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즌 박지성을 바라보는 시선은 ‘우려’와 ‘걱정’뿐이었다. 2009-2010시즌이 개막 한지 6개월이 넘었지만 그의 골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부상으로 인해 출전 경기 수까지 줄어들면서 박지성의 입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을 정도. 영국 기자들은 박지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한국 축구팬들의 우려와 달리 영국 ‘스카이스포츠’의 마크 버킹엄 부편집장과 ‘텔레그라프’의 팀 리치 기자는 박지성의 입지는 전혀 문제없다고 강조한다. 마크는 “박지성이 이번 시즌 출전 시간이 줄어든 것은 시즌 초반 부상으로 인한 2개월 정도의 공백 때문으로 보인다. 최고의 컨디션이 되지 않는 이상 맨유 같은 팀에서 매 경기에 나서기는 쉽지 않다”며 “하지만 박지성은 몇 시즌 전에도 시즌 초반 경기에 나서지 못했지만 복귀 후 최고의 모습을 보이며 활약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팀 리치도 비슷한 의견. 그는 “맨체스터는 지금까지 경기에 나서기에 가장 적합하고 활약이 기대되는 선수를 선발 출전시킨다”며 라이언 긱스, 안토니오 발렌시아가 전술적인 이유로 이번 시즌 출전 기회를 자주 얻었다고 밝혔다. 또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이적으로 인해 박지성의 출전 기회가 줄어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기회를 얻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도 두 기자의 생각은 비슷했다.
그렇다면 맨유에서 5시즌째를 보내고 있는 박지성의 생존 전략은 무엇일까. 박지성은 줄곧 맨유에 온 이후 단 한 번도 경쟁이라는 구조 속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여름 ‘팀의 기둥’ 호날두가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맨유는 그를 대체할 선수 영입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위건으로부터 발렌시아를 영입했다. 이적료로만 1600만 파운드(약 320억 원)의 거액을 주저 없이 지불했다. 퍼거슨의 결정은 틀리지 않았다. 현재까지 24경기를 치른 프리미어리그에서 발렌시아는 22경기에 출전했다. 사실상 거의 대부분의 경기에 나선 셈. 결과도 나쁘지 않다. 발렌시아는 현재까지 리그에서만 5골 5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반면 박지성은 리그에서 9경기 출전이 전부다. 그 중 두 경기는 교체 출전이었다.
텔레그라프의 팀 리치 기자는 “현재 퍼거슨 감독이 박지성보다는 발렌시아를 선호한다는 것은 인정해야 하는 사실”이라며 “박지성이 경기 중 보여주는 미숙한 마무리와 강력하지 못한 플레이는 아직까지 퍼거슨 감독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마크 역시 “우선 박지성에게는 정기적인 경기 출전이 필요하다. 그래야만 그가 플레이할 때 좀 더 세밀한 경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며 박지성에게 세밀한 마무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수의 실망감에 비해 그 장면을 지켜봤던 영국 기자들은 새로운 아시아 선수에 대해 확신을 감추지 못했다. ‘볼턴 뉴스’의 마크 아일스 기자는 “이청용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정말 놀랄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고 있다. 첫 시즌이라는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라며 치켜세웠다. 그는 “우리는 그동안 아시아 선수들이 타고난 체격 조건으로 인해 프리미어리그에서 고전하는 모습을 보아왔다”며 “이청용이 영국에 도착했을 때 분명 힘겨운 경쟁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고백했다. 마크 기자는 박지성 이후 아시아 선수로서의 가능성을 보이고 있는 선수가 이청용이라고 강조하며 “버밍엄전은 모든 것을 바꿨다. 이청용은 후반 무암바를 대신해 일찍 교체 투입됐고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이후 그는 팀의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볼턴을 담당하는 라디오 기자 역시 “이청용은 새롭게 부임한 오언 코일 감독 아래에서 정말 팀의 중요한 일원이 됐다. 코일은 두 명의 공격형 측면 미드필더를 즐겨 사용하는데 이청용은 정말 적합한 선수이다”며 코일 감독에서도 변하지 않는 이청용의 입지를 전했다.
이청용은 지난 1월 연이은 아스널과의 경기 후에 뜻밖의 말을 전했다. “힘겹다”고 말하는 그의 말속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아스널 같은 강팀의 경우 다른 경기보다 수비 가담이 늘다보니 자연스레 후반 종료 시간이 가까울수록 체력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을 느낀다고 고백했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이청용이 현실에서 느끼고 있는 벽이었다. 현장에서 지켜보는 마크 기자도 이청용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으로 체력을 꼽고 있다. 그는 “지금 현재보다 경기에서 좀 더 잘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이런 점(체력이 부족한 것)을 인지해야 한다. 시즌 절반 정도를 지나온 지금 이청용은 조금 힘겨워 하는 것 같다”며 “자칫하면 이청용이 시즌 마감을 앞두고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시점이 올 수도 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건넸다.
이청용은 현재까지 데뷔 시즌에서 5골 5도움이라는 한국인 선수로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고 있다. 22세의 어린 선수가 물 만난 고기처럼 상승세에 올랐다. 하지만 영국의 축구 전문가들은 아직 그의 성공을 확신하지는 않는다. 가능성은 있지만 확신이 찰 만큼 완벽하지 않다는 것. 전문가들은 이청용이 지금의 하위권 팀에서 벗어나 슈퍼스타급 선수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가능성을 넘어 제대로 된 완벽함을 보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런던=조한복 EPL전문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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