변호사와의 ‘은밀한 관계’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확인했고, 변호인단도 이를 확인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검찰은 이 씨 소유 아파트 가운데,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고급 아파트가 최 변호사의 돈이라고 판단했다. 검찰은 지난 5월 법원에 최 변호사의 범죄 수익 70억 원에 대해 추징 보전 청구를 하면서, 이 아파트도 포함했다. 이 씨가 6억에 전세 계약한 이 아파트의 계약금을 최 변호사가 지불한 것으로 본 것이다. 일부 법조 관계자들 사이에선 “그동안 ‘최 변호사가 이 아파트에 일주일에 한두 번은 다녀갔다’는 소문도 돌고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반면 최 변호사가 이미 나름의 대처를 시작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법조 관계자는 “최 변호사는 이 씨 검거 전부터 도주 생활이 더 이어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지난 16일 재판부에 제출한 탄원서에는 선처 호소와 함께 이 씨에 대한 배신감을 담은 내용도 포함됐다”며 “정 대표를 폭행 혐의로 고소한 사건을 취하한 것도, 이 씨와 최 변호사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정 대표가 재판에 증인으로 나올 수 있는 부분을 염두에 둔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 변호사가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최 변호사는 로비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검찰은 실제 로비가 없었다면 최 변호사가 정 대표와 이숨투자자문 송 씨를 속이고 사건을 맡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내용은 재판에서도 반영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여기서 법조 관계자들의 시각은 엇갈린다. 최 변호사가 만약 실제 로비를 하지 않고도 “내가 이미 재판부에 로비를 했다”고 거짓말하고 거액의 수임료를 대가로 받았을 경우에는 사기죄가 성립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중론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친분 관계를 과장하는 수준을 넘어 ‘재판부를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등 거짓말을 하고 이를 토대로 집행유예나 보석 등 석방이 가능하다고 했다면, 사기가 성립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또 다른 변호사는 “사기까지 적용되려면 처음부터 로비할 의사가 없었으면서도 돈을 편취할 목적으로 ‘로비를 해주겠다’고 의뢰인에게 말했어야 한다”며 “부장판사 출신의 전관 변호사인 최 변호사가 담당 재판부에 전화 등을 통한 법정 외 변론을 할 의사가 애초부터 없었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한 일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사기죄 여부는 기본 전제로 그 사건이 실형이 확실한 사건이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하는데, 그런 사건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문상현 기자 m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