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갖 물건으로 가득한 몇 년 전 사사키 후미오 씨의 집(위)과 책상과 의자 외엔 아무것도 없는 현재의 사사키 씨 집. 사진출처=사사키 씨 저서와 블로그
옷장에는 티셔츠 세 개, 바지 네 개, 그리고 양말 네 켤레뿐이다. 거실은 또 어떠한가. 책상과 의자 외엔 아무 것도 없다.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했다>의 저자 사사키 후미오 씨가 사는 도쿄 원룸의 모습이다. 책상과 의자를 산 것도 그나마 최근이란다. 욕실 또한 액체비누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머리를 감을 땐 따뜻한 물로 씻으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소박하다 못해 휑한 집 내부를 보고 친구들은 “취조실 같다”고 놀리기도 한다.
그러나 사사키 씨는 “물건이 없으니 청소가 간편하고, 쇼핑하는 시간이 줄어들었다”면서 “대신 친구들과 만나거나 여행하는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어 좋다”라고 말한다. 게다가 쓰레기도 별로 나오지 않으니 어느새 친환경적인 생활을 하게 됐다.
이런 사사키 씨도 한때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다. 책과 CD, DVD 등을 사 모으는 게 취미였고, 온갖 물건을 방안에 쌓아두고 지냈다. 그런데 문득 “트렌드를 따라가는 게 피곤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때부터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됐다.
그는 “가지지 못한 것만 생각하고, 소유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었다”며 “조금도 행복하지 않았다. 되레 ‘저것이 없어서 나는 행복하지 못하다’는 또 다른 욕심이 생겨났다”고 전했다. 하지만 물건을 하나씩 버리면서 변화가 찾아왔다. 물건이 줄어들면 줄어들수록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하고 훨씬 행복했다. 무엇보다 남들과 비교하는 습관이 없어졌다.
20대 회사원 오후미 씨도 남편과 함께 미니멀리즘을 실천한 지 2년이 되어간다. 원래는 둘 다 가구와 옷을 좋아해, 보란 듯이 진열해놓고 살았다. 부부는 맞벌이였는데, 주말마다 가사분담으로 인한 다툼이 끊이질 않았다. 어느 날 오후미 씨는 ‘물건이 적으면 청소가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몸과 마음이 지친 부부는 ‘단순한 삶’을 선택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부부가 버린 물건은 무려 130kg이었다.
오후미 씨는 “필요 없는 물건을 사들이고 ‘치우지 않으면 안 돼’ ‘쓰지 않으면 안 돼’와 같이, 결국은 물건에 소유당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이렇듯 가치관이 변한 부부는 물건을 버리고, 비우는 지혜를 통해 23평집에서 13평집으로 이사했다. 가사부담이 줄어든 건 물론, 여유로 남은 돈과 시간은 여행과 취미에 쓰고 있다. 부부는 “앞으로 소파를 해먹으로 바꾸는 등 지금보다 더 홀가분하게 사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옷 빌려주는 사이트 에어클로젯.
위의 사례처럼 최근 일본에서는 미니멀 라이프를 선택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적게 소유할수록 행복하다는 철학 아래, 최소한의 물건으로 살고자 하는 일본 젊은이들이 빠르게 확산 중”이라고 보도했다.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기준이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골자는 단순한 정리에 그치지 않고, 소유의 의미를 재평가해 다른 무언가를 얻는 것이다. 사사키 씨의 경우 물건 대신 여행할 시간을 얻었다. 이에 사사키 씨는 “미니멀리스트란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소중한 것을 위해 물건을 줄이는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미니멀 라이프는 2010년 미국에서 시작됐다. 당시 억대 연봉을 받던 미국인 청년 두 명이 돌연 사표를 던지고, 물건을 버리는 법을 알려주는 사이트 ‘미니멀리스트’를 개설하면서 엄청난 화제를 모았다. 비슷한 시기 일본에서도 <정리의 마법> 열풍이 불면서 미니멀리스트라는 삶의 방식이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일본에서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소유에 대한 회의가 사회 전반에 퍼진 영향이 컸다. 지진으로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광경을 보고, 많은 일본인들이 소유욕과 집착을 내려놓게 된 것이다. 따라서 미니멀리스트들은 “지진이 빈번한 일본에서는 간소하게 갖추고 살아가는 삶이 더없이 실용적”이라고 말한다.
일각에서는 “미니멀리즘 유행이 단순함을 추구하는 일본식 불교 선(禪)에서 자연스럽게 파생됐다”고 보기도 한다. 프리랜서 작가 누마하타 나오키 씨는 “서양에서는 공간을 완성하는 건 무언가를 채우는 걸 의미한다. 반면에 일본의 다도나 선은 불완전한 것을 더 아름답게 여기고, 사람의 상상력이 깃들 수 있도록 공간을 비워놓는다”고 설명했다.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면 오히려 물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생겨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단순히 물건을 극단적으로 줄이는 것만이 미니멀리즘은 아니다. 각자에게 정말 필요한 걸 되돌아보는 과정이 필수”라고 덧붙였다.
미니멀리스트가 증가하자, 일본에서는 이들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자제품이나 가구, 이불 등을 필요할 때마다 렌털해주는 사이트가 대표적인 예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에어클로젯’이란 서비스는 주목할 만하다.
에어클로젯은 쉽게 말해 옷을 빌려주는 사이트다. 사용자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등록해두면, 스타일리스트가 그 사람의 취향에 맞는 옷 3벌을 골라 택배로 배달해준다. 세 벌을 다 입고, 택배로 다시 반납하면 또 다른 세 벌이 도착하는 식이다. 이렇게 하면 집에 수납할 필요 없이 여러 벌의 옷을 입을 수 있다. 또 옷이 마음에 들 경우 구입도 가능하다. 한 달에 6800엔(약 7만 7000원) 정도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회에 환원할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도 나타났다. ‘헌옷de백신’이라는 서비스는 인터넷에서 신청서를 작성한 후 상자에 입지 않는 의류와 가방, 신발 등을 넣어 보내면 수익이 개발도상국 아이들에게 백신으로 지원되는 구조다. 또 헌책을 보내면 매입금액이 NPO법인 등에 기부되는 서비스도 있다.
물건이 넘쳐나는 시대에 오히려 소유를 줄이는 미니멀리스트들. 일본의 니테레뉴스는 “자신이 진정으로 무엇에 행복을 느끼는지, 물건을 대신할 수 있는 건 무엇인지 성찰해보는 새로운 가치관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싹트고 있다”고 평가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