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왼쪽부터) 소냐 헤니, 페기 플레밍, 카타리나 비트, 크리스티 야마구치 | ||
소냐 헤니
(미국ㆍ1912∼1969) : 백과사전에 보면 아이스쇼 스타 겸 영화배우로 나와 있다. 1928년부터 전무후무한 올림픽 3연패를 달성했고 이후 프로로 전향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가 아이스쇼 및 영화배우로 큰 인기를 모았다. 당시만 해도 아이쇼 때 헤니가 입은 순백색의 초미니스커트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은반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최초로 만들어냈다. 20세기폭스사에 스카우트돼 <빙상의 꽃> 등 15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한때 미국 내 인기배우 순위 3위에 오를 정도로 할리우드의 톱스타로 거듭났다. 1956년 노르웨이의 선박왕 온스탄드와 결혼했다. 노르웨이 태생이지만 미국 국적으로 취득한 헤니는 또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세계선수권대회도 10년 연속 우승하는 등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페기 플레밍
(62ㆍ미국) : 1968년 그레노블 동계올림픽 금메달 이후 프로로 전향했고 역시 영화 <하얀 연인들>에 출연하는 등 연예계 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ABC스포츠의 해설자로도 20년 넘게 활약했다. 와인회사를 경영하기도 했는데 유방암 진단을 받은 후 유방암 퇴치 등 사회활동을 활발히 펼쳤다.
카타리나 비트
(45ㆍ독일) : 1984년 사라예보와 1988년 캘거리 올림픽 2연패. 두 말이 필요 없는 역대 피겨스케이팅 최고의 스타다. 기량뿐 아니라 눈부신 외모로 전세계 남성팬들을 사로잡았다. 캘거리 올림픽 때는 비트 경기의 시청률이 슈퍼볼보다 높게 나오기도 했다. 올림픽 2연패 이후 프로로 전향, 미국에서 아이스쇼로 대성공을 거뒀다. 1989년에는 <카르멘 온 아이스>라는 TV 영화에 출연해 에미상을 받기도 했다. 심지어 1998년 <플레이보이> 모델로도 출연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94년 올림픽에 다시 도전했지만 7위에 그쳤고 이후 사업가로도 성공했다. 이번 밴쿠버 올림픽에서는 독일 방송의 해설자로 활약했다.
▲ (왼쪽부터) 옥사나 바이울, 타라 리핀스키, 미셸 콴 | ||
(39ㆍ미국) : 1992년 알베르빌에서는 일본계 미국인으로 금메달을 차지했다. 당시 21세였던 야마구치는 월계관을 쓴 후 미련 없이 바로 프로 전향을 선언했다. 그리고 이후 프로 무대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
옥사나 바이울
(33ㆍ우크라이나) : 1994년 릴레함메르에서 17세 신예로 금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매우 어린 나이였지만 올림픽 우승 후 전격 은퇴를 선언하고 그해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하지 않았다. 이후 프로로 전향, 아이스쇼에 출연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부와 명예를 거머쥐면서 알코올 중독, 음주운전 체포, 파혼 등 많은 스캔들을 일으켰다.
#기타 :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 역대 최연소인 15세의 나이로 금메달을 딴 타라 리핀스키(28ㆍ미국)는 곧바로 은퇴를 선언했고 이후 아이스쇼와 영화배우로도 활동했다.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금메달리스트 사라 휴즈(25ㆍ미국)도 1년 만에 은퇴했고, 2006년 토리노 챔피언 시트카 아라카와(29ㆍ일본)도 많은 나이(당시 25세)로 인해 곧바로 은퇴했다. 대부분 아이스쇼 등에 출연하며 활동했지만 헤니, 비트, 야마구치와 같은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
#참고 : 김연아의 우상인 미셸 콴(30ㆍ미국)은 당대 최고의 선수였지만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8년 은메달, 2002년 동메달에 그쳤고, 적지 않은 나이에 2006년 토리노 올림픽까지 도전을 선언했지만 부상으로 출전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2008년 28세의 나이로 현역에서 은퇴했고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주로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다. 이미지가 워낙 좋아 미 정부로부터 친선외교사절로 임명되기도 했다.
유병철 스포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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