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치부하겠지만 그 내용을 보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는 첫 경기에서 국내랭킹 6위 이동훈을 꺾었고, 두 번째는 포항 포스코켐텍의 1지명 최철한을, 세 번째는 고근태, 네 번째는 다시 한국물가정보의 에이스 원성진을 격침시키면서 ‘1지명 킬러’라는 영예로운 별명을 얻었다.
올해 나이 만 서른. 이제 한국바둑리그에 두 번째 출장 중인 그의 이름은 박진솔이다.
‘5지명 대박’ 신화를 써나가고 있는 박진솔 7단.
“진솔이는 이미 입단 전 연구생 시절부터 대단했죠. 당시 연구생은 10조부터 1조까지 있었는데, 보통은 아무리 빨라도 10조에서 1조까지 올라가려면 2~3년은 걸립니다. 그런데 진솔이는 정확히 딱 10개월 만에 10조에서 1조로 올라갔어요. 한 달에 한 번씩 한 번도 빼먹지 않고 논스톱으로 1조까지 승급한 거죠. 유일무이한 전설 같은 이야기예요. 입단하고 나서도 삼성화재배였던가, 제일 먼저 세계대회 본선에 올라갔을걸요. 최단기간 세계대회 본선진출 기록도 진솔이가 갖고 있을 겁니다.”(정관장 황진단 김영삼 감독)
5지명 박진솔이 4연승을 기록했으니 팀 성적도 좋을 수밖에. 개막 전 정관장은 9개 팀 중 하위권으로 점쳐졌지만 5라운드 현재 4승 1패로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박진솔을 5지명으로 뽑을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다. 김 감독은 “당초 4지명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막상 호명할 차례에선 한승주를 놓치기 싫었다. 그래서 5지명으로 넘어간 건데 5지명 첫 번째 지명 팀이 박진솔을 부르지 않길래 얼른 선택했다. 예전부터 주목하고 있었는데 최근 생활이 안정되면서 천재성을 되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6월 23일, 박진솔을 인터뷰하기 위해 정관장 황진단 대 BGF리테일CU의 대국이 열리고 있는 바둑TV 스튜디오를 찾았다. 오후 8시 30분에 열리는 마지막 5경기에 나서는 박진솔은 아직 대기실에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었는데, 팀은 이번에도 귀신같이 상대 1지명 강동윤 9단을 박진솔의 상대로 붙여놓고 있었다. “처음에는 센 상대랑 붙여 미안했는데 자꾸 이기니까, 이젠 저한테 고마워해야죠”라고 말하는 김영삼 감독. 오후 7시를 넘겨 검토실에 나타난 박진솔 7단과 대국 전 인터뷰를 가졌다.
―요즘 성적이 너무 좋다. 비결이 뭔가.
“얼마 전부터 충암도장에 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네 번 나가는데 원생들과 대국을 많이 갖는다. 지도대국이지만 대부분 연구생들이다 보니 실력이 강해서 내게도 도움이 된다(웬만한 프로들은 찜쪄 먹는다(?)는 연구생들이지만 박진솔에게는 좀처럼 판 맛을 보지 못한다는 김영삼 감독의 귀띔이 있었다).”
―올해 바둑리그에서는 자꾸 상대 팀 에이스들하고만 상대하고 있는데 부담스럽지 않은가.
“감독님이 오더를 잘 짜서 날 버림돌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하다(웃음). 오히려 잘 두는 기사들을 상대하니 져도 본전이라 부담도 없고, 집중도 잘 된다.”
4연승을 질주 중이던 박진솔(왼쪽)은 5라운드에서 또 하나의 1지명 강동윤을 상대했으나 마지막 고비를 넘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했다.
―신진서 5단의 은인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된 일인가.
“우리 팀원들끼리 그냥 농담한 거다. 작년 렛츠런파크배에서 우리 팀 신진서 5단이 생애 첫 우승을 하지 않았었나. 사실 그 대회 32강전에서 내가 박정환 9단을 이겼었다. 덕분에 신진서 5단이 우승한 거라고, 내게 한턱 내야 한다고, 다들 우스갯소리를 했었다.”
―최근 승리를 거둔 면면을 보니 타이틀 획득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 목표는?
“타이틀 딸 실력은 안 된다. 한국바둑리그 출전도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다. 오랜만에 출장이라 바둑리그에 집중하고 있다. 목표는 승률 반타작이었는데 초반 성적이 좋으니 10승쯤 하는 걸로 삼겠다.”
사실 박진솔은 올해 한국바둑리그에 배수진을 치고 임하고 있다. 그는 2부리그 격인 퓨처스 리그에서 2014년 11승 3패, 2015년엔 14승 2패로 2년 연속 다승왕에 올랐다. 그리고는 올해 바둑리그 드래프트를 앞두고, 더 이상 퓨처스 리그 선수로는 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바둑리그에서 뛰지 못할 바에야 더 이상 퓨처스리그에는 출전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한편 ‘에이스 킬러’로서의 명성을 다지고 있는 박진솔은 이날도 승리를 눈앞에 뒀으나, 막판 강동윤의 흔들기에 대마가 잡혀 아쉬움을 남겼다. 과연 박제가 될 뻔한 천재 박진솔의 질주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